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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영이 Aug 16. 2024

잔머리에 대한 고찰


나처럼 잔머리가 많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정수리 앞머리 할 것 없이 사방으로 잔머리가 너무 많아. 죽은 머리가 새싹처럼 새로 나는 건지 아니면 자라다 말고 성장이 멈춰버린 건지 언제나 짧은 머리칼들이 정수리 위로 달랑거려. 잔머리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알 거야. 물을 묻혀 정돈하는 건 정말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라는 걸. 오히려 젖었던 머리칼이 방실-하고 마르면서 더 높이 떠오르기도 해. 거의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이지.


처음 내 잔머리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 건 대학교 1학년 때였어. 친한 선배 언니가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참다 참다 터져 나오듯이 말하더라고.


“지금 너 잔머리밖에 안 보여. 어떻게 좀 해봐!”


어쩐지 사람이 얘길 하는데 눈을 안 보더라니 내 잔머리에 시선을 뺏겼던 거구나.

그때부터 있는 줄도 몰랐던 잔머리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어. 데생 연습을 하다가 삐끗해서 잘못 나간 선들이 내 정수리에 모여있는 것 같았어. 이렇게나 많은데 왜 한 번도 알아채지 못했을까? 그때부터 머리를 열심히 빗고 화장실 갈 때마다 물도 좀 묻히고 잔머리용 스틱 왁스라는 것도 사봤지만 결과는 효과 없음. 뭘 해도 도저히 정돈이 안 된다야. 내 몸인데 내 맘대로 되지를 않다니. 이젠 그냥 포기해야 하는 것 같아. 이 간질간질한 작은 머리칼들은 미용실에서도 어쩌지 못하더라고. 기술자도 못한다는데 그냥 끌어안고 살아야지, 뭐.


근데 참 신기한 게 내 잔머리를 인지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사람들의 잔머리가 자꾸 보여. 지금의 나처럼 무던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얌전히 재우지 못한 뻣뻣한 작은 가닥들이 보이기도 하고 예전에 나처럼 그게 있는 줄도 모르는 상태로 달고 다니는 정수리가 보이기도 해. 이런 것도 알고 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해당하는 걸까? 어쩌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정신건강 상 더 나았을 수도 있겠다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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