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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Aug 31. 2022

사라진 협(俠)을 향한 비애

라이카 시네마. 멋진 세계.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협(俠)은 익숙한 개념이 아니다. 무협 소설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이라면 모를까 애초에 협이라는 단어자체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서 협객을 다루는 파트가 따로 있을 정도로 굉장히 오래된 동양 문화의 개념임에도 협은 오늘날 와서는 이제 특정 장르의 텍스트가 아니면 듣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협을 다루는 텍스트라 해도 한국은 조직 폭력배를, 일본은 야쿠자를 통해 협이 그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협은 중요 소재로 다뤄지지도 않을 뿐더러 협을 그리는 과정에서 두 폭력 집단을 미화한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협은 더더욱 개념이 내포한 관계성의 의미를 상실한 채 러브코미디, 액션 등의 다른 장르 텍스트를 위한 겉치레 개념이 된다. 그런 점에서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멋진 세계>는 야쿠자 출신 인물을 등장시켜 일본 사회의 야쿠자가 겪는 현실을 보여주며 야쿠자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현대 사회가 사회 구성원인 우리가 살만한 사회인지를 협이 지닌 관계성을 경유해 묻는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영화이다.

 

1. 협이란 무엇인가? : 존재의 관계성에 기반한 감정과 행위의 방법론

무(武)와 함께 무협 장르에서 세계관의 한 축을 담당하는 협은 겉햝기식으로 다루면 모순되어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겉으로 보기에 뭔가 멋있어 보이는,즉 가오가 있어 보이는 가벼운 행위재현된다. 협에 내포관계성의 의미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 재현이다. 불의를 참지 않으며 의를 지키고자 하는 감정이자 행위라 요약할 수 있는 협은 의(義)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의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고대 중국의 유가 사상을 살펴보자. 유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은 인간의 보편적이고 선험적인 사랑의 감정인 인(仁)으로 공자에 따르면 혼란한 사회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인이 회복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은 그 자체로 회복되기 어렵기에 인(仁)의 회복을 위해 제시된 것이 사회적 규범인 예(禮)와 감정에 기초한 도덕적 규범인 의(義)이다. 사회를 이룬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 가운데 시스템에 기반한 지위와 관계 자체에 기반한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즉, 예(禮)시스템에 기반한 지위에 부여되는 규범이라면 의(義)시스템 지위 이전에 인간 관계에 기반한 지위에서 지켜져야 하는 감정에 기초한 도덕적 규범이라 할 수 있다.


감정에 기초한 도덕적 규범인 의(義)는 칸트의 정언명법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순수이성의 사변성을 논증한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이성이 지닌,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의 실천성에서 선의지를 읽어내고 이를 보편적인 선과 연결해 선을 의욕하는 이성의 행위가 보편적으로 선한지를 판단하는 3가지 정언명법을 제시한다. 이 중 2번째 정언명법인 “너의 인격에 있어서나, 타인의 인격에 있어서나 인격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취급하고 단지 수단으로서만 결코 사용하지 않도록 행위하라.”에서 알 수 있듯이 보편적인 선 혹은 도덕은 인간 존재가 그 자체로 목적인 즉, 그 어느 것과 비교해 무조건적으로 소중하다는 것과 무조건적으로 소중한 개인 간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존재 자체가 그 무엇의 침해를 받지 않는 절대적 위치에 있을 때 둘 이상의 존재 사이 선 혹은 도덕이 보편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공자는 논어 안연편에서 두(二) 사람(人)의 대등한 관계에서 오고 가는 감정이라는 의미에서 인(仁)을 애인(愛人)이라 말하는데 칸트식으로 의(義)를 표현하면 의(義)는 그 자체로 목적으로서 존재이기에 대등한 인간들 사이의 감정에 기초한 도덕적 규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의(義)그것이 곧 존재 자체와 세계에 존재하는 자신과 타인 사이 관계를 지키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도덕으로서 옳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결과적으로 협이란 존재와 관계를 수호하는 도덕 규범이다. 자신의 능력을 최선으로 발휘해 타인의 존재가 위협받는 불의한 상황에 앞장서 타인의 존재를 수호하고자 하는 감정과 행위가 곧 협인 것이다. 타인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민족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등으로 빠질 위협이 있으나 실상 협이란 곧 '나'와 '너'가 서로의 존재를 위해 당연히 나서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점에서 전자의 위협은 협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불협이다. 이러한 협에 내포된 관계성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한국 무협 소설계에서 독특하게도 하나의 세계관으로 다중 무협 텍스트를 쓰고 있는 한백림 작가의 두 번째 텍스트인 <화산질풍검>을 살펴보자. 늘그막에 얻은 어린 제자 청풍에게 자신의 자하진기의 운기법을 전수하는 선현진인은 운기의 중요성을 이해시키는 과정에서 협에 대한 아주 쉬운 예시를 한다.

