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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Sep 01. 2019

스반테 페보,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이집트 미라에서 네안데르탈인을 거쳐, 데니소바인까지

문과생이 읽은 이과 책

나는 앞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문과, 뒷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문과다. 좋아하는 분야는 어문학, 문학, 철학, 심리학, 역사, 문화, 인류...


이 분야들 중에 그나마 이과에 가까운 것이 인류학이다. 한 때, 호텔에서 근무하면서 외국인들을 상대하며 일하다 보니, 인종별로 공통된 생활 습관이나 외모적 특징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지형이나 문화권에 따라 사람의 외형이 변한다는 사실이 신기해 인류학 책과 DNA 관련 서적을 서 너 권 독파했던 기억이 있다.


타인종에 대한 관심은 그것이 처음이 아니다. 나는 이집트 미라에 관심이 많아 이집트 문화나 미라 관련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았다. 아홉 살, 열 살 그즈음부터 시작된 호기심이었다. 나에게 미라는 말라빠진 시체 따위가 아니라, 조금 오래된 외국인처럼 보였다.


고대 문명이 탄생했다는 나일강, 통치자의 영생을 기원하며 만들어 낸 독자적인 매장 문화 ‘피라미드’, 그리고 각종 영화의 단골 테마로 자리 잡은 미라... 이집트는 나에게 별천지 같았다. 피라미드와 가까운 곳에 맥도날드인가 암튼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이 함께 찍힌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미라 덕후, 진화 인류학자가 되다


사설은 이 정도로 하고, 내가 미라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바로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라는 책의 저자인 스반테 페보 역시 미라에 대한 관심에서 그의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함이다.


스반테 패보는 고대 인류 ‘네안데르탈인’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학자이자, 그 유명한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진화인류학 분과 책임자다.


이집트 미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라 미라화된 고대 인류로부터 DNA를 채취할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고대 인류의 유해에서 분리한 유전자와 현생 인류의 유전자를 비교해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이 두 영장류가 언제 어디서 서로 분리되었는지까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아지 간을 사다가 미라처럼 만들어 유전자를 얻어내려는 엉뚱하고도 위대한 실험을 시작하며, 인류학자로서의 서막을 알린다.


의과생이었던 스반테 페보는 이집트 미라에 대한 관심으로 이집트 관련 공부를 더 해볼까 하다가, 동물학 교수로, 분자 생물학 연구원으로, 그리고 고대 인류의 게놈을 찾아 헤매는 인류학자로 직업을 여러 차례 바꾼다. 그의 열정과 지성을 높이산 막스플랑크협회에서 연구소의 진화인류학 책임자 자리를 제안할 때까지, 그는 맹렬히 연구자로서 공부하고 글을 썼다.


그러나 한 연구기관의 리더가 된 뒤, 그는 완벽히 기획자로서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낸다. 타이틀은 진화 인류학 연구소지만, 그곳에는 생물학자, 인류학자, 심리학자, 통계학자 등 여러 분야의 천재들이 한 데 모여 일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나, 스반테 페보는 연구원 개개인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며, 민주주의적 철칙을 내세워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했다. 모두가 의견을 내고, 아무리 연구소의 수장이 낸 의견이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고 합리적 비판까지 가능한 이상적인 환경을 말이다.


한 가지 더 인상적이었던 점은, 대부분 집단의 이름으로 논문을 쓰게 되면 개개인의 충성도나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여, 논문의 파트마다 저자를 달리하여 공시한 점이었다. 그로 인해서 팀원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내세울 수 있게 되었고 때론 팀으로, 때론 개인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냈다. 확실하고 차별화된 보상이 연구원들을 춤추게 만든 것이다!


조직 사회에서 등한시될 수 있는 개인의 가치를 살려, 오히려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높인 현명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대부분은 실험, 연구 과정에 대한 것이라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따라가기 힘들다. 재미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미토콘드리아니 핵게놈이니... 생물 수업은 들어본 적도 없는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스반테 페보라는 사람에 대한 흥미 때문이었다.


