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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r 11. 2024

아이 편식 혼쭐 내기

훗, 맛이 어떠냐 애송이

우리 집엔 편식 보스가 셋이나 산다. 그중 최고의 편식 끝판왕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며, 두 번째는 12세 막내, 세 번째는 고등학생 아들이다. 무엇이든 잘 먹는 우리 남편 반만이라도 닮았다면 참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까탈스러운 제 엄마를 꼭 빼다 닮았다.


편식의 삶은 참으로 고달프다. 사회생활을 할 때 부끄러운 건 당연하고, 균형 있는 식단으로 건강 관리하기 난이도가 매우 높으며, 계획 없는 여행길에 아무 식당에 들어가 소탈하게 먹는 배포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먹을 때 행복을 느낀다. "편식러가 먹을 걸 좋아한다고?"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린가 싶겠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반려견을 키워 보니 실제로 개는 풀을 뜯어먹는다. 나보다 잘 먹더라....


아무튼, 우리 꼬맹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편식의 길로 들어서는 건 막아야 했으므로 어릴 적부터 식단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하지만 우리 집 첫째는 이유기 때부터 입이 짧고 예민해 빠르게 편식의 길로 들어섰다. 반면 못 먹는 게 없던 우리 기특한 막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점점 안 먹는 게 많아지더니, 현재는 이인자의 자리에 우뚝 섰다. 큰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이것저것 잘 먹기 시작했으니 막내도 기다려 봐야 알겠지만, 이대로 가면 분명 끝판왕이 바뀌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12세 녀석 아주 혼쭐 내주겠어!

우리 집 12세가 가장 싫어하는 건 누가 뭐래도 피망(파프리카)이다. 편식 음식의 대명사가 '피망'이니 그리 놀랄 것은 아니지만 어이없는 건 피망 향은 또 좋단다. 피망 없이 향만 나게 요리해 달라는 12세의 갑질에 17년 차 엄마가 뿔났다. 피망을 싫어하는 짱구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는데, 참으로 귀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오늘에야말로 본때를 보여줘야 할 듯하다.


그런 고로, 싫어하는 음식을 저도 모르는 사이 먹게 하는 엄마의 은밀한 작전이 시작됐다!



싫어하는 음식으로 혼쭐 내기 1탄.

감자 크로켓 - 피망 향의 비밀



1. 피망보다 식감이 연하고, 단맛이 좋은 파프리카를 사 온다. 색은 노란색이 가장 좋다. 그리고 양파, 당근과 함께 잘게 다진 후에 수분을 날려가며 볶는다. 최대한 잘게 다지는 것이 포인트!!



2. 감자를 깍둑 썰어 전자레인지에 익히고, 볶은 채소와 소금, 후추를 넣어 반죽한다.



3. 치즈를 넣어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한 후에 밀>계> 빵 순서로 튀김옷을 입혀 앞뒤로 바싹하게 튀긴다.



'훗, 맛이 어떠냐 애송이! 맛있어 죽겠다는 그 크로켓에, 싫어 죽겠다는 파프리카가 잔뜩 들어있다는 사실을 절대 모를 거다! 두 번째로 싫어하는 양파까지 제대로 들어갔으니, 먹기 싫다는 말을 어디 한번 해 보시지!'



잘게 다진 노란색 파프리카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볶음밥이나, 피자에도 제법 티 안 나게 조리할 수 있다. 피망은 싫지만 피망 향은 좋다던 우리 꼬맹이의 갑질에 살아남은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만들면 "파는  맛있지만, 피망이 씹혀서 도저히 먹을 수 없어. 그런데, 엄마가 만들어 준 건 맛은 똑같은데 피망이 없어서 좋아."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싫어하는 음식으로 혼쭐 내기 2탄

식빵 크루통 - 촉촉한 식빵 속은 나의 몫



우리 집 12세 좀 보시라~ 식빵을 만들어줬더니 얄밉게 속만 파먹었다. 이건 못 참지! 지금이야말로 혼쭐 낼 최적의 타이밍.



1. 식빵 테두리를 잘라낸 후에 잠시 보관한다.



"너만 테두리 싫으냐? 나도 싫다 식빵 테두리!!!" 이제 이 촉촉한 식빵 속은 내가 먹을 차례! 속이 파내어져 조금 못생겨졌지만 나름 큐브 모양으로 잘라 버터에 굽는다. 커피를 내리고 생크림을 찍어 먹으며 아침 청소 후 잠깐의 힐링 타임을 갖는다.



2. 식빵 테두리는 원하는 크기로 잘라 오븐에 굽는다(180℃ 5분> 섞어서 2분). 버터를 많이 넣어 만든 식빵이라 나는 생략했지만, 녹인 버터, 설탕, 파슬리, 약간의 소금을 넣어 섞은 후에 구우면 맛과 풍미가 더욱 풍성해진다.



"그렇게 속만 파먹으면 테두리를 안 먹어도 될 줄 알았지? 하지만 지금 손이 멈추지 않아 마구마구 먹고 있는 크루통이 바로 네가 남긴 식빵 테두리다 애송아! 후훗"


그냥 먹으면 과자처럼 바삭바삭하고, 고소해서 계속 손이 가고, 스프와 함께 먹으면 든든함이 배가 된다. 샐러드에 넣어도 좋고, 우리 남편은 감바스랑 함께 먹는 걸 아주 좋아한다.




우리 편식 보스들에게 채소 먹이느라 지금도 고생 중인 엄마들이 많겠지. 그중 제일은 울엄니였을 것 같지만 혼쭐 내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아니 실패한 줄 알았다.

이럴 수가!


그러고 보니,

"너 닮은 아이 낳아 보라"던 그 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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