"그러니까, 이 사부가 시키는 대로 숨쉬기를 계속하다 보면 나쁜 도적들도 때려잡을 수 있고, 산 속 무서운 맹수들도 물리칠 수 있다는 이야기란다. 천천히 천천히...... 그렇지. 그렇게 차분하게 하는 것이야."                                                                                           - <화산질풍검> 中에서 -

자신에게서 배운 운기법으로 기를 토납해 이를 토대로 무(武)를 배우면 결국 그 힘으로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선현진인의 말에 내포된 전제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유가 사상의 인(仁)이 타인을 향한 선험적인 사랑의 감정이라는 공자의 관점이나 선험적으로 주어진 인간의 이성의 실천의지에 선을 의욕하고자 하는 의지가 존재한다는 칸트의 관점에서 봤을 때 선현진인의 말에 내포된 전제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즉, 나쁜 도적 혹은 산 속 무서운 맹수에게 존재를 위협 받는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감정과 행위인 협은 이미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존재하며 이는 당연히 행해야 하는 행위 규범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쉽게 협을 설명하는 선현진인의 말을 3번이나 리메이크 되는 와중에 2번이나 불의한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에게 벤 삼촌(?)이 남긴 말과 연결하면 협의 관계성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게 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With great power comes with great responsibility.")   

스파이더맨을 영웅으로 각성시키는 말로 유명한 이 대사는 크든 작든 간에 힘에는 결국 책임이 따른다는 의미를 전제하고 있다. 개인에게 부여된 다양한 형태와 크기를 지닌 힘은 사용되는 순간 어떻게든 타인의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 좋든 나쁘든 개인의 존재는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의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은 결국 존재 간 관계성이 자연적이라는 사실 역시도 전제한다. 이러한 사실과 전제에서 세계를 살아가는 개인에게는 타인에게 선한 영향을 주도록 자신의 힘을 항상 최선으로 사용하는 일이 남는다. 결과적으로 존재를 위협 받는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감정과 행위인 협은 인간 존재라면 당연히 자신과 함께 세계를 살아가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힘을 항상 최선으로 사용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선한 영향력을 통해 타인의 존재와 더불어 자신의 존재까지 유지하는 선험적인 감정과 행위의 방법론이다.


2. 일그러진 협과 관계가 사라진 현대 사회의 모순

협이라는 개념에서 봤을 때 <멋진 세계>의 멋진 세계는 모순된 표현으로 현재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Under the Open Sky>라는 영어 제목처럼 영화는 하늘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회색빛이며 교도소의 창살로 갈라져 있다. 인간 존재와 관계를 수호하는 관계성의 행위 규범 협을 평생 따르며 살고 있는 전직 야쿠자 미카미 마사오의 미래는 영화 시작에서 이미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전과 10범에 6번, 총 28년의 수감 생활로 인생의 절반을 특이하게 보낸 미카미가 바라는 것은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아보는 것이다. 탄생부터 이름 모를 아버지와 게이샤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고 그런 게이샤 어머니에게서 버려졌으며 14세부터 야쿠자 조직에서 온갖 범죄 행각을 다 해오면서도 양심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미카미에게 평범한 삶이란 애초부터 쉽지 않은 일이다. 회색빛의 뿌연 구름과 폭설이 내리는 하늘 아래로 쭈욱 길게 뻗은 도로는 다시 한 번 출소 이후 미카미의 삶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출처. 왓챠피디아

