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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ul 16. 2022

계속 도전하는 인간, 계속 머무르는 문법

용산. CGV. 탑건:매버릭.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986년 <탑건>이 개봉한 이후 무려 36년의 시간이 흘러 속편인 <탑건 : 매버릭>(이하, <매버릭>)이 제작되었다. 36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 갑자기 속편이 제작된 것도 이상하지만 속편의 흥행 역시 예사롭지 않다. 네이버 기준 약 480만 명. 코로나가 잠시 잠잠해지면서 영화관으로 관객이 몰리고 있으나 다른 영화도 아니고 36년이나 이전에 만들어진, 그것도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의 속편이 이렇게까지 흥행한 것은 분명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오랜 기간 선택이 아닌 강제로 바깥 생활을 제약 받은 사람들에게 창공을 누비는 전투기를 타고 박진감 넘치는 공중 액션을 선보이는 21세기 월드 스타이자 육체파 액션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톰 크루즈의 모습은 자유 그 자체처럼 느껴졌기에 <매버릭>이 흥행한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톰 크루즈의 모습이 자유처럼 느껴졌기에 혹은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자국의 안위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이 영화가 자유의 쾌감을 느끼게 했기에 흥행한 것이라면 상당히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1986년 <탑건>과 비교해 영화 이면에 존재하는 미국 중심주의 문법은 그대로 유지한 채 바뀐 것이라고는 기술 밖에 없는 이 영화가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자유를 가리키는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매버릭>의 시작은 전작 <탑건>과 완벽하게 동일하게 시작한다. <탑건>의 OST가 기타 선율을 타고 흘러 나오면서 탑건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는 영화의 자막을 시작으로 항공모함에서 전투기가 이륙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매버릭>의 시작은 자신이 <탑건>의 후속작임을 선언한다. 아니 단순히 후속작임을 선언하는 정도가 아니다. <탑건>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21세기에 재현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후속작이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는 없다. 탑건이 사장되었던 공중전 기술을 조종사들에게 가르쳐 조종사들이 자신들의 조종 역량의 영역을 더 발전시키고 끊임없이 도전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세워진 학교인 것처럼 <매버릭>의 인간 역시 여전히 도전하고 있다. 인간 조종사와 전투기는 무인 전투기로 대체되고 있음에도 매버릭은 전투기를 몰고 단순히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대기권 사이를 마하10의 속도로 가른다. 매버릭만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모든 조종사들은 불가능할 것 같은 작전의 성공을 위해 잊힌 기술에, 자신이 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도전한다.

출처. 왓챠피디아

문제는 <탑건>과 마찬가지로 <매버릭>의 서사에서 미국 이외의 모든 다른 존재들은 후경화되어 영화에서 재현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1986년. 냉전이 거의 종전되어 가는 시기이다. 아직 소련과 미국의 경쟁은 진행 중이었으나 동구권 국가들 사이에서 민주화 운동이 전개되면서 소비에트 연방이 흔들리고 있었으며 1985년 취임한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소련도 내부에서부터 변화하고 있던 시기이다. 즉, 이 시기는 변혁의 시기이다. 비록 미국이 자본주의의 최선봉이며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과 자본주의의 위대함을 알리는 최선봉의 최선봉이지만 냉전이 진행 중이되 변혁의 시기라는 점에서, 어쩌면 냉전이 종식되고 평화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감도는 시기라는 점에서 쉽게 적국이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탑건>에서는 적국이라는 언급은 있을 지언정 그 적국이 어디인지는 전투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언급할 뿐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변혁의 시기에서 미국의 위대함은 미군 조종사들의 패기, 강인한 육체, 유쾌함, 낭만 등으로 강조되지만 동시에 적국 자체는 외부에 도사리는 미지의 위험이되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대상이자 해결 가능한 대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탑건>의 문법이 <매버릭>에도 그대로 전이되어 있다. 하지만 현 시대는 냉전처럼 적국이 명확한 시대가 아니다. 신냉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미‧중 구도가 가장 도드라질 뿐 여전히 러시아는 강대하며 EU를 비롯한 구 강국과 제3국이라 불리던 지역의 신흥 강국들 역시도 각자의 위치에서 입김을 뿜고 있다.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명확했던 냉전과 달리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에서 서로에게 더 다양한 영향을 강하게 주고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탑건>의 문법은 미국 중심의 극우적이며 국수적이며 이를 받아들인 <매버릭>은 더욱 강한 극우성과 국수성을 보인다. 테러위험국이라는 표현말고는 해당 국가와 미국 사이 역사와 관계가 어떤지 전혀 알 수 없다. 하다못해 전투기를 통한 간접적인 언급조차도 없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소련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외부에 존재하는 미지의 위험이 아니라 해결 가능한 대상이긴 하지만 동시에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위험이 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미션의 난이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며 미국은 언제나 극악의 난이도에 도전해 자국의 안위를 지킬 뿐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이러한 <매버릭>의 미국 중심주의는 인물의 재현에서도 알 수 있다. 매버릭 대령에게 교육을 받는 조종사들의 인종과 성별은 <탑건> 때와 비교하면 훨씬 다양하다. 백인, 흑인만이 아니라 히스패닉, 아시안 등이 모두 모여 있으며 남성 조종사만이 아니라 여성 조종사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종과 성별 구성은 다민족‧인종 국가로서 누구에게나 자유가 보장된 미국의 위대함을 보이기 위한 표면적인 PC일 뿐이다. <탑건>은 이제 막 인종‧성별 간 평등이 서서히 실현되는 시대에서 백인 중심의 조종사들이 서로 경쟁하는 즉, 백인 간 경쟁이기 때문에 PC하지 못하다는 평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탑건>의 시대는 그런 시대였다. 반대로 <매버릭>의 시대는 다원주의의 시대로 다양한 인종 간 경쟁이 당연한 시대이다. 그렇기에 <매버릭>의 조종사들은 더 다양한 인종과 성별로 구성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조종사들은 모두 매버릭과 경쟁할 뿐 서로 경쟁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백인 남성 루스터와 행맨의 경쟁은 명확하게 보이지만 그 외 다른 조종사들은 매버릭, 루스터, 행맨 사이에서 간신히 모습을 보이거나 사라질 뿐이다. 이러한 표면적인 PC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존재들은 모두 후경화된 상황과 겹치며 미국 중심주의를 강화한다.

