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어느 휴일 북카페에서 에세이집을 읽고 있었어. 생각보다 재밌더라고. 주문했던 아이스커피도 맛있고. 읽다 보니 해외여행에 대한 재밌는 일화가 나오더라. 평소 같았으면 글 속의 여행지를 상상하면서 작가의 기억에 빠져들어야 하는데 문득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어. 공통점이라고는 ‘해외여행’이라는 키워드뿐이었는데 말이야.
난생 첫 해외여행이었어. 목적지는 베트남 다낭. 공항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가득했어. 왜 경기도 다낭시라고 하는지 알겠더라. 사람은 많은데 입국 심사는 어떻게 하는 건지, 검색대는 어떻게 지나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는 건 나뿐인 것 같아서 엄청 긴장한 상태였어.
공항 검색대 레일 제일 끝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야. 소지품이 담긴 바구니에 손을 올리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손등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지는 거야. 슬쩍 돌아봤는데 평범한 한국인 아저씨였어. 근데 보통은 손이 닿으면 피하기 마련이지 않아? 그 사람은 점점 더 지긋이 손등을 붙이더라. 일부러 내 손등에 자기 손을 가져다 누르고 있었어. 참 이상해. 손을 덥석 잡는 것도 아니고 손등을 탁 쳐내는 것도 아니고 꾹 누른다니. 돋보기안경 너머의 탁한 눈동자. 아래로 휘어진 입꼬리와 아무것도 모르는’체’하는 표정.
아마도 얼굴을 봐버려서 쉽게 잊혀지지가 않나 봐.
기억은 연쇄적이야. 한 가지 기억을 떠올리면 가지치기하듯 다음 기억이 연상돼. 2022년 다낭행 공항 그다음은 2016년 강남역이야. 동굴처럼 긴 에스컬레이터에서 내 치마 속을 찍으려고 했던 남자. 내 다리 사이에 닿던 낯선 손등의 감촉.
그리고 나는 순식간에 2014년 만원 지하철로 이동해. 미어터지는 지하철. 쏟아지듯 내리는 사람들. 천천히 닫히는 출입문. 문 너머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던 눈빛. 내 몸에 닿았던 손의 주인.
서로 다른 시공간의 세 사람이 세트로 떠오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나도 처음에는 신체접촉이라는 공통점 때문인 줄로만 알았거든?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하나같이 유사한 표정을 짓고 있었네. 너무 평온해서 혹시 내가 오해한 건가 싶게 만드는 그런 표정, 본 적 있어?
이런 기억은 끈적끈적해. 아무리 털어내고 지워내도 어딘가에 끝까지 들러붙어 있어. 그리고 예고도 없이 어느 순간 나를 잡아끌어. 갑자기 날아온 돌멩이 같기도 하고 골목에서 튀어나온 자동차 같기도 해. 아니다. 드라마에 꼭 불길한 복선을 주는 캐릭터들이 등장하잖아?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쎄한 표정을 짓거나 찜찜한 대사를 은근슬쩍 뱉거나 언젠가 사달을 낼 것 같은 등장인물들. 내 기억들은 딱 그런 느낌이야. 언젠가 내 일상을 망가뜨리고 말 시한폭탄.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했고 이제는 입밖에 꺼내지도 않는 일들이 되었지만 온전히 잊는 건 불가능한가 봐. 십 년 가까이 된 이야기도 있지만 지금도 불시에 생각이 나는 걸 보니 전혀 괜찮은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
친구들은 나를 위해 그 사람들을 욕했어. 그렇지만 그런 고마운 공감과 대리분노는 정작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었어. 가장 쓸데없는 말은 잊어버리라는 말이었어.
‘잊으라.’
나는 이 말이 인간의 성질을 부정하는 대표적인 표현이라고 봐. 기억은 문자와 코드로 이루어져있지 않아. 기억이란 게 지우고 싶은 부분을 블록 설정해서 백스페이스를 누르면 깨끗이 사라지는 것이던가? 사실은 그만 듣고 싶으니 거기까지만 얘기하라는 걸 세 바퀴 반쯤 돌려 말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처음으로 써보기로 했어. 기억이 유기적인 연속체라면 연결고리가 다 닳아서 끊어질 때까지 써버리자.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는 건 한계가 있지만 글은 한번 써놓으면 몇 명에게든 몇 번이고 읽힐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다 쓰자. 계속 써서 꺼내놓자.
‘해외여행’이라는 단어를 마주쳤을 뿐인데 어느새 나는 다낭행 공항 검색대 앞이었고 강남역 지하 에스컬레이터 위에 있었고 만원 지하철 틈새에 끼어있었어. 끌려왔다고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겠지. 상상 속에 다시 소환된 공항남자는 나한테 밀쳐지기도 하고 바구니로 후려 맞기도 해. ‘아저씨 왜 그러세요?’ 똑 부러지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거나 앞서 있던 남자친구를 불러 세워 이르기도 해.
그 끝에 통쾌함이나 후련함은 없어. 그저 짙은 후회만 남아있을 뿐. 나는 언제까지 과거를 후회하고 있을까? 언제쯤 ‘해외여행’하면 강남역, 만원 지하철 따위가 아니라 여름휴가, 수영복 같은 걸 떠올리게 될까? ‘해외여행’이 나에게도 그저 설레기만 한 단어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개빡치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