하지만 회색빛에 갈라져 불안하기만 한 하늘,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길게 뻗어 있는 도로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희망차게 느껴진다. 막 태어나 세상의 빛과 공기를 받으며 몸은 긴장한 듯 움츠러들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크게 알리는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의 모습은 희망찰 수밖에 없다. 출소하면서 긴장했으나 버스에서 이번에는 반드시 평범하게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며 어색하게나마 양복을 차려입은 미카미의 모습이 바로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의 모습인 것이다. 미카미가 아기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을 버린 것으로 여겨지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찾고자 하는 의지에서 알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데리러 올 생각이었을 것이며 그저 어머니가 찾아오기 전에 자신이 보호소를 뛰쳐 나갔을 뿐이라는 미카미의 말은 그가 여전히 어머니에 대해서만큼은 현실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렇듯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찾고자 하는 의지를 순수하게 갖고 있는 미카미는 사회에서 어떻게든 번듯한 일을 가지려고 한다. 어머니를 호강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어머니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는 모습을 보이고 싶을 뿐이다. 즉, 미카미가 바라는 평범한 삶은 평범하지만 번듯한 직장을 갖고 어머니와 함께 사는 삶인 것이다.


그러나 미카미가 바라는 평범한 삶은 미카미가 야쿠자 조직에 몸 담으면서 평생을 옳다고 생각하며 따른 협의 정신 때문에 불가능하다. 조직원 간 의리를 지키는 즉, 조직으로 수렴하는 방식의 협이 몸에 배인 미카미는 어딘가 일그러진 협의 모습을 보인다. 밤 중에 시끄럽게 떠들 뿐만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를 핍박하거나 평범한 직장인에게 시비를 걸며 아들에게 주려는 선물을 뺏으려 하는 양아치를 미카미는 절대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용한 곳으로 가서 따로 얘기를 나누자고 하며 사람이 많지 않은 곳으로 간다. 문제는 인적이 뜸한 곳에서 미카미가 보이는 협은 계도가 목적이 아니라 상대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 즉, 폭력과 파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28년 중 13년이라는 수감 생활을 하게 한 상대 야쿠자 조직의 양아치 살인 사건에 대해서 미카미는 자신의 살인이 정당하다고 말한다. 이미 조직 생활을 청산한 자신과 동거하던 연인을 위협한 그 양아치는 계도 불가능한 악인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존재를 말살하는 극단적인 방식의 일그러진 협은 출소 이후에도 이어져 양아치들을 과도한 폭행을 넘어 짐승처럼 배를 물어 뜯으며 죽일 기세를 보이는 미카미로 나타난다.


이러한 미카미의 일그러진 협은 현대 사회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법과 규범으로 죄를 공적으로 징벌하면서 질서를 유지하는 현대 사회에서 협은 사회 내에서 복잡다단하게 형성된 인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죄를 사적으로 징벌할 뿐만 아니라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규범이다. 계도를 목적으로 곤경에 처한 사회 구성원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감정과 행위로서 협이라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카미의 협은 곤경과 어려움을 일으키는 이들을 악으로 규정하고 과할 정도로 징벌한다. 그저 곤경에 처한 이를 도우려 했다는 것 자체에만 집중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배를 물어 뜯어 이에 살점과 피가 묻어 있는 상태에서도 자신의 행위에 전혀 아무런 문제를 못 느끼는 미카미의 모습은 언제고 저 협의 기준에 자신의 존재까지도 말살될 지 모른다는 공포를 심어준다. 어쨌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이니. 시작은 회색빛에 폭설이 내리고 심지어 갈라져 버려 탁 트여 있지도 않은 하늘이었을지라도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며 갈라지지도 않아 탁 트인 하늘을 언제고 맞이하리라 꿈꾸는 미카미의 희망은 그렇게 일그러진 협에 의해 계속 흐리고 갈라진 하늘로 나타나고 좌절한다.


