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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Apr 21. 2024

숨기고 싶은 감정은 꽃처럼 피어나더라(2)

부산 & 잠실. 롯데시네마. 세기말의 사랑.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본 글은 2편으로 나눠 연재합니다. 이전 글을 읽고 오시길 바랍니다.


2. 감정의 씨가 퍼져 꽃이 피기까지

흑백의 시대는 영미가 자신 외에 다른 사람과 거의 아무런 교류를 하지 않는 영미의 시체로서 삶을 그리기에 답답하다. 영미를 중심으로 한 스크린은 영미의 시점에 갇혀 있거나 영미라는 인물의 육체가 미치는 공간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다. 안 그래도 스크린에 갇혀 있는 세계는 영미라는 한 인물과 인물의 색에 한정된 듯 답답하다. 당장 흑백의 시대가 끝나가는 장례식장 장면의 끝을 보자. 영미는 장례식장에 조문하러 온 도영을 보고 새천년이 오면 세계가 망할 것이고 그러면 도영에게 가졌던 자신의 감정이 단 한 번도 표현되지 못한 채 끝날 것이라는 것을 깨닫자 허무함과 두려움에 빠진다. 그 허무함과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도영을 붙잡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호텔로 도망친다. 하지만 정작 호텔에서 도영과 단 둘이 있는 동안 아무런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 대다가 결국 자기 감정은 표현도 못하고,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마야인들의 예언과 달리 새천년이 왔음에도 세계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세기말의 사랑>은 세계는 끝나지 않았고 도영과는 호텔에 단 둘이 있어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스러운 어색함을 견디는 영미에게 더 시간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언제 영미가 도영화 호텔로 간 적 있었냐는 듯 자신을 체포하러 온 형사가 깨우는 소리에 아무도 없는 장례식장에서 눈을 뜨는 영미로 시점을 바꾼다. 영미가 눈앞에 있는 도영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을지 모를 호텔이라는 시공간은 더러워진 영미의 발 외에는 자취를 감춘다. 오히려 뻗어나가려는 것처럼 보인 영미의 감정은 어느새 형사와 단 둘이 있는 취조실을 거쳐 컴컴한 스크린으로 사라진다. 마지막 순간까지 영미에게 종속되어 있는 스크린은 영미가 감옥에 간다는 결말로 더욱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컴컴한 스크린을 지나 도래한 유색의 시대는 마치 빅뱅과 같다. 완전히 대조되어 모든 것에 색이 입혀진 이 시대가 펼쳐진 스크린은 더 이상 영미에게 종속되어 있지 않다. 영미에 의해 혹은 영미도 모르게 조정되지 않는 이 시대는 영미 바깥에서 영미에게로, 영미에서 영미 바깥으로 끊임없이 육체와 감정이 오고가며 섞인다. 그리고 오고가며 섞이는 육체와 감정은 스크린을 너머 관객에게도 변화를 일으킨다. 우선, 흑백 시대에 한 시공간에 한 사람과 있는 것도 드문 영미는 유색 시대가 되자마자 두 사람을 만나 한 시공간을 공유한다. 출소하면서 쨍한 하늘색 머리를 한 오준이 몰고 온 빨간 차를 탄 유진과 만나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다음으로 영미는 유진과 어딘가 애매하디 애매해 계속해서 변화하는 관계를 맺는다. 영미와 유진은 각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각각 불편한 사모님과 내연녀이다. 그렇기에 유진이 영미를 만났을 때 도영의 마누라라고 본인을 소개할 때 영미와 유진의 관계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진이 영미의 도움으로 장애인 화장실에서 간신히 볼일을 보는 장면을 보면 영미와 유진은 결혼 제도 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처럼, 육체의 자유 면에서 강자와 약자처럼 보인다. 즉, 둘의 관계는 어느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워 계속해서 엎치락 뒷치락 하는 관계인 것이다. 마치 지지고 볶게 될 연인처럼.

