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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Dec 31. 2021

홀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타오르는 가족

평촌 CGV. 엔칸토:마법의 세계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족은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도 있지만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엔칸토:마법의 세계>의 마드리갈 가족처럼 모든 가족은 그 가족만의 이상형이 존재한다. 가족이라 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지는 않는다. 자신의 모습과 가족이 제시하는 이상형 사이의 조율이 필요하고 그 조율 속에서 가족은 그 가족만의 특유한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과 이상형 사이의 조율이 언제나 적절하게 이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족의 이상형에 자신을 맞추느라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는 삶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가족의 이상형에 자신을 맞추는 삶이 한 집 아래에서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인 가족(家族)이라는 말과는 정반대의 가족을 만든다는 점이다.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 일부를 감추고 있기에 각각의 가족 구성원은 함께 살아가되 온전히 상대에게 의지할 수 없으며 가족의 이름 아래 홀로 빛날 뿐이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서 가족이기 위해서는 감추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서로의 모습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족이란 홀로 빛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타오르며 서로 더 빛날 수 있게 해주는 공동체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엔칸토:마법의 세계>의 마드리갈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 할머니 아부엘라를 중심으로 서로 사랑하며 단단하게 뭉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서 가족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거대한 재해에 의해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공동체가 파괴된 적 있는 아부엘라에게 있어 이상적인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가지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바로 축복을 통해 마법을 소유해야 하며 그 마법을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부엘라가 제시하는 마법과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기준은 마드리갈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진짜 욕망이나 감정을 감추게 하며 동시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구성원은 가족에서 배제한다.

출처. 다음 영화

미라벨의 언니인 이사벨라와 루이사는 마법과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기준을 충족하지만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진짜 욕망이나 감정을 감추고 있는 구성원이다. 이사벨라는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꽃 이외에 다른 식물을 키울 수 있음에도 아름다운 꽃만 키운다.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지도 않는 마리아노와 아름답고 완벽한 결혼을 치루고자 한다. 루이사는 마을에서 누구보다 힘이 센 자신의 능력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음에도 그 두려움을 누구에게 표현하고 의지하지 못한다. 언제나 강하고 든든할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출처. 다음 영화

반대로 미라벨과 브루노는 마법과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가족에서 배제된 구성원이다. 축복을 통해 부여 받은 마법을 확인하는 의식에서 아무런 마법을 부여 받지 못한 미라벨은 마드리갈 가족이 되기 위한 마법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브루노는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가졌으나 불행한 미래만 예견하면서 공동체를 불안하게 만든다. 공동체의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가족과 공동체를 사랑하지만 정작 그 사랑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를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표현한다고 해도 원하는 반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 다음 영화

이렇듯 마법과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기준은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을 억압하고 배제한다. 하지만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서 가족은 포용을 내포하기에 마법과 공동체의 안전처럼 배제와 억압을 내포한 기준과 본질적으로 모순 관계에 있다. 이러한 모순은 곧 두 영역 사이 경계 위에 존재하는 인물에 의해 해결된다. <엔칸토:마법의 세계>에서는 미라벨이 경계 위 인물로 제시된다. 기준에 의해 가족이 되지 못하지만 가족을 사랑하며 당당한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항상 행동에 나서는 미라벨에게 마드리갈 가족과 마을 공동체의 평화를 유지하는 마법에 대한 미래를 결정할 운명이 부여되는 것은 필연이다.


미라벨에게 부여된 운명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미라벨이 마드리갈 가족과 마을 공동체 모두를 파괴하거나 유지하면서 평화를 지속하도록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운명에서 중요한 것은 미라벨이 가족과 마을을 파괴한다 혹은 파괴하지 않는다가 아니다. 미라벨이라는 인물은 이미 기존에 유지되어 온 가족과 마을을 파괴할 인물이다.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이 기준에 도전하는 이상 그 기준은 파괴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괴가 이미 예정되었다면 중요한 것은 그 파괴 이후의 방향성일 것이다. 미라벨이 그동안 자신을 배제해 온 가족과 마을에 좌절하고 실망할 것인가 가족과 마을을 용서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느냐가 운명에서 중요한 지점인 것이다.

출처. 다음 영화

이러한 갈림길에서 미라벨이 가족과 마을을 용서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기존의 가족과 마을을 유지해온 할머니 아부엘라의 진심어린 사과에 있다. 가족과 공동체가 파괴된 적이 있는 아부엘라에게 있어 가족과 공동체는 최우선으로 지켜야 하는 가치였으며 마법과 공동체의 안전과 같은 기준은 최우선 가치를 위한 방패였다. 하지만 그 방패가 아부엘라 자신이 진짜 지키고자 했던 가족과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 스스로가 인정하고 미라벨에게 용서를 청했기에 미라벨은 가족과 공동체를 떠나지 않을 수 있다.


사과와 용서의 과정 자체가 포용을 내포하고 있는 가족과 맞닿고 있는 것이다. 미라벨과 아부엘라의 갈등 속에서 무너졌던 마드리갈 가족의 마법 집 '까시타'는 마드리갈 가족만이 아니라 가족의 마법에 보호 받던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재건된다. 가족의 곁에서 숨어 지내던 브루노는 완전히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고 이사벨라는 자신이 키우고 싶은 형형색색의 다양한 식물을 키우며 루이사는 자신의 불안을 가족과 함께 나누며 의지할 수 있게 된다. 아부엘라의 사과와 미라벨의 용서는 마법과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기존 가치와 더불어 자신의 욕망이나 감정을 드러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출처. 다음 영화

영화의 O.S.T 중 마지막인 <All of You> 마법이나 공동체의 안전과 같은 기준에 의해 가족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자체로 기적이며 가족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가족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진짜 욕망과 감정을 직면하는 것은 두려울 것이며 욕망과 감정을 보여야 하는 구성원들도 욕망과 감정을 보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보이고 그 욕망과 감정을 직시하며 서로가 사과와 용서의 과정을 거치는 노력을 할 때 조금씩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다른 가족에게 조금씩 표현하고 서로의 모습을 직시하는 작은 노력이 쌓이는 끝에서 "누가 보이니?"라는 질문에 "내가 보여요."라고 답하며 가족을 바라보는 미라벨처럼 자신의 모습을 지키면서 함께 타오르는 가족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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