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라는 달콤 살벌한 가스라이팅
팬데믹은 우리 집의 경계를 처참히 허물어버렸다.
남편과 두 딸이 집으로 출근(?)을 시작하면서, 나의 안식처는 순식간에 '공유 오피스'가 되었다.
출퇴근 시간이 모호해진 그들은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짬짬이 부엌으로 출몰했다.
간식 대령하랴, 차 우려내랴, 스몰토크 상대해 주랴... 나의 은퇴 라이프는 그렇게 '전문 가정주부'라는 이름의 고된 5성급 호텔 서비스직으로 변모했다.
그런데 오늘 토요일 아침, 기적이 일어났다.
거실로 내려왔는데, 적막하다.
남편도, 딸들도 없다! 평소 같으면 "다들 어디 갔지?" 하고 걱정했겠지만, 웬걸. 마음을 아래로 끌어당기던 중력이 순식간에 사라진 기분이었다. '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랑스러운 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평온이라는 깃털이 내 몸을 감쌌다.
**"내가 설마... 가족을 귀찮아하는 건가?"**
양심의 가책이 아주 살짝 고개를 들었지만, 입가는 이미 정직하게 귀에 걸려 있었다.
100파운드가 넘는 거구 심바의 털을 청소기로 사정없이 빨아들이며, 나는 혼자만의 축제를 즐겼다.
그래, 평화를 원하는 자들이 전쟁을 하듯, 나의 이 '홀로 있음'은 가족을 더 뜨겁게 사랑하기 위한 고도의 숨 고르기였던 셈이다.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장을 가득 봐온 딸아이가 들어오며 지상으로 '착륙'을 유도하더니, 급기야 청소기 소음을 뚫고 선명한 환청이 들려왔다.
**"Baby, Baby!"**
남편이 돌아왔구나! 나는 반사적으로 청소기를 끄고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문밖에는 정적뿐.
아, 이럴 수가. 40대에 미국으로 건너와 산 지 25년, 환갑이 넘은 나에게 남편이 불러대는 '베이비'는 늘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간지러웠는데...
그 소리가 안 들린 지 단 몇 시간 만에 환청을 듣다니. 이건 명백한 중독이다.
K-문학소녀가 어느덧 미국 할아버지의 '베이비'로 완벽하게 가스라이팅(?) 당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점심 무렵, '환상'은 '환장'으로 바뀌었다.**
"서프라이즈~!"를 외치며 예고 없이 들이닥친 남편. 환청 속의 감미로움은 간데없고, 현실의 남편은 쉼 없이 경적을 울려대는 덤프트럭 같았다.
**"베이비! 베이비! 기브 미 어 키스(Give me a kiss)!"**
연거푸 쪼아대는(?) 그의 애정 공세에 감동은커녕, 내 마음은 빛의 속도로 퇴근을 결정했다. 아까의 그 애틋함은 어디 갔는지, 나는 당장이라도 뒤주 속으로 기어 들어가 숨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나란 여자, 스위트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차가운 K-우먼인가...'
자책하며 실망하는 척해보지만, 남편의 "베이비" 경적 소리는 멈출 기미가 없다. 25년을 들어도 여전히 적응 안 되는 이 낯간지러운 호칭. 하지만 어쩌겠는가.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그 경적 소리가 들려야 비로소 '우리 집 개점휴업'이 끝났음을 실감하는 것을.
마음이 다시 올라간다.
이번엔 고요한 평화 때문이 아니라, 남편의 '베이비' 공세를 피해 달아나는 황당한 유쾌함 때문이다.
그래, 이게 진짜 가족이지.
오늘도 나는 시끄러운 '베이비' 소리에 중독된 채, 청소기를 돌리며 혼자 쿡쿡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