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를 통한 존재의 소중함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자"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건강이 가장 중요합니다"
책이나 강연들을 통해 똑같은 말은 아니어도 비슷한 맥락의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를 듣곤 했다.
'맞아, 세상에 당연한 건 없지."
"그래, 건강이 최고야.'
강연자나 저자가 전달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난 머리로 이해한거지 온몸으로 공감한게 아니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사실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점은 안보이는 곳에서 튀어나온 내 허리디스크 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매월 통장으로 꽂히는 월급을 받지 않는다는 것, 소속감을 느낄 직장이 없다는 것, 친구들과의 모임이나 나들이가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나의 생각이 달라졌다. 달라졌다기보다는 누구나 알 법한 사실을 피부로 깨닫게 되었다.
'존재는 부재를 통해 알게 된다.'
허리와 목이 고장나기 전 내 일상은 평범하고 지루한 나날들에 지나지 않았다. 늘어지는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해서 근무를 하고 때가 되면 퇴근을 하고 또다시 출근.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에 몸을 맡기다 보면 작은 일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함을 잊게 된다. 작은 일이라 하면 하루 동안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 내 앞에 펼쳐지는 장면들, 내 옆에 살아숨쉬는 사람들과의 일상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일하러 나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바뀌는 계절을 알려주는 자연들의 변화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으며 곁에서 나를 챙겨주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러웠다. 출근할 때 하늘은 어떤 색인지 주의 깊게 보지 않고 출근길에 들리는 커피집 직원에게 미소를 쉬이 건네지 않으며 퇴근 후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엄마와 나누는 대화들의 1/3은 잔소리로 치부해버린다.
사실 그것들은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자리가 있는 회사가 당연하지 않고 통장으로 꽂히는 월급도 당연하지 않았으며 내 옆에서 환자인 나를 거의 24시간 케어해주는 엄마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아파보니 이제야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남았다.
며칠 전 엄마와의 대화 중 사람은 참 어리석은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모든 존재는 부재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 되며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도 시간이 흘러 그 순간이 지나야지만 소중했었음을 깨닫게 된다. 디스크로 고생하고 있는 이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자명하고도 사소한 사실을 난 먼 미래에 깨달으며 탄식했을 것 같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디스크가 많이 회복되어 일상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지금 깨달은 사실을 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몸속의 자만심이 다시 비집고 올라와 올챙이 적을 기억하지 못할 때 이 시기를 떠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