출처. 왓챠피디아

뿐만 아니라 <매버릭>은 매버릭에게 아버지라는 상징을 부여해 미국 중심주의를 강화한다. <탑건>에서 아이스맨과 함께 최고의 조종사로 인정받은 매버릭은 대령에서 진급하지 않은 채 실전에 참여하고 있던 군인이다. 비록 나이가 들어 실전 대신 군 기술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매버릭은 다른 어떤 현역 조종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매버릭은 다른 조종사들을 쉽게 농락하며 훈련에 임한다. 문제는 영화의 서사 구조 상 불가능한 미션을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가르친 조종사 모두에게 책임을 느끼는 아버지 매버릭이 미션에 참여할 때 뿐이란 것이다. <탑건>에서 루스터의 아버지이자 친우인 구스의 죽음에 책임을 느낀 이래 본능대로 비행하며 최고의 실력으로 공중전에 임하면서도 언제나 전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매버릭은 애초부터 더 이상 실전에 참여하지 않는 교관이 아니라 한 명의 군인이자 다른 모든 자식-조종사들을 지켜야 하는 아버지이다. 특히 구스의 아들 루스터를 위해 희생하고 루스터와 함께 구형 F-14 전투기를 몰고 신형 5세대 전투기를 격파하고 탈출하는 마지막 공중전은 갈등을 위기로 극복하는 아버지-아들 서사의 전형이다. 매버릭은 한 명의 미군이 아니라 미국 그 자체 혹은 자유를 수호하는 아버지로서 다시 한 번 미국으로 수렴하는 <매버릭>의 서사를 강화한다.


이처럼 전형적인 미국 중심의 <매버릭>을 단순히 잘 만든 속편이자 오락 영화라고만 하기에는 개봉 시기가 너무나 공교롭다. 개봉 시기야 코로나 펜데믹이 끝난 직후 가장 많은 관객이 영화관으로 몰릴 시기이기에 정한 것일 게다. 다만 코로나 펜데믹 직후의 시기는 어떤지 보자.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거대한 아포칼립스 상황이 조금씩 해결되고 있지만 펜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국가와 개인 모두 자신이 먼저 살아야 한다는 이기성을 넘어 '우리 공동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극우성이 강화되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이타성 역시 발견할 수 있었으나 마스크 가격 파동, 외국인 혐오, 코로나 감염에 대한 인종 간 차이, 코로나 백신에 대한 각 국가 별 구매력, 원조 요청과 거부 등 이기성과 극우성이 발현된 사건은 시시각각 발견되고 들려온다. <매버릭>은 자유롭게 활공하는 전투기를 통해 그 동안 잊고 있던 자유를 떠오르게 하지만 동시에 그 자유는 오로지 미국만을 상정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 영화니까 미국만 상정하지!" 하지만 서사에서 미국만을 상정할 때 아버지 중심의 남성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아버지를 위협하는 외부 위험은 시종일관 그저 위험 요소라 언급될 뿐 그들이 어떤 존재들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더 이상 특정할 수 없는 외부의 위험 요소를 끝없는 인간의 도전이라는 이미지로 파괴하면서 매버릭에서 루스터-행맨으로 미국의 유산만이 대를 거쳐 넘어가며 영원히 계속될 뿐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무인기가 전투기 조종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상관의 말에 매버릭이 "적어도 오늘은 아닙니다."라고 응수하는 장면은 <매버릭>의 백미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한 우리에게 톰 크루즈가 인간은 여전히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끊임없이 도전해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킬 것이라 말하는데 어떻게 백미가 아니겠는가. 이와 맞물려 이동진 평론가도 <매버릭>을 "기계가 인간을 대체해가는 시대에 아직은 어림없다고 외치는 사자후"라고 평했으며 대체로 <매버릭>에 대한 관객의 평가 역시 이전과 비교해 발전한 기술과 액션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맞다. 사실 <매버릭>은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지친 우리를 위로하는, "톰형이 톰형 했다."라고 할 수 있는 오락 영화로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톰형이 톰형 한 영화와 달리 86년의 문법을 그대로 아무런 변형 없이 가져온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 영화라고 보기에는 계속해서 도전하는 탑건의 조종사들이 수호하려는 자유가 두렵기만 하다. 명확하게 특정할 수 없는 수많은 위험의 가능성 사이에서 상대를 그저 위험 요소로만 파악하고 파괴해야 한다는 유아적(唯我的) 중심주의가 주는 자유의 즐거움은 정말 즐거운 것인가?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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