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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ul 25. 2022

당신의 손을 기억하는 망부석(1)

용산. CGV. 헤어질 결심. 해준, 붕괴되어 지키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제목에도 내포되어 있듯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헤어질 결심을 하면서까지 상대에게 자신을 바치고자 하는, 언제나 미결인 채 남아 있는 고귀한 희생이다. 상대에게 온전히 자신을 바치는 희생이라는 점에서 사랑은 눈을 통해 일어나지만 언제나 손을 통해 발현된다. 손은 사랑을 시작할 때 처음 잡게 되는 상대의 육체이자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행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으로 발현되는 사랑의 의지와 행위는 언제나 해결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다.


일본 드라마 <아름다운 그>와 관련한 글에서 밝혔듯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여야 가능한 관계이다. 즉, 손으로 상대를 향한 사랑의 의지와 행위를 발현하면 그 의지와 행위는 다시 상대의 손을 통해 새로운 사랑의 의지와 행위를 발현한다. 이러한 사랑의 의지와 행위의 교차는 결코 매듭지어지지 않기에 한 쪽이 사라지지 않을 때도 영원히 미결이며 한 쪽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영원히 미결로 남는다. 결국 사랑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아 국에는 미결로 남은 상대를 바라고 기다리는 망부석의 행위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헤어질 결심>의 해준과 서래의 관계 역시 서로를 바라고 기다리는 망부석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조금 특이하게도 해준과 서래의 망부석 관계는 손에서 시작해 손으로 끝난다. 자기 주변과 관계 관리를 잘하고 능력 있으며 자부심 있는 경찰인 해준은 경찰임에도 상당히 감성에 목마른 인물이다. 혈향을 싫어하지만 피해자의 눈을 바라보며 꼭 범인을 잡겠다 다짐하고 피해자가 떨어졌던 길을 되짚어 올라가며 피해자의 물품을 상세히 살펴본 뒤 이를 자신의 목소리로 하나하나 기록한다. 아내 정안과 성관계를 맺을 때도 단순히 육체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정안의 눈을 바라보고 싶어 한다.


그런 해준이 서래를 시체 안치실에서 처음 봤을 때, 단순히 서래를 인지한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갖고 본 육체는 서래의 손이다. 반창고가 붙어 있는 서래의 손은 "마침내 죽을까봐."라는 서래의 말과 함께 해준의 의심과 관심을 증폭시킨다. 해준에게 있어 언어는 감정을 상대와 교류하기 위한 수단으로 의미가 명확하고 적확할수록 좋다. "저보다 한국말 잘하시네요."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어에 서투른 중국인 서래는 어색하지만 그 단어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 사용한다는 느낌을 준다. 패턴이 궁금해진다.

출처. 왓챠피디아.

서래의 일터인 해동 할미의 집 근처에서 잠복할 때 해준의 의심과 관심은 가히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서래를 감시하는 망원경의 시점은 집 안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서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순간 어느새 들어가본 적도 없는 해동 할미의 집에 직접 들어가서 보는 시점으로 바뀐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음에도 완벽하게 구현되는 서래는 향기가 없기에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 와중에 들킬리 없음에도 서래와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오는 해준의 시점은 관객마저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뭔가 들킨 기분이다. 피의자에게 의심보다 관심이 가기 때문이런가.

출처. 왓챠피디아.

의심과 관심의 경계에 있던 해준은 구강상피세포를 체취한 이후 취조에서 완전히 관심으로 넘어간다. 남편의 사망 사건에 대해 말을 들으며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고 얘기하는 것을 선호하며 인자한 산보다 지혜로운 바다를 더 좋아한다. 자신도 모르게 "...나도."라고 할 만하다. 넓고 깊은 바다처럼 넓고 깊어 알기 어려운 마음은 말보다 사진 즉, 언어보다 비언어로 전할 때 더 많은 것을 교류할 수 있으니. 취조실 책상은 어느 신혼 부부의 식탁으로 변하고, 그 식탁에서 아내 정안과는 먹지 않은 특별한 음식인 시마스시 모둠초밥을 함께 먹으며, 식탁을 치울 때는 처음 만났음에도 금슬 좋은 신혼 부부마냥 호흡이 척척이다.


