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루테이프의 편지 후기 1

"우울이 방패가 될 수 있을까?" 감정 뒤에 숨은 우리의 위선

by 고요정

"우울이 방패가 될 수 있을까?"

감정 뒤에 숨은 우리의 위선

"마음이 무거운 날, 우리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면죄부를 주나요? '지쳤으니까 오늘은 좀 게을러도 돼', '우울하니까 이 정도 날카로움은 정당해'라고 말이죠.

그런데 만약, 악마가 노리는 최적의 공격 지점이 바로 그 '정당화된 우울'이라면 어떨까요? C.S. 루이스는 타락한 천사의 시선을 빌려 우리의 마음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우리가 '생존'하느라 정작 '살아있음'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루이스의 고통스러웠던 창작 기록을 통해 내 안의 부드러운 올가미를 점검해 보았습니다."



[편지] 부드러운 내리막길에서, 당신이 빚은 거울을 봅니다

존경하는 루이스 선생님께,

선생님, 오늘은 당신이 "가장 쉽게 썼으나, 가장 즐기지 않았노라" 고백했던 그 기묘한 편지 묶음을 덮으며 펜을 들었습니다. 타락한 천사의 시선으로 세상을 뒤틀어 보아야 했던 그 시간이 선생님께는 영적인 경련을 일으키는 형벌 같았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 고통의 해산을 통해 태어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오늘날 저에게 서늘한 거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선생님, 저는 오늘 그 거울 속에서 제가 걷고 있던 **'부드러운 내리막길'**을 보았습니다.

스크루테이프가 설계한 지옥행 길은 참으로 영악하더군요. 요란한 죄악이 아니라, 아주 작은 거짓말과 소리 없는 게으름, 그리고 '우울'이라는 감정 뒤에 숨은 미세한 위선들로 그 길을 포장해 두었음을 깨달았습니다


• 감정이라는 방패: "마음이 힘드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라며 스스로에게 허용했던 그 관대함이 실은 영혼을 무너뜨리는 악마의 전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 무기력의 늪: 슬픔을 정당화하며 서서히 무기력의 늪으로 빠져들 때, 저는 그것이 위로인 줄 알았으나 실은 영혼을 질식시키는 부드러운 올가미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글을 쓰며 느끼셨던 그 공포는, 아마도 이토록 달콤하고 정당해 보이는 핑계들이 사실은 우리를 '생존'하게 할 뿐 '살아있지' 않게 만든다는 그 비극적인 진실을 목격하셨기 때문이겠지요.

당신이 즐겁지 않게 써 내려간 그 문장들 덕분에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제 제가 걷는 이 길이 편안한 내리막인지, 아니면 숨 가쁜 오르막인지 매일의 발걸음을 살피려 합니다. 부드러운 유혹에 잠식되지 않도록, 오늘 하루의 작은 선택들부터 **'시를 끓이는 마음'**으로 정성껏 대해보겠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진실을 비추는 거울을 빚어, 저와 같은 길 잃은 여행자들에게 건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문장 아래에서,

당신의 글을 사랑하는 한 독자 올림





[답장] '우울'이라는 안개를 걷어내려는 당신에게

친애하는 벗에게,

보내주신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내가 그 고통스러운 '스크루테이프'의 목소리를 빌려 쓴 글이, 당신에게는 오히려 영혼을 깨우는 죽비 소리가 되었다니 작가로서 이보다 더한 위로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그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악마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익혀야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물 속에 잠수하여 숨을 참는 기분이었지요. 하지만 당신이 그 안에서 '부드러운 내리막길'의 정체를 발견했다니, 나의 영적 경련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우울함과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그 '유혹'에 대해 말씀하셨지요. 이에 대해 내가 줄 수 있는 작은 조언은 이것입니다.


• 감정의 변덕에 속지 마십시오: 기분은 날씨와 같습니다. 비가 온다고 해서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듯, 마음이 무겁다고 해서 당신의 영적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악마는 당신의 '감정'을 '도덕적 상태'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지나친 자기 성찰을 경계하십시오: 거울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도리어 눈이 멀게 됩니다. 자신을 살피되, 그 시선을 곧바로 '바깥'으로 돌리십시오. 옆집 사람의 안부를 묻거나, 눈앞에 놓인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백 권의 심리학 책 보다 낫습니다.


• '시를 끓이는 마음'을 지키십시오: 당신이 쓴 표현이 참 마음에 듭니다. 영성은 거창한 순교가 아니라, 오늘 아침 식탁을 정성껏 차리는 일, 짜증 섞인 대답 대신 한 번 더 웃어주는 일 같은 '작은 선택'들의 연속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요란한 폭발음이 아니라, 소리 없이 쌓이는 먼지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발밑이 너무 편안하다면 잠시 멈춰 서서 신발 끈을 고쳐 매십시오.

우리는 모두 오르막길을 걷는 순례자들입니다. 숨이 가쁘다는 것은 당신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당신의 건투를 빕니다.


옥스퍼드에서,

당신의 친구 C.S. 루이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