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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영이 Mar 07. 2023

쪽팔린 기억은 어떻게 잊어야 할까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사랑의 이해>라는 드라마가 하도 이슈길래 정주행 했다. 근데 주인공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영 예사롭지 않았다. 저건 마치 진득하고 뭉근하게 끓여내는 미음 같은 사랑. 사랑이라고 불러도 될지도 잘 모르겠는. 사랑과 이해의 경계에 있기 때문에 제목을 그렇게 지었을까. 세상엔 저런 사랑도 있구나. 아니, 저런 사랑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지켜보는 나는 건조한 맨바닥에 떨어져 숨 가쁘게 팔딱대는 물고기가 생각이 나는데.  


어딜 가나 온화하고 얌전한 인상을 주는 내가 돌연 공격적으로 돌변하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누군가를 좋아할 때였다. 누군가를 마음에 품었을 때만큼은 수줍은 아가씨가 아니라 감정선의 최전방에서 시도 때도 없이 고백 공격을 시전 하는 성질 급한 장군이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멘토 프로그램에서 만난 대학생 오빠를 짝사랑하면서 상사병은 나 같은 사람이 걸리는 병이구나 싶었다. 가만히 누워있어도 한숨이 푹푹 나오고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어느새 시곗바늘이 3시를 가리키는 일이 허다했다. 사랑을 다루기에 너무 어렸고, 첫 경험이었으며, 사랑에 절여져 지내기엔 수험생의 일상이 너무나 바쁘고 빠르게 흘러갔다. 첫사랑 상대에게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을 장난 아니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철없던 시절의 나를 칭찬해주고 싶은, 손에 꼽는 일 중에 하나지만 그때 힘들게 잊은 게 한이 되었는지 지금은 절대 참지 않게 되었다.


내가 조선시대에 살았다면, 아니 당장 이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에서 살았더라면 진작에 앓아누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좋아하는 상대를 생각하면 하루가 다르게 볼이 푹 파이고 플레이리스트는 아이유와 노을의 노래로 무한 반복된다. 입맛이 없는 건 당연하고 눈동자는 '처연함 1호'라는 렌즈를 낀 것처럼 쓸쓸한 빛을 띤다. 오죽했으면 친구가 '맘고생 다이어트'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지금은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사람이더라도 한 번 마음에 담아두면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사모했었다. 그리고 꼭 한 번은 마음을 표현했다. 놀라우리만큼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은 없었지만. 이런 식의 공격적인 접근이 성공할 확률은 희박하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랑이 이어지고 말고가 아니라 빨리 결말을 보는 것이었다. 왜냐면 나는 힘들어 죽겠으니까. 두 번째 상대를 짝사랑하는 날 보며 회사 언니가 했던 말이 명언처럼 남아있다.


"고백하고 아님 말라지, 뭐. 나 너 좋은데 넌 나 어때? 별로라고? 오케이~ 이렇게."


그래, 이렇게 쿨하게 전진하는 거다. 마음을 표현하는 걸 두려워않는 신여성다운 태도가 멋져서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도 빨리 결론을 내야만 하는 내 성질머리에 딱 들어맞는 마인드였다. 너무 섣부른 것이 아닐까, 고백을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망설여질 때는 저 말을 되새기며 용기를 냈다. 오케이~ 아님 말고!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의연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멋지다와 흑역사는 한 끗 차이 같다'는 것이다. 이건 일단 저질러놓고 그다음에 덮쳐오는 시간을 어떻게 견디느냐의 문제다. '어쩔 수 없지. 패스!'라고 태연하게 받아들이면 멋진 거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의 비명을 지르면 흑역사다.


나는 반반이었다. 재료를 손질하고, 물을 끓이고, 푹 익히는 따위의 과정을 모조리 생략한 3분 카레 같은 나의 고백썰을 듣고 경악하는 친구들 앞에서 '더 질질 끌면 내가 너무 힘들 것 같았어'라고 얘기하면 친구들은 '근데 너 진짜 멋있다'라며 감탄을 자아냈다. 그렇게 도도하게 집에 돌아가고 나면, 화장을 지우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냅다 비명을 지르곤 했고. 어떻게 태연할 수가 있어, 사람이. 가끔은 나도 제어할 수가 없이 오그라듦이 몰려와 바로 앞에 사람이 있는데도 참지 못하고 으악!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는 그때그때 순발력을 발휘해 둘러대곤 했다.


"관리비 내는 거 까먹었어."

혹은

"갑자기 발에 쥐가 나서."


그러니까 나는 쪽팔리지 않는 척을 하는 사람이다. 시도 때도 없이 쪽팔린 기억의 기습공격을 받으면서. 근데 쪽팔리다는 것도 누군가의 시선을 전제로 하고 있는 거 아닌가. 나를 비웃고 조롱할 사람들을 상상하니까 쪽팔린 거고 흑역사로 여겨지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결국 멋있는 척을 하는 게 해답이다.

그것마저 애잔해 보이지 않으려면 연기력이 좀 필요할 거다. 그러니 좀 뻔뻔해져야겠다. '섣부른 거 아는데 질질 끌기 힘들어서 고백했어.'라고 말하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으면 곤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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