그렇다고 미카미가 살아가는 사회가 진정으로 바라는 이상적이고 멋진 세계라고 하기도 어렵다. 미카미의 일그러진 협은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미카미가 곤경 혹은 불의에 처한 이를 위해 기꺼이 나서는 감정과 행위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미카미와 달리 다른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저 타인이 처한 곤경이나 불의를 못 본 채 하며 넘어갈 뿐이다. 타인의 곤경이나 불의에 언제나 나서는 일은 불필요한 참견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쓸데없이 소모하는 것이며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타인을 위해 나서는 협은 자신의 존재를 피곤하게 하고 나아가 존재 자체를 위험하게 하는 행위인 것이다. 심지어 츠노다는 미카미가 타인을 위해 나서는 협을 발휘하는 것에 대해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았거나 부모로부터 버려지면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게 된 정신 장애라고도 평한다. 이러한 현대인의 모습에 대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의를 피하는 주제에 변명만 늘어놓는 비겁한 놈들이라고 욕하는 미카미의 말은 과격해 보일 지언정 현대 사회가 멋진 세계일 수 없다는 핵심을 관통한다. 영화의 시작에 나타난 갈라진 회색 하늘처럼 사회의 일원이 된 평범한 삶을 바라는 미카미의 꿈은 내적으로는 미카미 자신의 일그러진 협과 외적으로는 타인과 관계 자체가 이미 사라지고 있는 현대 사회 사이 모순으로 이미 뿌옇고 찢어져 있다.


3. 협과 관계가 살아나리라는 희망과 씁쓸한 미소와 함께 빛을 바라는 푸른 하늘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아주 잠시지만 미카미의 꿈이 희망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운전 면허증을 따 어떻게든 평범하지만 번듯한 직장을 얻으려고 하는 미카미의 계획은 너무 비싼 운전 교습 비용, 그런 교습 비용을 지원해주지 않는 사회 복지 제도, 자신의 과격한 일그러진 협에 겁을 먹고 어머니와 돈을 모두 충족하게 했을지도 모르는 영상을 포기한 츠노다 등에 의해 무너진다.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는 미카미에게 주변의 환경은 모두 미카미를 배신한다. 벼랑 끝에 몰려 평범한 삶을 포기할 상황에 처한 미카미가 선택한 것은 과거 함께 조직 생활을 한 야쿠자 형제 아키마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는 협과 야쿠자를 분리해 야쿠자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협의 정신은 계속해서 살린다. 협을 소재로 삼으면 항상 야쿠자와 조직 폭력배를 사용했던 일본 혹은 한국 영화에서 앞서 언급했듯 협은 인간 존재와 관계에 대한 감정과 행위의 방법론이라는 본질이 퇴색되며 오히려 이미지로만 멋과 가오가 살아있는, 이해하기 어려운 남성 중심의 가벼운 행위가 된다. <멋진 세계>는 기존의 협을 소재로 삼은 일본 혹은 한국 영화와 달리 야쿠자의 비참한 현실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비애가 느껴지도록 그려 야쿠자와 협을 분리해 협의 본질을 계속해서 유지한다.


