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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an 13. 2022

'나'만 해바라기가 아니라 '너'도 해바라기였음을

도라마코리아. 아름다운 그.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출처. mbs 홈페이지

태양과 해바라기의 관계는 맹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해바라기는 태양이 어디로 가든 계속 바라보며 태양은 해바라기가 보든 말든 제 갈 길을 간다. 태양을 향한 해바라기의 사랑이 맹목적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하지만 태양이 태양일 수 있는 것은 '해'바라기가 있기 때문이다. 해바라기가 태양이 있기에 해바라기일 수 있다면 태양은 해바라기가 있기에 태양일 수 있다. 즉, 해바라기만 태양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태양도 해바라기를 바란다. 둘은 서로에게 태양이자 해바라기인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나'가 상대방을 향한 해바라기인 것처럼 상대방이 '나'를 향한 해바라기인 순간, 그 순간을 우리는 사랑이라 한다. 사랑은 서로가 존재할 수 있게 한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관계에서 두 사람이 반드시 동일하게 서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보다 상대를 덜 사랑하는 순간 즉, '나'만 상대에 의해 존재할 뿐 상대는 '나'로 인해 존재하지 못하는 순간은 사랑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가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어떤 경우에라도 서로를 바라며 존재할 수 있게 하기에 사랑을 아름다운 기적이라 하는 것이다.

출처. 도라마코리아

<아름다운 그>에서 히라와 키요이의 이야기가 기적처럼 느껴지고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다. 다른 사람과 대화는 고사하고 인사하는 것조차 어려운 히라와 모든 학우들에게 관심을 받고 항상 학생들의 중심에서 있으면서 만사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쿨함을 유지하는 키요이의 관계는 태양과 해바라기의 관계처럼 보인다. 자신과 너무 다를 뿐만 아니라 홀로 아름답게 빛나는 키요이는 히라에게 태양이자 '킹(King)'으로 느껴진다. 어느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항상 겉돌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음침해 보이는 히라는 키요이에게 이상하고 기분 나쁜 존재이다. 주군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오직 주군만 사랑하는 신하. 절대적인 주종 관계로 드라마가 시작하고 끝난다면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운 인물이 등장한다 해도 <아름다운 그>는 맹목적인 사랑 이야기나 학교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를 왜곡한 서사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는 겉으로 보기에 맹목적 관계 혹은 가해자-피해자의 왜곡된 관계로 보이는 히라와 키요이의 관계가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두 존재가 서로를 바라며 서로를 존재하게 하는 사랑의 관계라는 점을 포착한다.

출처. 도라마코리아

좋아해도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 히라는 자신의 취미인 사진처럼 좋아하는 대상을 담고만 있다. 상대방을 관찰하며 외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대상이 가장 대상다운,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열망은 히라 내부에서 쌓이기만 할 뿐 표현되지 못하기에 히라는 언제든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연예인 준비를 위해 죽을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은 키요이를 위해 키요이의 비밀을 말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에 담담하지만 열정적인 눈으로 "그럼 죽을게."라고 말할 것이라 한다. 연예인이 되지 못해 특별하지 않게 되자 괴롭힘을 당하는 키요이를 위해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키요이를 배신하고 괴롭히는 일당에게 몸을 던지고 분노한다. 사진으로 몰래 키요이를 찍고 키요이에게 진저에일을 사주고 남은 동전을 플라스크에 모으는 히라가 크리피(Creepy)하고 위험한 욕망을 지닌 히키코모리로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태양이 성가셔 할 지도 모르지만 태양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태양일 수 있게 하는 해바라기가 히라인 것이다.

