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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Aug 19. 2022

인간은 이야기 하는 동물이다

용산. CGV. 썸머 필름을 타고!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 중 하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일 게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최소한 3가지 전제가 있는데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사유를 할 수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상상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야기에 대해서 인류 최초로 이론을 제시하고 정리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에서 가능해도 이야기로 불가능한 사건보다 현실에서 불가능해도 이야기로 가능한 사건이 이야기에 더 적합하다는, 이야기의 개연성과 관련해서 통찰을 남긴다. 만들어진 세계인 이야기의 내부 법칙인 개연성은 그 말 자체에서 인위성을 전제하고 있지만 동시에 상상력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언어와 사유를 통해 뼈대가 구성되어 현실과 다른 층위의 혹은 거울로서 메타 현실이 되면서도 상상력을 통한 개연성으로 현실에 기반하거나 현실을 반영하면서 현실과의 경계가 흐려진다. 즉, 인간은 동물과 달리 언어와 사유로만이 아니라 상상력까지 동원해 이야기를 만들어 과거를 돌아보고 현실에 가능성을 제시하고 나아가 미래를 꿈꾼다. 인간이 세계에 대한 자신의 짧은 생각부터 위대한 사상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동물과 구분된 이래로 서로 소통하기 위한 고유한 수단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하지만 최근 들어서 인간만의 고유한 소통 수단인 이야기는 서서히 힘을 잃는 것처럼 보인다. 글보다 사진을, 사진보다 영상을. 대면보다 비대면을, 육성보다 문자를. 영화나 드라마처럼 긴 이야기는 10분 정도 되는 짧은 영상으로 줄거리만 알 수 있으면 그만이며 긴 글은 3줄로 요약해 맥락 파악 없이 거칠게 주장만 알면 그만이다. 맥락 속에서 상상력을 통해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고 파악한 의중을 다시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언어와 사유로 재해석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상대에게 다시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보지도 듣지도 않으니 자연스럽게 상상력은 빈곤해지고 이야기는 짧아진다.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타인을 직시하고 직면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자기 세계만 고집하고 있다. <썸머 필름을 타고!>의 영화 없는 미래가 어쩌면 단순한 상상은 아닐지도 모른다.

출처. 왓챠피디아

<썸머 필름을 타고!>는 아무 생각 없이 보면 일본의 흔하디 흔한 청춘 드라마물에 지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자신들의 청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좌충우돌기. 그 와중에 꽃피는 사랑. 생각해보면 <썸머 필름을 타고!>는 청춘 드라마의 클리셰가 가득한 전형적인 일본의 청춘 드라마물인 것이다. 하지만 <썸머 필름을 타고!>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타인과 소통하는 것에 미숙한 고등학생들의 좌충우돌 속에서 이야기를 통해 진정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소통의 주체인 인간이 타인을 직시하고 직면해야 함을 고찰하면서 여타의 청춘 드라마물과 다른 위치를 점한다. 특히 스스로가 청춘 드라마 장르이면서도 영화 내적으로 학원 로맨스, 사무라이 시대극, SF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장르의 경계를 무시함으로써 자기 스스로의 장르조차도 흔들리게 하는 가운데 어떻게 이야기를 하든 결국 그 끝은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달하면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자 함이라는 주제의식을 강화한다는 점은 인상 깊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크게 사무라이 시대극을 사랑하는 맨발과 학원 로맨스물을 사랑하는 카린으로 축이 나뉜다. 눈빛이나 발도와 같은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무라이 시대극과 사랑을 사랑한다고 반드시 말로 표현해야 하는 학원 로맨스물은 겉으로 보기에 절대 융합될 수 없는 세계처럼 보인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생각하는 맨발 입장에서 카린의 영화는 상상력이 부재한 정도가 아니라 메마른 이야기이다. 한 번의 행동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긴장과 해소를 오고 가는 사무라이의 절도와 절제는 그야말로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이와 듣는 이를 이어지게 하는, 상상력이 넘치는 이야기 그 자체이다. 반대로 카린의 입장에서 사무라이 시대극은 상상력을 자극하는지도 모르겠을 뿐더러 상상력 자체가 현실화되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속으로 담아만 놓고 있어 실제로는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알 수 없으니 오히려 소통이 부재한 이야기이다. 카린 입장에서 사무라이 시대극이 오히려 상상력이 부재하고 나아가 메말라 버린 이야기인 것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이렇게 서로를 상상력이 부재하고 메말라 버린 이야기나 하는 영화인이라고 여기는 맨발과 카린이 이어지는 계기는 재밌게도 SF 즉, 또다른 상상력이다. 영화가 사라지고 오직 1분 이내의 짧은 영상만이 존재하는 먼 미래에서 우연하게 보게 된 맨발의 영화를 통해 영화를 사랑하게 된 린타로는 사무라이 시대극과 학원 로맨스를 연결하는 오작교이다. 영화는 사무라이 시대극이 최고라고 여긴 맨발에게 있어 린타로는 단순히 자신의 데뷔작에 등장하는 인물과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주연 배우가 아니다. 자신의 영화를 사랑하는 팬이면서 사무라이 시대극을 찍는 와중에 로맨스를 떠올리게 하는 남성이다. 린타로를 향한 맨발의 감정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사무라이 시대극이 최고라고 여길 줄 알았던 킥보드와 블루 하와이가 실제로는 각각 SF와 로맨스와 멜로를 좋아한다는 속내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기회이다. 나아가 맨발이 영화 동아리실에서 카린과 함께 카린의 최애 로맨스 영화를 보며 카린이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숨기지 않고 말로 전하는 여주인공에 대한 애착이 있음을 알게 하는 원동력이다. 시대극은 SF를 타고 로맨스에 가닿는다.