정신이 아득하다. 분명 남편이 죽은 뒤 반지를 빼고 있던 서래의 손에 어느 순간 반지가 끼워져 있다. 자신의 손에도 정안과 맞춘 반지가 껴있었는데 그걸 의식한걸까? 그런데 그 반지 낀 손에서 향기가 난다. 해동 할미의 집에서는 상상만 했을 뿐 맡지 못했던 손의 향기. 그 손의 향기는 해준에게 깊이 각인되었으리라. 사진으로 자신이 한국 독립군의 자손이라는 증거를 보여주는 서래의 옆에 해준은 어느새 가까이 붙어서 보고 있다. 직접 핸드폰을 가져가서 봐도 될 것을. 손의 향기가 서래에게서도 나기 때문이겠지.

출처. 왓챠피디아.

하지만 서래와 달리 아내 정안과 관계는 해준에게 있어 답답한 감옥과 같다. 모든 것을 확률과 팩트에 기반해 말하는 정안은 이성과 논리로 해준을 사랑한다. 하지만 정안의 언어는 어딘가 막혀있다. 섹스는 서로를 미친 듯이 원하고 사랑하는 행위보다 혈액 순환과 기억력 상승 등 만병통치에 가까운 효능을 지닌 행위에 가깝다. 담배를 피고 싶어 할 때는 무슨 일 있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음탕한 생각을 끊어내야 한다며 도라지 말랭이를 찾는다. 16년하고 8개월이라는 결혼 기간을 정확한 수치로 기억하는 정안의 언어는 감정보다 정보를 전달하는 '독한' 언어처럼 들린다. 책장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그 뒤에는 곰팡이가 스멀스멀 피어난 것처럼 이미 어딘가 망가진 관계이다.


그렇기에 주말 부부인 정안을 만나러 집에 갈 때와 피의자인 서래의 부름으로 서래의 집으로 갈 때 해준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잠이 안 와 잠복을 한다는, 이미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겨우 시속 60km가 넘을까 말까 한 상태로 졸음 운전을 하며 정안을 보러 가는 해준의 모습은 퀭 하고 후줄근하다. 하지만 늦은 밤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서래의 말에는 괜히 궁시렁 대더니 어느새 급히 수염을 깎으며 시속 100km를 넘어 120km에 육박할 정도로 차를 몰고 있다. 이전 피의자들과 다르게 서래를 너무 많이 배려한다는 후배 수완의 일침으로 벌써 며칠을 서래의 집 근처에서 잠복해 계속 보고 있었으면서. 그리도 보고 싶었더냐. 공허했던 해준의 삶에 서래가 채워진다.

출처. 왓챠피디아.

하지만 해준이 서래에게 관심을 넘어 사랑을 느끼기 시작할 때 서래는 어딘가 애매하다. 외국인인 이상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해준과 같은 듬직하고 괜찮은 남자는 만날 수 없다. 서래가 만날 수 있는 남자라고 해봐야 공자님의 말씀과 달리 산을 좋아함에도 인자하지 않고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을 깔끔하게 부수는 폭력을 쓰는 남자거나 빚쟁이에게 쫓기는 와중에도 돈 쓰는 걸 보여줘야 돈이 모인다며 고급 빌라에서 살고 잠깐의 흡연도 못 받아줘 나가라고 소리지르며 말로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뿐이다. 한국이라는 낯선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서래는 남자를 이용해야 하고 죽여야 한다.