출처. 왓챠피디아

관계만이 아니라 감정도 끊임없이 넘실거리며 퍼진다. 흑백의 시대가 끝나는 과정에서 관객은 두 개의 정보를 알게 된다. 도영에게는 아내가 있다는 사실과 그 아내가 사치스럽다는 사실. 당연히 도영이 미혼일 것이라 생각한 영미만큼이나 영미에게 종속된 스크린에 갇힌 관객들에게 도영이 기혼이라는 사실은 굉장히 충격적이다. 거기에 도영이 회사 공금을 횡령한 이유가 사치스러운 아내의 카드값을 갚기 위해서라는 사실은 마치 영미가 도영의 아내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찝찝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런데 마치 빅뱅처럼 펼쳐진 유색의 시대처럼 이 충격적이면서 찝찝한 정보는 영미가 출소하며 유진을 만나며 순식간에 의문으로 바뀐다. 사치스러운 여자일 것이라는 인상과 다르게 유진은 복지관에서 지랄 1급이라 불릴 정도로 직설적인 말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지체 장애인이며 도영이 횡령한 공금으로 산 명품들은, 영미를 만나러 오며 산 구두까지도 이상하게 모두 가품이다. 자신이 감옥에 간 사이 집을 처분한 규태 때문에 당장 살 집도 입을 옷도 없는 영미에게 돈을 갚겠다고 한 유진마저도 돈이 없는 상황. 좋든 싫든 계속해서 함께 살아야 하는 영미는 더 이상 감정을 자신에게만 숨긴 채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살 수 없다. 돈 때문에 도와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찾아간 오준의 부탁을 거절 못해 평생 해볼 일 없을 주황 머리를 해보고, 지랄 1급인 유진의 성격을 받아주다 빈정대기도 하며, 자신을 속인 채 몰래 만나고 있던 규태와 새언니 미람(정은 분)에게 화도 내야 한다. 유색의 시대에서 스크린 속 세계는 영미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감정은 영미만 넘실거리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세기말의 사랑>에서 영미를 비롯한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붙들고 늘어지며 자기 삶의 경계 안을 맴돌던 이들이다. 유진은 목 아래로 몸이 서서히 굳는, 임신을 해 출산을 할 경우 발병률이 50%인 유전병을 앓고 있다. 그런 그가 지체장애인이 된 것은 자신의 첫 사랑이자 호구 1번인 기훈(김기리 분)을 속이고 자신의 딸이자 조카인 미리(장성윤 분)를 낳았기 때문이다. 유진은 언니의 도움을 받아 모두를 속이고 자신의 미래를 포기한 채 모든 것을 감내하며 산다. 유진이 지랄 1급인 이유는 자신이 사랑하는 모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감내하는 가운데 육체가 구속되어 발산할 수 있는 것이 감정 밖에 없기에 나오는 반작용일 게다. 그런 유진의 감정은 타인이 보기에 지랄 1급일 정도로 감내하기 어렵기에 받아들이기 어렵다. 유진의 주변에 구석기처럼 구린 센스를 가졌으나 순수하게 자신을 사랑한 도영이 있었기에, 날카롭고 직설적인 감정을 알아주고 곁에 있어주는 오준이나 기훈이 있기에 그나마 색을 가질 수 있을 뿐 실제로 유진 역시 영미와 마찬가지로 자기 삶의 경계 안으로 타인을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나마 경계 안으로 들어오게 도영은 딸이자 조카인 미리의 사건·사고로 감옥에 상태이니 실상 유진도 감정을 온전히 공유하고 나누는 사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유진에게 영미는 어떤 의미에서 도영을 대신할 수 있는 존재이다. 딸이자 조카 미리가 가출해 쓴 카드값을 막겠다며 공금을 횡령한 도영을 위해 공금을 대신 채워넣은 경리. 누가 봐도 도영에게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 여자에게 유진이 가장 먼저 한 질문은 "도영이랑 잤어?"이다. 유진의 입장에서 이 질문은 단순히 영미를 내연녀라 여기며 질투감을 표출하는 질문이 아니다. 도영과 자신이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 도영의 빚을 갚기 위해 계약 결혼을 했다는 사실, 딸이자 조카인 미리를 위해 도영이 공금을 횡령했다는 사실 등.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유진에게 도영은 정말 순수하게 자신을 사랑해준 존재이다. 그런 도영을 사랑하는 여자 영미는 은인과 경쟁자의 경계에 서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도발적으로 "도영이랑 잤어?"하는 순간을 보면 유진이 영미를 추궁하는 것 같지만 몸을 가누지 못하기에 유진은 영미에게 기대지 못하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지 못한다. 원래라면 도영이 했을 일을 대신하고 가족의 일에 휘말렸으며 도영에게 감정을 가지고 있는 여자. 영미는 알게 모르게 이미 유진의 삶에서 도영의 위치를 공유하고 있던 존재인 것이다.