시대극-SF-로맨스 사이 경계는 데뷔작의 결말을 상영회 중간에 새로 찍고 싶다며 상영회를 중단하는 맨발의 결단에서 완전히 희미해진다. 린타로를 자신의 주연 배우 이상으로,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이성으로 보게 된 맨발은 복수의 대상에게 분노를 토하지도 못하고 끝끝내 죽이지 못하는 자신의 데뷔작 주인공에게서 린타로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고 끝끝내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자신을 본다. 축제 전날 함께 로맨스 영화를 본 카린은 자기 마음을 숨긴 채 끝끝내 남주인공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여주인공이 싫다고 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숨겼을 때 남는 것은 오직 상상으로만 남아 세상에는 보여지지 못해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감정만 있을 뿐이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애정은 상대를 향한 화나고 죽이고 싶은 살의와 같다. 마음이 향하는 상대를 직시하고 직면한 상태에서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자신의 이야기가 현실화되어 상대의 감정과 행동이 오롯이 표현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오로지 눈빛과 발도로 자신을 드러내던 사무라이는 수줍은 마음을 말로 터뜨리는 고등학생이 된다.  

출처. 위키피디아

비록 이러한 깨달음이 영화의 결말에서 너무나 갑작스럽고 미숙해 보이며 심지어는 질질 끄는 오글거림을 유발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썸머 필름을 타고!>라는 청춘 드라마 장르를 공고히 하면서도 흔들리게 한다. 패기만 가득할 뿐 아직 미숙하고 치기 어린 고등학생이기에 데뷔작 결말을 상영회 자리에서 즉석으로 다시 찍겠 다며 상영회를 중단한 맨발의 모습이나 그런 맨발을 도와 다시 촬영을 준비하는 맨발의 제작진과 동아리원들의 모습은 청춘의 한 장면 같다. 하지만 빗자루를 역수로 쥔 채 린타로를 향해 나아가며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는 맨발의 모습은 맹인 검객 잣토이치와 같다. 빗자루와 대걸레를 바로 쥔 채 린타로를 지키며 맨발을 막는 동아리원들의 모습 역시 이미 사무라이와 다름 없다. 청춘의 한 장면은 어느새 시대극으로 뒤바뀌어 있다. 린타로를 직시하고 직면한 상태에서 좋아한다 말하며 린타로와 검을 맞부딪히는 맨발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고등학생이 아니라 복수의 대상을 일격에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두르는 무사이다. 청춘 드라마 장르는 SF라는 오작교로 이어져 시대극과 로맨스가 혼재된 서사 속에서 균열이 일어난다.

출처. 왓챠피디아

이렇듯 영화 내외적으로 장르 사이 경계가 희미해지고 나아가 장르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썸머 필름을 타고!>는 장르와 같은 이야기의 수단이 아니라 본질에 집중하게 한다. 시대극이건 로맨스건 SF건 청춘 드라마건 결국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장르건 간에 이야기는 축적된 과거를 현재로 불러와 현재를 돌아보게 하고 나아가 미래를 꿈꾸게 한다. 애초에 시간을 가로질러 존재하는 이야기에게 수단은 안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잘 전달될 수 있게 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자신의 안에서 상상으로 끝내지 않고 전달할 용기이며 나아가 상대에게 전달했을 때 상대가 다시 전달해주는 이야기를 들을 용기이다. 즉, 서로를 직시하고 직면한 상태에서 오롯하게 자기 자신을 전달할 준비가 되었느냐가 중요하다. 서로가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용기가 충만한 때 생명력이 넘칠 것이며 그 모습을 가장 생명력 넘치는 봄(靑春)이라 할 것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영화 동아리실에서 모두가 로맨스물을 제작하느라 함께 청춘을 즐기는 다른 동아리원들 틈바구니 속에서 카린을 보며 손톱을 물어뜯으며 와신상담하는 맨발이나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킥보드의 말에 "아, 미안. 너희들을 신경 써본 적 없어."라고 말하는 카린은 모두 패기 넘치면서도 미숙하고 치기 어린 고등학생일 뿐이다. 서로의 영화가 전하는 이야기를 보고 듣지 않기 때문에 맨발과 카린은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느라 나아가지를 못한다. 영화를 보지 않고 줄거리 요약 영상만을 봐서는 영화가 전달하는 이야기의 의미는 사라지고 영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단편적으로 재미 여부만 따지는 개인의 이야기는 아무런 맥락없이 부유할 뿐이다. 서로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의미를 생성하며 새로운 이야기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의미 없이 소멸한다. 이야기를 전달하고 전달 받으려는 짧아지다 못해 찰나에 불과한 단어와 이미지만 반복되는 삭막한 의미의 사막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


생명력이 충만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만 생명력을 뿜어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서로가 자신의 생명력을 뿜어내면서도 상대의 생명력을 받아들여야 생명력이 충만할 수 있다. 맨발의 친구 블루 하와이가 로맨스와 멜로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카린의 학원 로맨스 영화에서 연기를 할 때. 킥보드가 린타로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 와중에도 맨발에게 린타로를 놓치지 말라고 말할 때. 맨발이 로맨스 영화로 카린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린타로와 함께 자기 영화의 결말을 상영회 중 다시 촬영할 때. 이야기는 충돌하면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의미를 남기며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진다. 새로운 이야기는 끊임없이 약동하고 생명력을 뿜으며 새로운 가능성으로 뻗어나간다. 비록 이야기가 품은 생명력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나아가지는 않지만 삶에서 마주한 이야기들은 축적되어 계속해서 새로운 생명력으로 남을 것이고 새로운 의미를 형성해 삶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나'의 이야기를 전하며 '너'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삭막한 의미의 사막이 아니라 약동하는 의미의 봄을 미래로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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