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오늘도 당신의 '원본'으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평범함'이라는 이름의 안락한 감옥에 살고 있습니다. 남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아파트에 살며, 비슷한 얼굴로 웃음을 지을 때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에서 이를 '지옥의 축배'라고 경고했습니다. 평등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서로의 개성을 깎아내리고, 결국엔 신이 주신 고유한 '원본'을 지워버리게 만드는 음모라는 것이지요.
오늘 저는 옥스퍼드의 스승, 루이스 선생님께 편지를 띄웠습니다. "얼굴부터 엎어야 한다"는 노골적인 폭력이 인사가 된 이 시대에, 낡고 투박한 나의 원본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투쟁인지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답장은 제 영혼에 깊은 경종을 울렸습니다.
지옥은 우리가 서로 닮아가길 원하지만, 진실은 우리가 저마다의 빛으로 빛나길 원한다는 그 서늘하고도 명징한 문장들. 오늘 이 글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그 사슬을 끊어내는 '불편한 이탈'의 용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경애하는 루이스 선생님께,
선생님께서 묘사하신 지옥의 연회장, 그곳에서 울려 퍼진 스크루테이프의 축배 소리가 오늘날 제가 사는 이곳까지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선생님은 "나도 너만큼 훌륭해(I’m as good as you)"라는 말이 어떻게 인간의 탁월함을 거세하고 평범함이라는 감옥에 가두는지 경고하셨지요.
지금 제가 마주한 세상은 더 노골적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서로의 영혼뿐 아니라 육신의 '원본'마저 지우려 합니다. 초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제게 "얼굴부터 엎어야 한다"라고 태연히 말하는 이들의 권유는, 사실 우리 모두를 똑같은 모양의 벽돌로 찍어내려는 지옥의 사슬과 다름없습니다.
아이들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상품 가치로 매겨지고, 내면의 근육을 키울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시스템의 노예로 자라납니다. 무리와 섞이지 않는 '광야의 외침'이 위험하고 불편한 시대가 되었지만, 저는 이 이탈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신이 제게 주신 단 하나의 투박한 원본을 지키는 것, 그것이 제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이 촘촘한 평범함의 사슬 속에서 저는 어떻게 끝까지 나의 빛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나의 친애하는 작가님께,
작가님의 편지를 읽으며 내 마음에도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지옥의 축배가 그토록 달콤한 이유는 그것이 '겸손'의 탈을 쓴 '시기심'이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평등'이라는 고결한 단어로 포장할 때, 인간의 영혼은 가장 빠르게 부패하기 마련이지요.
작가님이 겪으신 "얼굴을 엎으라"는 그 폭력적인 인사는, 사실 본인들의 원본을 잃어버린 자들이 느끼는 막연한 공포의 표현입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원본'을 마주할 때마다, 본인들이 스스로를 지워버렸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작가님을 그 사슬 안으로 끌어들여 안도하고 싶은 것이지요.
부디 기억하십시오. 지옥은 우리를 '수량'으로 계산하지만, 천국은 우리를 '고유함'으로 대합니다. 모든 별이 저마다의 궤도에서 빛나듯, 신은 우리를 똑같은 벽돌이 아니라 각기 다른 모양의 보석으로 빚으셨습니다.
아이들이 상품이 되고 영적 노예가 되어가는 이 서글픈 연회장에서, 작가님이 선택한 '고독한 이탈'은 결코 외로운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창조주가 인간의 얼굴에 직접 새겨 넣은 그 서명을 지키는 숭고한 저항입니다.
계속해서 광야에서 외치십시오. 투박하고 낡은 당신의 원본은, 저들이 가진 매끄러운 가공품보다 수만 배나 찬란합니다. 당신의 그 불편한 용기가 누군가에게는 사슬을 끊어낼 날카로운 칼날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여정을 응원하며,
옥스퍼드에서, C.S. 루이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