미라에 관심이 많아 의사라는 직업도 마다하고, 죽은 개체에서 유전자를 채취하겠다고 송아지 간을 익히고 삶고 건조해 미라로 만들고, 때로는 너무 솔직하여 자신의 호모섹슈얼적인 면에 대해서도 아주 쿨하게 이야기하고, 동료들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장차 베스트셀러가 될’ 책에 친절히 써 놓기도 하고...


분야에서 인정받는 과학자이면서도, 끊임없이 라이벌을 의식하고 연구 결과가 미적지근하면 불안해 잠도 못 이루는 그는 그야말로 ‘인간’이기 때문에 굉장히 매력 있게 느껴졌다. 생물학에 대한 매력도 느낄 수 있었고, 연구자라는 직업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얼마나 예술가 같은지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 세계에 발표하고, 자신의 실험이 같은 데이터를 낼 수 있는지 끊임없이 반복하여 같은 값을 찾아내고, 그것도 모자라 신뢰할만한 타기관에 의뢰하여 크로스 체크까지 해야 하는, 정말로 힘든 과정을 거쳐 나오는 한 권의 예술, ‘논문’.


여태까지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이과 분야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모든 열정과 노력은 박수받아 마땅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는다.


랩실 안의 개척자들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제일 먼저 ‘편견’에 부딪힌다.


과학자란 전에 없던 가설을 세워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 과학이 발전하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비단 예술가뿐만이 아닐 것이다.


변호사들도 끊임없이 새로운 판례를 접하게 되고, 의사들도 새로운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마주하곤 한다.


새로운 것이란, 특별하거나 특이한 것이 아니고, 이미 우리(인간)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동료, 새로운 업무, 새로운 고객...


지루하고 따분한 직장인의 삶에도 온통 새로운 것 투성이라니, 신기하지 않은가? 다만 세상을 뒤흔들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 빼고, 우리 모두 새로운 것과 마주하고 있다.


새로운 것, 즉 낯선 것들은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자아낸다.


축적되지 않은 경험이나 정보를 접할 때, 사람들은 바보처럼 변하기 때문이리라.


여태껏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것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혐오감은 더욱 커진다.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미지의 땅이, 개척 가능한 영역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곧 그 땅에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에 도전하는’ 개척자의 이름이 붙여진다.


새로운 것은 곧 ‘내’가 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 즉, 내 옆의 누군가가 새로운 시도를 한다면, 나는 앉은자리에서 곧바로 무능력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에 스스럼없이 뛰어드는 용감한 이들 뒤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들의 볼멘소리가 뒤 따른다.


“나도 생각했던 것들이야.”

“그런 생각은 누구나 해.”

“환경만 따라주면 나도 할 수 있어.”


그러나 그 누구도 미라에서 유전자를 채취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스반테 페보가 하기 전에는.


그도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연구실을 뒤덮은 송아지 간 타는 냄새, 남들이 발표하기 전에 새 논문을 발표하고자 하는 충동에 완벽하지 않은 원고를 들고 고민했던 불면의 밤들, 그리고 정말로 포기해버리고 싶어서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보던 나날들. 적어도 그가 밤낮없이 기울인 모든 노력들이 새겨진 이 책 한 권을 다 읽은 사람들이라면 그의 업적들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흔한 것”이라는 질투는 버려야 한다.


개척자들의 숙명은 불안감이다. 내가 처음 내놓은 것을 따라 하려는 자들과, 뛰어넘으려는 자, 단점을 캐내려는 자, 인정하지 않는 자들과 맞서야 하니 그도 그럴 수밖에.


새로운 연구, 새로운 이론, 새로운 학자, 새로운 아군과 적군들, 이 모든 새로운 것과 싸워 이긴 과학자의 이야기가 담긴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는 과학자들의 치열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과생들과 과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 기업체가 아니라 연구자나 학자의 꿈을 키웠던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그래서, 우리 몸에 네안데르탈의 유전자가 흐른다고?