출처. 도라마코리아

사랑을 갈구해도 한 번도 사랑을 받지 못해 자신도 좋아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 키요이는 연예인처럼 타인의 사랑을 받을 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을 중심으로 모여 있으나 자신을 이용할 생각만 하거나 외모만 보고 자신에게 열광하는 학생들을 키요이는 귀찮아 하고 먼저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인에게서 진정한 사랑이 오는 것만 기다리고 있기에 키요이가 바라는 사랑은 계속해서 채워지지 않는 욕망으로 남아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계속해서 바라는 히라에게 먼저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기에 졸업식 때 키스까지 했음에도 히라에게서 반응이 없자 도망치듯 이별을 고한다. "좋아해."라는 말을 하면 히라를 떠올리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분하다. 그렇기에 먼저 좋아하는 마음을 겉으로 표현했음에도 자신을 태양이자 신으로 여겨 사랑을 받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히라에게 더 화가 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았다는 생각과 함께 타인에게 좋아한다는 마음을 표현해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다. 태양처럼 오만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키요이는 태양에게 사랑을 받고 그 사랑에 반응하고 싶어하는 츤데레 해바라기인 것이다.


이렇듯 두 해바라기의 시선이 서로 일치하는 순간을 향해 <아름다운 그>의 서사는 진행되기에 맹목적인 사랑 혹은 가해자-피해자의 왜곡된 관계로 인식되기 어렵다. 맹목적인 사랑은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존재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는다. 사랑을 하는 이는 사랑을 받는 이를 바라보지만 사랑을 받는 이는 사랑을 하는 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그>의 히라와 키요이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시선의 일치를 이룬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에 주저하는 히라는 자신의 마음이 정확히 누구에게 향하고 있으며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한 번도 사랑을 표현해본 적이 없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키요이도 자신의 마음이 누구에게 향하고 있으며 그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로를 좋아함에도 좋아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두 인물이 자신의 마음을 직면하고 상대방에게 진심을 다해 표현하는 것이 <아름다운 그>의 주된 서사인 것이다.


가해자-피해자의 왜곡된 관계도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존재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그>의 서사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가해자-피해자의 관계에서 가해자는 피해자를 바라보지 않기에 두 존재의 시선은 일치하지 않는다. 나아가 둘이 서로를 바라본다고 해도 둘의 시선은 서로 다른 지점에 대한 호기심 혹은 동경에서 기원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 일진들 틈에서 히라를 소위 빵셔틀로 쓰는 키요이의 모습은 가해자로, 그런 키요이를 동경하는 히라는 피해자로 보인다. 하지만 히라와 키요이는 서로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서로의 다른 지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바라보기 때문에 둘의 시선은 일치한다. 심지어 <아름다운 그>의 서사에서 히라-키요이 관계의 주도권은 히라에게 있다. 일생동안 "좋아해."라는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입을 열지 못한 히라가 타인과 관계에서 어느 정도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키요이보다 먼저 "좋아해."라고 말해야 한다. 즉, 겉으로 보기에 절대적인 주종관계처럼 보이는 키요이-히라 관계는 히라에 의해서 주도되며 키요이는 히라의 "좋아해."라는 말을 기다린다. 태양-해바라기 관계가 아니라 해바라기-해바라기 관계가 히라-키요이의 관계인 것이다.

출처. mbs 홈페이지

<아름다운 그>는 마치 키요이를 향한 히라의 시선만 다루는 듯하다. 하지만 서사가 진행되면서 아름다운 '그'는 히라를 향한 키요이의 시선까지 의미한다. 서로를 아름답게 느끼며 아름다운 그를 향해 진심으로 "좋아해"라고 말하는 히라와 키요이의 사랑은 서로 다른 가운데 비슷한 점을 발견하는 모습에서 기적과도 같다. 즉, 사랑에서 관계는 태양과 해바라기의 관계일 수 없다. '나'가 태양이라면 '너'도 태양이었고 '나'가 해바라기라면 '너'도 해바라기였던 것이 사랑이다. 언젠가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고 바라보는 곳이 달라지면 결국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름 속에서 같음을 찾아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일치하기에 사랑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며 있는 그대로 바라기 때문에 상대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기적이다. 만남 뒤에 헤어짐이 있음을 알더라도 인간이 사랑을 찾는 이유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하는 기적을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태양이자 해바라기로 있게 하는 사랑,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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