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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 Feb 08. 2017

매기스플랜(Maggie's Plan)

가족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

*스포일러 있음.


매기스플랜은 매기(그레타 거윅)의 계획과 변주에 관한 이야기이다. 매기의 계획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사건들, 그리고 그것들 때문에 수정되는 계획과 실행을 매기라는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의 삶을 통해서 보여준다.


매기의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오지라퍼이다. 매기의 계획에 변화가 생기는 포인트마다 매기의 오지랖이 발동한다. 급여가 이중으로 입금된 사실을 확인 하자 마자 담당자에게 가서 사실을 알린다. 어차피 급여가 들어오지 않은 사람이 와서 항변을 할 것이므로 '가만히 있어도 되지만' 매기는 굳이 가서 말한다. 거기서 존(에단 호크)을 만났고, 인류학자이지만 소설가를 꿈꾸는 그의 소설을 읽어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매기의 첫 번째 계획은 '아이를 갖는 것'이다. 매기는 거추장스럽게 결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6개월 이상 사랑을 지속한 적이 없었고, 그러니까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서 굳이 결혼을 원하지는 않았다. 매기는  가임기가 끝나가는 어느 시점에 정자은행을 찾기보다는 지금 그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적극적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남편이라는 존재를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정자보다는 대학 동기인,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가이(트래비스 핌멜)에게 정자 샘플을 받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가이는 수학의 길을 포기하고 지금은 피클을 만들면서 산다. 가이는 매기를 좋아하지만 매기의 의사(결혼은 싫고 정자만 원하는)를 존중해준다. 가이는 정자 샘플을 주기로 한 날, 단정하게 차려입고 매기를 찾아가서 꽃을 전해준다. 정자 샘플이 아니라 직접 주면 어떠냐고 슬쩍 묻기도 했지만 매기는 단호하다. 정자 샘플을 주고받은 후 사진을 찍자면서 슬쩍 스킨십을 하는 가이의 샤이함, 조심스러운 그가 마음에 든다.


그 사이 존과 매기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잘난 아내에게 치이기만 하는 존의 소설을 최선을 다해 읽고 공감해주었다. 존은 매기와 소설 이야기를 하다가 인류학자인 아내(조젯, 줄리안 무어)와 함께하기로 한 간담회에 늦는다. 그 장면에서 조젯이 처음 등장하는데, 등장부터 카리스마가 넘친다. 존의 어떤 의견에 대해서 쉬지 않고 지식을 쏟아낸다. 그리고 장면은 갑자기 집으로 바뀐다. 조젯은 연구와 일로 바쁘기만 하고 아이들에게 음식을 챙겨주고 돌보는 일은 존의 몫이다. 존에게서 아내에 대한 열등감을 읽는다.

 

자신의 소설에 감탄하고 공감해주는 존은 매기에게 사랑에 빠졌고, 매기는 자신의 계획과 달리, 결혼을 하게 된다. 물론 원하는 바대로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 릴리를 얻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매기의 상상과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오지라퍼 매기는 온갖 집안일과 육아를, 심지어는 조젯과 존의 아이들 둘을 돌보는 일까지도 매기의 몫이 되었다. 존은 조젯과 살 때와 다르게 자신밖에 모르는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찌질한 남편이 되어가고 있었다.


매기와 릴리가 함께 있는 공간은 무척 평화롭다. 그들의 평화에 존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았다. 때때로 존을 돌보느라 릴리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고 매기는 결단을 한다. 머리가 복잡하다는 매기에게 릴리는 스펀지로 지우면 안 돼?라고 묻는다. 매기는 복잡한 생각을 지울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즈음에 매기는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존을 조젯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매기는 다툼이 잦아지면서 존과 헤어지기로 마음을 먹는다. 매기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 릴리였다. 양부모가 존재하더라도 둘 사이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아이가 느낀다면서, 차라리 혼자 키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존과 그냥 헤어지면 된다. 친구 토니(빌 헤이더)도 그냥 이혼하면 되지 뭐하러 그런 수고를 하려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매기는 존이 자신이 아니라 조젯과 함께 있을 때 빛난다고 굳게 믿었고, 다시 한번 매기의 오지랖이 발동한다.  존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존이 자신보다 조젯에게 더 어울린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렇다면 조젯에게 존을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했다.


매기는 친구 펠리시아와 함께 조젯의 출판기념행사에 참석하면서 조젯을 처음 만났다. 존의 소설 속 묘사와 다르게(존의 소설에서 조젯은 마녀 같다) 조젯은 멋진 커리어우먼이었다. 매기는 조젯을 찾아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한다. 그 계획에 대한 조젯의 첫 반응은 불쾌함이었지만, 이내 매기의 계획에 공감하게 된다. 조젯은 학교 식당에 있는 매기를 찾아가 구체적인 계획을 공모한다.


존은 소설가로서 자질 없음을 깨닫고 나서 길을 잃는다. 조젯은 존이 가진 인류학자로서 남다른 시각을 높이 평가했고, 존이 학자로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같은 전공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아내에게 가려진 존을 아내인 조젯이 새롭게 읽어주고 빛나게 해주었다. 존은 서서히 아내에 대한 열등감으로부터 해방되어간다. 조젯은 자신의 성취과 인정을 위해서 가족을 나몰라라 했던 부분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조젯과 존은 서로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변해간다. 존의 소설을 읽은 조젯은 소설을 모조리 태워버림으로써 이전의 자기 자신(자신의 성취를 위해서 가족을 희생시킨)도 함께 날려버렸다.


 

매기와 조젯의 공모는 그렇게 완성되어간다. 공모가 들키는 바람에 매기와 조젯, 조젯과 존의 두 아이들, 그리고 매기의 아이 릴리가 잠시 함께 살기도 하지만. 그때에도 매기는 함께 사는 이들을 돌본다. 그게 매기이다. 매기의 오지랖은 그녀를 살게 하는 동력 인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들에게 애정과 헌신을 베푸는 매기이지만 왜인지, 자신에게 정자를 주기까지 한 가이에게는 차갑고 냉정하다. 우연히 만난 매기와 딸을 보면서 반가워하면서 혹시 저 아이가 자신의 정자로부터 수정된 아이일까? 하는 호기심과 사랑을 담을 가이에게 매기는, 가이가 그 어떤 말도 꺼내기 전에 결혼했다는 말부터 해버린다. 가이는 가타부타 말 대신 결혼 선물이라며 엄청난 병에 든 피클을 준다.


영화는 '가족'에 대한 질문을 한다. 전통적으로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맺어진 관계를 중시하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뒤집는다. 매기는 혈연관계에 대해서는 오히려 차갑고 냉정하다. 그렇지만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사랑과 애정, 그리고 헌신을 기꺼이 내준다. 영화에서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매기는 존과 조젯이 재결합을 한 이후에도 그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을 것이다.


매기의 계획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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