미카미가 찾아간 형제 아키마사의 조직은 겉으로 보기에 화려할 뿐만 아니라 조직원 간 의리도 살아있는 듯하다. 산해진미가 화려하게 차려진 식탁과 깔끔하게 정리된 넓은 일본식 정원은 야쿠자 조직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착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키마사의 조직원들은 검은 양복을 절도 있게 차려 입은 것이 아니라 길거리 양아치들 마냥 헐렁거리는 츄리닝이나 조끼를 입고 있으며 중구난방으로 어색하게 문신을 몸에 그려놨을 뿐이다. 형제인 아키마사도 다 늙었을 뿐만 아니라 한 쪽 다리를 잃어 조직의 돈을 훔쳐 달아난 조직원을 쫓을 때는 다른 조직원들의 도움 없이는 쫓을 수도 없는 휠체어 신세이다. 아키마사의 아내인 마츠코는 미카미에게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간단한 은행 계좌 하나 만들지 못해 조직의 자금을 조직원에게 모두 털리기나 하고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아무런 교류도 못해 허구한 날 파친코나 가며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담배나 빨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야쿠자의 세계로는 돌아오지 말라고 한다. 사회적으로 결코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는 야쿠자 사회는 미카미를 유일하게 받아주는 사회이나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사회인 것이다.


받아줄 수 있으나 돌아갈 수 없는 야쿠자 사회는 협의 정신도 사라지고 구성원 각자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아귀다툼의 사회이다. 그러한 아귀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협의 정신은 남들이 보기에 같잖을 뿐만 아니라 말썽만 일으키는 일그러진 자부심 즉, 자괴감일 뿐이다. 조직의 돈을 훔쳐간 조직원이 신고한 경찰과 대치하는 아키마사와 조직원들은 자괴감을 부여잡고 간신히 살아있을 뿐 언제고 사라져야 할 과거의 망령이다. 하지만 영화는 야쿠자 조직의 안주인이면서도 야쿠자들의 불법 행위에는 직접적으로 나선 적 없어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평범한 사회로 돌아간 미카미와 야쿠자 조직 사이 경계에 있는 인물인 마츠코를 통해 협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하릴없이 낚시를 하러 갔다가 형제의 조직이 처한 위기에 의리를 지키기 위해 조직의 정문을 향해 뛰어가려는 미카미를 마츠코는 막아선 다음 그에게 얼마 안 남은 조직의 마지막 자금을 넘겨준다. 사라질 것이 오래 전부터 자명한 야쿠자 사회를 위해 희생할 생각하지 말고 간신히 들어간 평범한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라고 하는 마츠코의 모습은 야쿠자 사회에서 자괴감으로 남은 협이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모습이자 야쿠자 사회와는 무관한 협의 본질이 드러난 순간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마츠코를 통해 협의 정신을 느낀 미카미는 다시 도쿄로 돌아와서는 현대 사회에서 느낄 수 없던 타인과의 관계를 느낀다. 미카미의 수감 기록을 토대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한 츠노다는 미카미의 수감 기록을 보다 더 진솔하게 소설로 써 미카미를 돕고자 한다. 자신을 담당하는 사회 복지사 이구치는 미카미에게 운전 면허증 대신 과거 미카미의 인생을 솔직하게 쓴 이력서로 미카미가 요양 병원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할 수 있게 돕는다. 미카미의 다큐멘터리에 대해 걱정된다고 말했다가 관계가 서먹해진 마트 주인 료스케는 미카미의 취직에 누구보다 기뻐하며 미카미에게 더 힘을 내라며 돈을 빌려준다. 출소한 미카미의 신분 보증인인 츠토무와 그의 아내 아츠코는 츠노다, 료스케와 함께 미카미의 취직을 축하하는 파티를 연다. 출소한 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타인과의 관계가 주는 따뜻함에 미카미는 처음으로 하늘을 올려다 본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밤하늘은 그 어느 것에도 갈라지지 않았으며 그런 밤하늘에 샛별이 반짝이고 있다. 멋진 세계는 아니지만 멋진 세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사회는 평범한 삶을 원하는 미카미의 희망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탁 트인 하늘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끝내 멋진 세계는 도래하지 않는다. 미카미가 원하는 평범한 삶에는 어머니의 존재가 필수이다. 자신은 버려진 존재가 아니고 항상 사랑 받은 존재였음을 알려줄 어머니는 미카미의 평범한 삶에서 삶의 평범성에 대한 상징 그 자체이다. 하지만 자신이 지냈던 보호소의 오래 전 기록들은 모두 전소되었으며 그 당시 보호소 일을 도와주던 아주머니는 너무 늙어 하얀 옷을 입었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평범한 삶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깨달은 미카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며 즐거워 하던 와중에 골을 넣은 아이, 어쩌면 맡긴 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그리워 하고 있을 아이를 붙잡고 우는 것밖에 없다. 어머니를 찾을 수 없다는 좌절을 넘어 미카미는 이제 자신의 인생 가치였던 협조차도 지킬 수 없는 이가 되어 버린다. 이해할 수 없는 현대 사회에 부적응하고 머리를 싸매며 아파한 미카미는 약을 먹었음에도 이제 차오르는 울화로 가슴을 부여잡고 아파한다. 정신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과 무시를 당하는 요양 병원의 도우미를 돕지 못한 자신이 한심한 것을 넘어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관계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곤경과 불의를 못 본 채 하는 것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이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는 현대 사회라고 하지만 미카미는 협의 정신을 배신한 자신에 대한 울화를 참을 수 없다.

