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선생님의 서재를 방문하다 [기적]

박쥐의 눈으로 마주한 '기적', 조에(Zoe)의 생명이 끓기 시작하다

by 고요정

루이스 선생님의 서재를 방문하다 (10)

제목: 박쥐의 눈으로 마주한 '기적', 조에(Zoe)의 생명이 끓기 시작하다


겨우 종착역에 이르렀습니다. C.S. 루이스라는 거대한 지성의 성벽 앞에서 참 오래도 서성였습니다. 때로는 치밀한 논리의 미로에 갇혀 길을 잃기도 했고, 때로는 나의 빈약한 지적 이해력이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드디어 그 성벽 너머, 루이스 선생님이 가리키던 그 '빛'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책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박쥐의 눈이 빛을 보지 못하듯 우리의 지적인 눈은 본질적으로 최고 명백한 진리들을 보지 못한다."


이 문장이 저의 가슴을 쳤습니다. 대낮의 찬란한 태양 빛을 보지 못하는 박쥐처럼, 저의 이성도 너무나 명백한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 오히려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내 눈앞에 닥친 사건과 감정에만 휘둘리며, 매 순간 기적을 행하시려는 근본이신 분의 뜻을 '우연'이나 '운'으로 치부하며 살아온 오만함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기적이란 단순히 물이 포도주가 되는 마술 같은 사건이 아님을요.

그것은 나의 낡은 생명인 **'비오스(Bios)'**를 그리스도께 온전히 내어드릴 때, 초자연적인 참생명인 **'조에(Zoe)'**가 내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거대한 화학반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내가 창조된 피조물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의 그 '낳아진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 그 찰나의 순복. 그 순복의 순간들이 모여 저의 일상이 되고, 저의 부엌에서 끓여내는 시가 된다는 사실이 제게는 가장 큰 기적입니다.


[답장] 옥스퍼드 머들린 대학의 서재에서, C.S. 루이스가 보내는 글

친애하는 나의 벗에게,

먼저 그 험난한 『기적』의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친 당신의 인내에 박수를 보냅니다. 사실 그 책은 저로서도 아주 딱딱하고 건조한 빵을 굽는 마음으로 쓴 것이라, 독자들이 소화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당신이 발견한 **'화학반응'**이라는 비유는 제가 쓴 수천 개의 문장보다 훨씬 생동감이 넘칩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은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원래 있어야 할 더 높은 차원의 질서로 '승격'되는 과정입니다. 달걀이 새가 되기 위해서는 껍질 안의 삶을 포기해야 하듯, 인간의 이성도 하나님이라는 더 큰 빛 앞에서 자신의 눈을 내어주어야 비로소 진정한 시력을 얻게 되지요.

당신은 "눈앞의 사건에 끌려가는 마음"을 자책했지만,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박쥐가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박쥐의 잘못이 아니라 그것이 '피조물'의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한계를 인정하고, 창조주께서 당신의 본성 안으로 걸어 들어오시도록 문을 열어드리는 그 '내어드림'의 의지입니다.

당신의 부엌에서 시를 끓이고 요리를 하며 만나는 그 모든 '순간의 순복'이 바로 초자연이 자연을 집어삼키는 현장입니다. 당신의 삶은 이제 단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낳아진 생명'으로 약동하고 있군요.

당신의 부엌에서 풍겨오는 그 생명의 냄새가 이곳 서재까지 전해지는 듯합니다. 계속해서 그 기적의 맛을 글로 써 내려가 주십시오. 천국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자아를 내려놓고 '조에'의 생명을 받아들이는 그 식탁 위에 이미 차려져 있으니 말입니다.

당신의 여정을 늘 응원하며,

C.S. 루이스 드림


[오늘의 서재에서 가져온 한 줄]

"하나님께 자신을 더 많이 내어드릴수록, 우리는 더 진정으로 우리 자신이 됩니다."

— C.S. 루이스, 『기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