그렇기에 해준은 서래에게 가장 완벽한 남자이다. 해준의 경찰이라는 신분은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벗을 수 있게 해 한국 사회에서 계속 생존할 수 있게 한다. 서래가 엄마를 죽여 가면서 한국에 온 이유는 엄마와 조선독립군이었던 외할아버지를 고향 땅 호미산으로 모시기 위함이었으니까. 적어도 죽기 전 고향 땅에 있다는 자신의 산 호미산을 보기 위함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용만 하고자 하는 마음과 다른 마음이 공존한다. 해준은 고양이에게 나지막히 말했듯이 친절하며 비오는 날 절에서 말했듯 현대인임에도 품위가 있다. 자신의 주변에서 계속해서 자신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으며 어색한 한국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상태와 감정을 이해한다. 해준은 괜찮은 남자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이렇듯 생존으로서 이용과 이성으로서 관심 사이 경계에서 서래가 애매하게 있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서래에게 중요한 것은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 사회에서 안전하게 생존하는 것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은 자신을 죽음의 땅 중국으로 보낼 수 있었기에 남편의 폭력을 웃으며 버텼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때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 울음이 터지는 높은 암벽을 악착같이 올라 남편을 밀었다. 서래는 살기 위해 버텼다. 하지만 악착같이 생존만 하려는 삶에서 누군가 의지할 수 있고 안정감을 준다면 그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일까, 그 누군가에게 관심이 가는 것일까? 이용이라 해서 잘못이고 관심이 간다 해서 순수하지 못한가? 그렇게 나쁩니까?


"단일한"이라 말하며 아이스크림으로 때운 저녁을 위해 자신도 모르는 중식 볶음밥을 직접 만들어주는 남자. 만두를 만들며 담배를 피우는 자신을 타박하는 것이 아니라 재가 떨어지지 않게 직접 털어주고 다시 입에 물려주는 남자. 엄마를 죽인 날짜로 설정해놓은 핸드폰 비밀번호를 사건이 종결됐으니 잊겠다고 말해주는 남자. 사건이 종결되어 증거를 인멸하려고 사진을 태우는 와중에 자신을 찍은 사진을 꼭 붙잡고 수줍어 하면서도 절대 태우지 않으려는 남자. 수줍게 자신에게 "漂亮(예뻐요)!"라고 말하는 남자. 생존을 위해 이용하는 와중에도 서래에게 해준과 함께 한 일은 '우리'로 기억이 된다. 공허했던 서래의 삶에 해준이 채워진다.


이렇듯 의심과 관심의 경계, 이용과 관심의 경계에서 각각 줄을 타던 해준과 서래는 결혼 반지가 끼워져 있는 손을 바라만 보다 비오는 절의 사천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음으로 손을 잡는다. 눈으로만 보던 그 손. 향기만 맡았던 그 손. 반지가 끼워져 있던 것이 너무나 신경 쓰이던 그 손. 삿된 것을 벌하며 부처를 수호하는 사천왕상 앞에서 서로의 반지를 신경 쓰지 않고 혹은 반지를 덮어버리며 해준은 서래의 얼굴을 매만지다 손을 잡는다. 사천왕상 앞에서 둘만의 결혼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죄인으로서 재판을 받는 것인가. 북을 치며 서로에게 소리가 아니라 사랑을 전하니 내리는 비는 둘의 사랑에 운치를 더하는 듯하다.

출처. 왓챠피디아.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처음부터 신경 쓰이던 그 손. 맞잡았을 때 어딘가 거친 그 손. 입술처럼 보드라웠다는 서래의 손은 생의 의지로 거칠어졌다.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받고 이용과 관심을 모두 표현하던 서래의 손은 생존과 사랑을 모두 갖고 싶었을 뿐이다. 해준의 손은 온전히 서래를 위해 증거 인멸을 막지 않고 함께 먹을 저녁을 만들며 서래의 거친 손에 핸드크림을 발랐을 뿐이다. 하지만 온전히 상대를 바란 이와 상대와 자신을 모두 바란 이 사이 격차의 끝은 비극이다. 사랑보다 생존이 먼저 보이고 생존보다 이용이 보인다. 검은 화면 너머로 한땀한땀 답장을 적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기다리고 부끄러워 하던 소년은 사라진다. 답답한 삶을 여태껏 지탱해온 자부심이 무너지고 깨진다. 덩그러니 남은 사랑은 수치스럽다. 그저 마지막까지 서래를 위해 스스로 증거를 인멸하며 자신의 사랑은 깊은 바다에 숨겨달라고 할 수밖에.







해준은 스스로 무너지며 서래를 지켰다.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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