출처. 왓챠피디아

미카미가 바다에서 하릴없이 낚시를 하기 직전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탁 트인 하늘이 반짝이는 바다와 함께 단 한 번 나온다. 하지만 직전이라 했듯이 가장 깨끗하고 반짝이는 하늘과 바다는 스쳐 지나간다. 깨끗하고 탁 트인 밤하늘에서 밝게 빛난 샛별 역시 잠시였을 뿐이다. 정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폭력과 폭언을 듣고 있는 것을 외면한 요양 병원의 도우미는 태풍이 오는 와중에도 코스모스를 한아름 따고는 그 중 일부를 미카미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준다. "미카미씨, 코스모스 좀 가져가실래요?" 순수하고 아무런 사심없이. 협의 정신을 배신한 자신과 달리 심화(心火)라는 곤경에 처한 자신의 존재를 위해 기꺼이 코스모스를 건네는 도우미의 모습은 타오르는 가슴 속 울화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이전에 느꼈던 협과 관계의 따뜻함은 잠깐의 꿈이었나 보다. 태풍의 비바람이 몰아치는 방 안에서 코스모스 향기를 맡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결국 죽음에 이르는 미카미의 모습은 처량하기만 하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취직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리고 자신을 걱정하고 함께 해주는 타인의 따뜻함을 느낀 공간에는 몰아치는 비바람에 미카미의 손에서 흔들리는 코스모스만 미카미의 곁에 있을 뿐이다.


쓸쓸하고 처연하게 비바람을 맞으며 방에서 홀로 죽은 미카미를 위해 츠노다는 달려온다. 하지만 너무 늦었을 뿐이다. 다른 이들의 부축을 받으며 미카미의 방을 나와 멘션의 땅바닥에 앉고 올려다 본 하늘은 언제 태풍이 왔었다는 듯,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탁 트여 있다. 하지만 비가 와 티 없이 깨끗하고 맑아야 하는 하늘은 너무 강한 태양 빛에 어딘가 빛이 바래 그 푸름과 탁 트임을 온전히 느끼기 어려워 보인다. 뒤늦은 후회의 한숨이 가득한 낡은 멘션과 빛이 바란 듯한 푸르고 탁 트인 하늘은 출소라는 출생으로 태어난 사회의 아기 미카미가 평범한 사회에서 평범한 삶을 애초부터 살기 어려웠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 이유에는 서로의 존재와 관계를 수호하는 감정과 행위의 방법론 협이 더 이상 현대 사회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하늘이 저 멀리까지 푸르게 펼쳐진다 해도 그 하늘에는 아무도 날 수 없다. 애초부터 서로의 존재와 관계를 위해 어떠한 감정과 행위도 할 마음이 없는 현대인들은 서로 도와 함께 날 생각도 없다. 그저 '또 누가 죽었나 보구나. 그래도 나는 안 죽었구나.'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고 눈물이 맺힌 눈으로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그 눈물이 사라진 협의 정신을 향한 비애라는 것은 느끼지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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