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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영이 Apr 07. 2023

소심해서 죄송합니다


구일은 유난히 작은 회사가 좋았다.


구일은 자기 객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카메라를 잡았던 웹드라마 제작사에서, 자신이 대기업에서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진취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치열한 진급 체계가, 복잡한 사내 조직도가 구일의 체질에는 영 맞지 않았다. 마치 SNS에 자주 등장하는 모바일 게임 같다고 생각했다. 자기보다 크기가 작은 물고기들을 집어삼키면서 살아남는 그런 생태계.


구일은 물고기 보단 소라게 같은 사람이었다. 매일 뭐 그리도 할 얘기가 많은지 깔깔대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탕비실을 지날 때마다, 바글바글한 촬영장을 뚫고 감독의 불호령이 귀에 꽂힐 때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게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도 언젠가 자신에게도 향할 것 같아 불안했다. 그래서 항상 웅크리고 지냈다. 자신이 언급될 것 같거나 자신을 향한 시선이 느껴지면 상상 속의 소라고동 속으로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스스로 한계를 만들었다. 아무리 연봉이 높고 복지가 끝내준다고 한들 대형 방송사나 제작사는 꿈도 꾸지 않기로. 그건 분명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일 테니까. 비록 그 과정에서 자존심이 조금 깎여 나가고 명함은 점점 초라해졌지만 정신 건강만은 지켜낼 수 있었다. 구일은 자신의 생존에 있어 중요한 게 어떤 것인지 판단할 줄 알았다.


구일은 남자치고 단 것을 꽤 좋아했다. 늘 아메리카노를 달고 사는 동료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초콜릿 프라페를 마셨다. 어른인체 하며 더 이상 달콤한 것을 찾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달달한 만큼 기분은 좋아지는 법인데. 증명이라도 하듯 구일의 책상에는 언제나 몽쉘 껍질, 소다 캔 따위가 굴러다녔다.

구일은 눈물도 많았다. 누가 우는 것을 지켜만 봐도 눈물이 왈칵 솟았다. 최근에는 주기적으로 할리우드 아역배우의 수상소감 영상을 찾아봤다. 고사리 손으로 트로피를 쥐고 울먹이는 아역배우의 모습이,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는 배우들의 표정이 구일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카타르시스는 당도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다.


쭉 이대로 살고 싶었다. 회사 문 밖을 나서는 순간, 일에 대한 생각은 모조리 잊고 집에 돌아와 재밌는 영상 모음집 따위를 보는 삶. 주말엔 집 앞 카페에서 계절 과일 타르트를 먹고 쌀쌀한 날에는 그저 이불속에 틀어박혀 하루를 보내는 그런 삶. 그 때문이었다. 작디작은 유튜브 콘텐츠 회사로 이직한 것도.


구일이 맡은 웹드라마팀은 작가도 한 명, 음향도 한 명, 조명도 한 명뿐이었다. 마치 구일을 위한 맞춤형 소규모 제작팀 같았다. 소리치지 않아도 충분히 잘 들리는 규모. 가만히만 있어도 친목이 쌓이는 아주 작은 규모. 게다가 옆자리의 정작가는 친절하기까지 했다. 매일 구일이 점심을 혼자 먹진 않는지 확인했고 탕비실에서 과자를 가져올 땐 꼭 구일의 것도 챙겼다. 과연 모든 입사자에게 이렇게 친절한 걸까. 구일은 섣부른 사람이 아니었지만 정작가가 집에서 안 쓰는 새 텀블러까지 가져다주었을 때 확신했다. 이건 조금 특별한 대우일 거라고.   


술김이었다. 용기를 내어 다가간 것은. 마침 제작팀의 회식 날이었고 정작가는 홀로 야근 중이었다. 대본을 쓴다고 혼자 고군분투하는 정작가의 모습이 그날따라 안쓰러웠고 오랜만에 적당히 술이 올라 자신감이 붙었다. 갑자기 자신의 깜짝 방문이 정작가에게 위안이 될 것 같다는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생각만 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미 구일의 머릿속에는 오피스 로맨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2차를 가네마네 시끌벅적한 사람들 틈에서 슬쩍 빠져나와 다시 사무실을 찾았다. 편의점에서 4구짜리 페레로로쉐를 사들고서.


"이것 봐! 정작가님 혼자 이러고 있을 줄 알았다니깐?"

"어머, 왜 다시 오셨어요?"

"아직까지 야근하고 있을 것 같아서... 자, 일단 이거 받으시고."


호기롭게 사무실 문을 젖혔지만 막상 초콜릿을 건네고 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차 싶었다. 취기가 오른 나머지 자신이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마침 모니터에 정작가의 대본이 눈에 들어왔다.


"드라마 많이 봅니까?"

"그럼요!"

"어떤 작가 작품을 가장 좋아해요?"

"전 작가로서의 이병헌 감독을 존경해요."

"<멜로가 체질> 보셨구나."

"다섯 번은 봤을 걸요?"

"저는 이병헌 감독 스타일 제일 싫어해요. 굉장히 인위적이잖아. 나 이제 웃긴 대사 칠 거다, 친다, 이제 들어간다 하고 짠!... 뭔지 알죠?"  

"저는 그래서 좋던데요. 자기 스타일 확실하고 유머러스해서."

"근데 정작가님 대본 보면 이병헌 느낌을 내진 않던데?"

"하하, 안 내는 게 아니라 못 내는 거예요. 아직 그 정도 실력이 아니라서요."

"하하하. 저는 정작가님이 그 정도의 경지까지는 안 올랐으면 좋겠어요."


구일로서는 나름대로의 애정이 담긴 말이었다. 이병헌 감독 스타일이 세련되지 않다고 생각했고 정작가와 오래도록 같이 일하고 싶었다. 정작가가 이병헌 감독의 스타일로 성장하는 게 싫었다. 뱉고 나니 또다시 아차 싶었지만 이미 쏟은 말을 주워 담는 방법 따위는 몰랐다. 그저 집에 돌아가는 내내, 자신의 마지막 한 마디가 정작가의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지기를 간절히 빌었다. 절대 멕이는 건 아니었는데...


구일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빨리 아무렇지 않게 정작가에게 말을 걸고 어젯밤의 일을 덮고 싶었다. 정작가와의 관계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정작가에게 먼저 과자를 가져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늘 텅 비어있던 탕비실이 그날따라 활기를 띠고 있는 게 아닌가.  


"뭐야, 자기가 평생 책임질 거야? 누가 같이 일 해준대?"


소심한 사람의 촉은 보통 사람보다 30프로 정도 더 정확하다. 일순간 구일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신의 이야기가 틀림없었다. 얼굴을 들이밀기 전에 귀가 먼저 반응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정작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는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일단 사무실로 후퇴했다. 그런데 어젯밤까지는 한데 묶여 있던 4구짜리 페로로로쉐가 사방으로 분해되어 빛나고 있었다. 정윤 PD 님 자리에 한 개, 경영지원 재원님 자리에 한 개, 마케팅 유니님 자리에도 한 개, 마지막으로 인턴 자리까지. 자신의 몫조차 남기지 않은 정작가의 책상이, 구일의 후회에 대한 대답 같았다.

이미 충분히 조용한 구일이었지만 신이 날 때는 입을 더 다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일단은 다시 웅크릴 준비를 했다. 미안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할 말을 되뇌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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