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살고 보자'가 아니라 ’일단 숨고 보자‘

by 고영이


오랜만에 오후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점심과 간식을 담당하는 조리사로 일하는 엄마에게는 점심 이후부터 간식시간 이전인 이른 오후가 가장 한가한 시간이다. 오늘의 간식메뉴는 달달한 궁중 떡볶이랜다. 엄마는 떡을 물에 불리는 중인지 연간 부시럭대면서 통화를 이어갔다.

"근데 너 요즘 어린이집에서 간식 메뉴에 떡은 죄다 빼고 있는 거 알아?"

"왜? 애기들 혈당 오를까 봐?"

"참나. 최근에 어디 어린이집에서 애기 하나가 떡을 먹다가 기도가 막혀서 죽었대."

"세상에. 난 몰랐어. 그렇게 슬픈 일이 있었네."

"십몇 개월 돼서 좀 큰 애기였는데, 찰떡도 아니고 백설기였는데, 그렇게 됐대."


엄마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 비극적인 영유아 사망 사고 이후로 웬만한 어린이집에서는 각별히 주의하고 있는 분위기인 듯하다. 엄마네 어린이집도 큰 어린이들에게만 떡볶이를 주고 더 아가들은 바나나를 주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슬픈 일은 일어나 버렸는걸. 이런 사고 소식을 들은 후에는 항상 진작에 좀 더 조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무 의미도 없고 그저 결과론적인 안타까움이 솟는다. 떡 말고 또 뭘 조심해야 안전할까. 하등 위험해 보이지 않는 물건들도 드물게 어떤 가능성을 만나면 흉기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내 손 떠나 있는 동안에는 정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구나. 그럼 어떻게 맘 놓고 애를 키워? 나는 불안해서 못 키울 것 같아."

"그래도...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지. 나한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키워야지."

"근데 엄마, 나도 어렸을 때 기도 막힌 적 있다?"


첫 번째 사건은 바야흐로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그 당시에 작은 플라스틱 컵에 담겨 포장된 망고 젤리가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망고 젤리가 가득 담긴, 손잡이 달린 노란색 뚜껑의 플라스틱 통은 어느 집에 가나 있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고.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던 나는 엎드려서 젤리를 홀짝이며 책을 보고 있었다. 젤리를 이번 숨에 삼킬까, 다음 숨에 삼킬까, 빨아들일까 말까 입에 닿을락 말락 장난을 치면서.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가 헙 하고 망고 젤리 덩어리가 순식간에 목구멍에 밀려들어왔고 꽉 막힌 목구멍은 젤리를 삼키지도 뱉어내지도 않고 숨통을 조였다. 아마 기도가 막힌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그냥 목에 젤리가 걸렸고, 왠지 숨이 안 쉬어진다는 것 밖에 몰랐다.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다 못해 두려워했다. 학교 친구들이든, 친척이든, 가족이든 친밀함과는 관계없이 누구에게든 똑같았다. 사람들이 나에게 호들갑을 떨며 관심을 집중하는 게 못 견디게 불편하고 식은땀이 났다. 지금의 나도 여전히 그렇지만 이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저 그렇게 타고났다고 볼 수밖에. 하임리히법이란 게 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유치원생인 주제에 기도가 막힌 상황에서도 켁켁대며 바닥을 구르기에는 너무 부끄러웠나 보다. 당황한 와중에 숨을 못 쉰다고 바로 깩꼬닥 죽지는 않으니까 나에게 생존을 위한 1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 널려있던 웅진 씽크빅 수학 학습지를 펼쳤다. 세로로 넘기는 책자에 단면 인쇄가 된 수학 학습지였기 때문에 뒷면은 백지였다. 백지를 뒤집어 펼쳐 파란 지구색연필로 최대한 크고 빠르게 갈겨썼다.

'목에 쩰리가 걸렸어. 숨이 안 쉬어져.'


그렇게 급조한 플래카드를 들고 엄마 앞에서 차분하게 흔들어댈 생각이었을까? 방송 작가처럼? 그건 알 수 없다. 왜냐면 플래카드를 어떻게 써 보기도 전에 상황이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플래카드를 완성하는 동시에 글씨를 쓰느라 구부렸던 상체가 막힌 기도에 도움이 되었는지 망고젤리가 툭하고 입안에서 튀어나왔다. 죽다 살아난 유치원생이 된 나는 입안으로 돌아온 망고젤리를 신중하게 씹어먹으면서 다시 읽던 책을 마저 보러 갔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두 번째 사건은 중학교 시절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던 보습학원 자습실에서였다. 나는 중학교 때 꽤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고 특히 수학은 (중학교 수준이지만) 배우는 족족 마스터하고 고난도 문제를 풀어낼 정도로 수월하게 진도를 나갔다. 그래서인지 여유가 넘쳤고 어쩔 때는 살짝 건방지기도 했던 것 같기도 하며 그게 태도에도 슬며시 배어들었다. 단정하게 머리 박고 문제만 풀던 내가 점점 자습실에서 딴 짓을 하며 의자를 뒷다리로만 간당간당하게 지지하는, 모범생 딴에는 나름 불량한 자세로 앉아있곤 했다. 그날도 자습실에서 의자로 간당간당하게 중심을 잡으면서 친구와 떠들고 있었다. 입에는 커다란 청포도 사탕을 문 채로. 그 순간, 간당간당하던 의자가 중심을 잃고 홱 뒤로 넘어질 뻔하면서 헉 하고 놀란 호흡을 따라 청포도 사탕이 기도로 빨려 들어갔다. 다행히 책상을 붙잡아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아무리 작은 동네 학원 자습실이라지만 조용한 학원인 데다가 늘 시크하게 다니는 게 컨셉이던 중딩이 어떻게 헉헉대며 도움을 청하고 시선을 집중시킨단 말인가. 입을 뻐끔거리며 목을 부여잡고 팔다리를 휘젓는 모습은 얼마나 기괴할 것인가. 원장과 선생님들이 달려 나오면 교실에 있던 학생들도 내 모습을 구경할 것이고 그럼 내 체면은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그래서 일단 학원 밖으로 뛰쳐나갔다. 학원 문을 박차고 복도에 나오자마자 방법을 몰라서 허리를 폴더처럼 접고 구역질을 했다. 30초쯤 지났을까? 톡, 톡, 데구루루. 입안에서 청포도 사탕이 튀어나와 복도를 굴러갔다. 그렇게 다행스럽게도 상황 종료. 나는 정말 오만가지 생각 속에 죽다 살아났는데, 내 뒤를 쫓아 나온 친구가 박장대소를 했다.

"나는 네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뛰쳐나오길래 복도에다 잔뜩 토할 줄 알았는데 입에서 고작 사탕 한 알이 튀어나온 게 너무 웃겨! 하하하!"


듣다 못한 엄마가 참지 못하고 내 위기탈출 넘버원 무용담에 끼어들었다.

"너는 그런 걸 사람들 많은 데서 해야지, 왜 꼭 아무도 없는 데서 그러니?"

"사람들한테 시선 집중되는 게 싫단 말이야."

"죽는 것보다 더?"


역시 엄마는 나의 내향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일단 살고 보는 것보다 숨고 보는 게 더 우선할 수도 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뭐 어때! 남들은 너한테 아무도 관심 없어!’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던걸. 우리 엄마, 너무 맘 편하게 육아를 한 것이 아닐까. 엄마는 나를 아직도 이렇게 모르는데 내가 벌써 서른을 넘겼다. 엄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다행히도 운이 좋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착한 게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