이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애매한 존재이기에 영미와 유진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섞이는 유색의 시대는 좌충우돌 다채롭다. 가장 다채로운 장면일, 유진과 영미가 함께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날을 되짚어보자. 딸이자 조카이며 집을 나간 미리가 홍대 어느 바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미리를 찾아 온 유진은 영미의 앞에서 미리에게 찾아오지 말라며 밀려나는 모습을 보인다. 서로에게 비수를 꽂는 말을 하는 가운데 미리의 앞에 엄마이면서 이모로 앞에 서있는 유진의 모습은 유진이 희생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모습이다. 우연하게 규태와 미람이 자신을 속인 채 계속 만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빌린 돈을 갚을 능력까지 있다는 걸 알게 된 영미는 유진 앞에서 규태에 의한 화재로 어린 시절 남은 화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된다. 자신의 분노와 답답함을 숨긴 채 돈을 갚아달라는 하소연만 도돌이표로 하던 영미의 화상은 가슴이 타들어가는 와중에도 참고 참아왔던 흑백 시대 영미의 감정이 영미의 육체로 표출되어 있는 상처이다. 숨기고 싶었을 유진과 미리의 관계를 짐작하고 있던 영미와 감추고 싶었을 몸의 화상을 보게 된 유진은 각자가 숨기고 싶었던 가장 큰 비밀을 공유한 것과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몸을 씻겨주던 영미에게 유진은 도영과 잤는지를 장난스레 묻고, 몸의 화상을 보고 맨드라미를 닮았다고 한다. 유진이 맨드라미를 닮았다고 발화하는 순간은 누군가에게는 타들어가는 감정이 몸에 퍼져 눈에 보이는 상처처럼 보일 화상이 유진에 의해 꽃으로 개화하는 순간이다. 다르게 말하면 영미의 화상을 보고 맨드라미를 닮았다는 유진의 말은 도영의 위치를 대신하고 있는 영미를 향한 사랑 고백이자 뒤섞인 두 사람의 감정을 하나의 꽃으로 형상화하는 언령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제시되듯 맨드라미는 치정과 시들지 않는 사랑이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꽃말을 가지고 있는, 애매하면서 다채로운 꽃이다. 결혼한 도영을 사랑한 내연녀이면서 결혼한 사실을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도 모르게 계속 공금을 채운 지고지순한, 시들지 않는 사랑의 주인공 영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애매하고 다채로운 꽃이 아닌가. 나아가 유진이 화상을 보고 맨드라미를 닮았다고 하는 순간은 맨드라미를 닮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은 채 뻗어나가 퍼진 영미의 화상처럼 도영을 향한 영미의 감정이 우연을 거쳐 유진에게 가닿아 다시 영미에게 되돌아온, 영미가 자신의 감정에 처음으로 응답받은 순간이다. 이 모텔 장면을 통해 맨드라미는 그 모습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건 간에 애매하기에 다채로운 꽃으로서 <세기말의 사랑>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감정의 모습을 대표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치정처럼 보이나 누군가에게는 시들지 않을 사랑으로 보일 애매한 감정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은 채 이어져 있어 지친 상태로 경계에 매달려 삶을 견디고 있는 우리가 흑백이 아닌 유색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출처. 왓챠피디아

그런 점에서 <세기말의 사랑>의 결말부는 독특하게 느껴진다. 유진과 영미의 이별 장면에서 영미와 도영의 만남 장면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결말 이후 에필로그와 같은 구성인데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고 그 뒤에도 계속 세 사람이 삶의 영역을 공유하고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영미는 이별하는 과정에서 유진이 감옥에 있는 도영과 화상으로 만날 수 있게 한다. 유진과 도영은 짧은 화상 접견 중 이혼을 언급하고 상대의 건강을 걱정한다. 만나면 계약 결혼의 종료를 선언하고 헤어질 것이라 말하는 이 커플의 화상 접견은 컴퓨터 보호화면에 의해 마지막까지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목소리만 들으며 끝나버린다. 온전히 이별을 맺음 짓지 못하고 끝나는 두 사람의 접견은 페이드 아웃과 검은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있음에도 카페에서 만나는 영미와 도영의 장면에 이어져 있다. 매달 조금씩 돈을 갚는 도영을 굳이 만나 확인 도장을 모으는 영미는 도영에게 맨드라미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냐고 묻는다. 고민하던 도영이 무엇이냐고 되묻자 영미는 잠시 고민하더니 치정이라고 답한다. 영미의 답은 어딘가 재밌는 상상을 하게 한다. 아마 이혼했을 것이고 이별했을 유진과 도영이 실제 물리적으로 만나고 있지 않더라도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 그리고 그런 둘의 관계를 짐작하고 있는 영미가 도영이 자신의 감정을 유추할 수도 있을지 모를 시들지 않는 사랑이라는 꽃말보다 치정이라 답하며 의미 없는 농담인 양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는 상상. 어쩌면 도영만큼이나 유진도 소중하게 사랑하기에 도영에게만 쉽게 시들지 않는 사랑이라고 표현하지 못했다는 상상. 어떤 상상이든 이번에도 영미가 도영에게 갖고 있는 이 감정은 눈치가 없다.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니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사랑을 경험한다. 하나로 규정할 수 없기에 떠올리는 것이 괴로울 수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미어질 수도 있다. 혹은 떠오르면 잔잔히 미소가 함께 떠오를 수도, 보고 싶은 마음에 창밖에 상대를 그릴 수도 있다. 어떤 모습이든 그 사랑은 각자의 삶에서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을 게다. 그리고 어떤 모습이든 그 순간의 감정은 꽃이 되어 다양하게 피었을 게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다양하게 피는 감정의 꽃이 맨드라미처럼 이어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감정의 꽃을 서로 공유하고 감각하며 또 다른 꽃이 피어나면서 다채로운 유색의 색을 띄게 되나 보다. 조금 눈치 없이 전혀 관계 없는 다른 사람에게만 모습을 보인다 해도 그게 또 사랑의 묘미일 것이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니 말이다. 그러니 당장 내일이 종말인 것처럼 수줍게라도 감정을 보이자. 그럼 다른 누군가가 화답해줄 것이다. 그 감정은 그 감정만의 새로운 꽃으로 피어날 게다. 끝날지 안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시작했으니 어떤 끝을 향해 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계속 끝날 듯 꽃을 피우며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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