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게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어

by 고영이

고백하자면, 저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성격이 좋지 않습니다. ‘고영님 성격 진짜 좋다?’라는 말이 들려오면 어깨가 솟아오르고 설레서 오버하고 싶은 기분이지만, 동시에 묘한 이질감을 느껴요. 착해 보이는 게 저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믿어왔지만 실은 그것마저도 저의 빈틈이었던 거죠. 29년쯤 사니까 알게 된 걸까요? 착해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다는 걸.


‘어머, 너 정말 피부가 좋다!’라는 칭찬을 받으면 얼굴에 생기는 아주 작은 잡티 하나에도 집착하게 되는 것처럼, 착하다는 말도 한번 듣는 순간 착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만드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진 몇 안 되는 장점을 겨우 누군가 봐주는 것 같아서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나이스 한 사람이 되려고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누르며 살았는데 지나고 보니까 정작 당당하고 뒤끝 없는 사람은 자기 주장을 하는데 있어서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아이고, 억울해. 그래서 칭찬도 책임감 있게 뱉어야 해요. 저를 칭찬으로 다루려 했던 모든 어른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네요.


'착하다'라는 말에 아쉬울게 없어지자 사람좋게 웃으며 넘겼던 많은 순간들을 오래전부터 복기하고 후회하면서 때로는 억울함에 밤잠을 설치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도 괜찮겠다는 기분입니다. 부끄럽기보다는 되려 ‘내 기분이 더 중요한거 아니야?’ 하면서 발끈하게 되는 것도 사실은 저도 착하게 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칭찬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자. 앞으로 사회생활하면서 1순위로 명심하게 될 좌우명이 생겼습니다. 이제 착한척은 그만 하려구요.


바로 전 직장에서였던 것 같아요. 착하다는 건 사실 바보 같다는 말을 돌려 말하는 것은 아닐까, 깨닫게 된 곳은요. 안타깝게도, 제 인생 29년 차의 일입니다. 좀 많이 늦게 깨달아버렸어요. 유튜브 콘텐츠 회사였어요. 저는 작가였고요. 요리의 기본이 청결이라고들 하죠. 그럼 영상의 기본은 정확성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오탈자가 없어야 하는 거죠. 카톡 하나를 보내도 실수로 맞춤법을 틀리게 보내면 그거 하나로도 사람이 굉장히 가벼워 보이잖아요? 그래서 자막 검수라는 과정이 필요한데, 검수라는 거창한 단어를 쓰곤 있지만 맞춤법 검사기에 복사 붙여넣기만 하면 되는 단순 반복적인 작업이랍니다. 맞아요, 귀찮고 성가시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죠. 그래서 제작 1팀과 2팀 인원이 번갈아가며 했어요.


자막 검수 방이라는 단톡방을 파고 1팀을 초대하고 한 달이 지나면 1팀을 내보내고 다시 2팀을 초대하고 그런 방식이었답니다. 공평하게. 그런데 교대하는 때가 되어도 제 이름은 검수방에서 빠지질 않더라구요. 엥? 나는 왜? 그래서 담당 PD 님께 달려가 물어봤습니다.


“차례 끝났으니까 저도 단톡방에서 나가도 되죠?”

“아뇨, 고영님은 남아있어요.”

“... 왜죠?”

“고영님은 착하잖아~”


칭찬으로도 뒤통수를 후려칠 수 있더군요. 그러나 악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린애한테도 안 통할 빈약한 칭찬으로 휘둘릴만한 사람으로 얕보였다는게 저의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죠. 문득 22살, 첫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가 저에게 툭 던졌던 말이 스쳐 지나갔어요.

“넌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구나.”


콤플렉스는 부정적인 단어입니다. 고쳐야 할 병이구요.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어도 병은 병이에요. 그땐 지금보다도 한참 세상을 덜 살아봤을 때라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저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고 내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다툼을 피하는 게 더 좋아 보이던 때였어요. 내가 착하게 살겠다는데 지가 왜 지랄이야?


그 후로 7년 뒤, 꾸준히 착하게, 아니 착해 보이려고 살아온 노력에 대한 대가가 움푹 파인 뒤통수라니. 말이란게 참 대단해요. 지난 7년간의 기억을 책장 넘기듯 휘리릭 훑어보게 하는 힘을 가졌으니까요.


그제서야 비로소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기도 하고 전구에 불이 켜진 것 같기도 한다는 깨달음이 찾아왔어요.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착한 것이구나. 내가 이제껏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나한테 하나라도 좋은 게 떨어진 적이 있었던가?

아뇨, 단 한 순간도.


‘저 사람 참 착해.’라는 칭찬이 가져다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오히려 칭찬을 한번 듣는 순간 칭찬 감옥에 갇혀 맘대로 행동하지 못하게 되죠. 한 번 더 생각해요. 저 사람이 나는 아무하고나 잘 지내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 이 말을 해도 계속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사람일 수 있을까? 그럼 가만히 있어야겠다. 웃어줘야겠다. 양보해야겠다. 내가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베풀어야겠다. 나는 그래야 마음이 편안한 사람일 거야.


성향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고집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바뀌기 쉽지 않더라구요. 스스로를 바꾸기 힘들 때 가장 쉬운 방법은 따라하기에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학교 선배, 지수 언니가 있습니다. 지수 언니는 저와 아주 극과 극인 사람, 내가 동쪽 끝에 서있다면 서쪽 끝에 서있는 사람, 나를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예요. 네, 맞아요. 저는 지수 언니를 따라 하기로 했어요. 어찌나 냉철하고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인지, 언니는 소설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장르의 존재 의미를 모르겠다나요. 감정 이입이 너무 재밌어서 소설책만을 찾아 읽는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어요. 대신에 경제학 원리라던가 블록체인에 대한 책은 재미있어하더라구요. 명확한 설명과 지식의 습득. 그게 언니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세계에요. 어떤 사람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하루는 지수 언니에게 저의 깨달음을 이야기했어요.


“언니.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착한 거 같아.”

“그걸 이제야 알았어? 더 살아라, 고영아.”


지수 언니는 멋진 변호사가 되었으니 제가 이렇게 촉촉한 마음으로 저의 모자람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있을 때 언니는 안경을 치켜올리고 소명서를 쓰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제는 착하다는 말 따위 하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무에게나 함부로 친절하지도 않을 거구요. 이제 더 이상 착한 척은 하지 않으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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