단도직입적으로 “yes”다.


더 상세히 말해서, 네안데르탈인과 유럽인의 조상들이 유전적으로 섞여 있음이 밝혀 졌다.


만약 아시아인의 조상 중 어느 하나가 유럽인과 교배를 통해 자손을 얻었다면, 그리고 그 자손이 여성이었고, 지금까지 대를 이어오며 꾸준히 여성 자손을 봤다면, 그 후대 여성의 미토콘드리아에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


처음에 스반테 페보의 연구진들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에는 어떠한 교류도 없었다고 발표했으나, 유전자 정보 체계를 분류하고 분석하는 시퀀싱 기계의 발전과, 연구 집단의 풀이 넓어짐에 따라 다른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기술이 발전하고, 인간들은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어 새로운 판을 짜 나갈 것이다. 과학은 얼마나 진보할 것이며, 우리가 살아갈 세상과 우리의 조상이 살아온 세상에 대한 정보는 또 얼마만큼 우리와 가까워질 것인가. 말 그대로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나라 같은 세상이다.


게다가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던 새로운 인종의 새끼손가락 파편이 발견되어, 이후의 연구에 대한 궁금증마저 자아낸다.


첨언하자면, 네안데르탈인은 독일의 네안더 지역의 계곡(탈)에서 발견되어 다분히 지형의 정보를 반영한 이름을 얻게 됐다. 언급했던 새끼손가락 인종들의 이름 역시, 그들의 유해가 발굴됐던 데니소바 동굴의 지명을 따라 데니소바인이라고 명명되었다. 지금 동남아시아에 살고 있는 인류들의 먼 조상 격인 고대 인류다. 새끼손가락뿐만 아니라, 그들의 어금니도 발견이 됐는데, 현생인류 및 네안데르탈인의 모양과도 많이 달라 완전히 새로운 종으로 분류됐다. (재밌죠???????)


새가 먼저냐, 알이 먼저냐


현재 눈 앞에 주어진 것 만으로 과거를 추정하는 일, 그것이 바로 스반테 페보와 같은 과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가정과 검증으로 사실을 밝혀내는 과학이라는 학문과는 달리, 철학이나 심리학 등 문과 학문들은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들 학문에 대하여 ‘내’가 갖는 의문은 그러한 추상적 개념들이 “실존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은 나에게는 학문에 심취하는 데에 있어 한계로 작용한다. (사실 여부에 신경을 쓰는 것을 보면 나에게도 혹시 과학자적 면모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은, 그런 추상적인 개념이 과학자의 시야를 넓힌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과학자의 상상력의 크기만큼 과학이 진보한다는 나의 지론 상, ‘문’과 ‘이’는 극단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원의 형태로 순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쨌든 굳이 둘 중 더욱 나은 것을 고를 수는 없어도 어떤 것이 ‘먼저’인지는 잘 알겠다.


과학 이전에 철학이 있었다. 철학 이전에 생각이 있었고, 생각 이전에 생명이 있었다.


요컨대, 모든 사상과 기술의 발전 맨 밑바닥에는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최초의 인간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고대 인류는 현생 인류와 비교하여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같은지를 연구하는 것이 인류학자의 역할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정보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언어, 문화, 지형, 사회 등 주변의 환경들이 인체를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괜히 생물이겠는가? 살아 숨 쉬고 쉴 새 없이 변화하던 것이, 일순간 소멸하고 썩는다. 생물은 그런 것이다. 다양한 분야들의 집합체이자 집약체이다.


그렇기에 스반테 페보의 연구실에는 다양한 학자들이 공생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그의 연구실에 심리학자 역시 초청되었다는 것이다. 스반테 페보의 책은 수많은 어린 과학자들에게 특별한 귀감이 되어 줄 것이지만, 지구 반대편의 나에게도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데 아주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점을 끝으로 긴 독후감을 마치겠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다는 공통점 만으로 나 또한 그처럼 꿈을 달성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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