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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 Apr 10. 2017

나를 사랑한다는 것(어느날, 2017)

영화 "어느날"후기

영화 어느날은, 아내를 잃은 한 남자 이강수의 성장 드라마다.

그의 성장과정에 시각장애인으로 살았던 미소가 있다.


강수의 아내는 오랜 병치레 끝에 세상을 떠났다.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었을까. 강수는 아내의 장례식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반쯤 넋을 잃은 채로 거리를 활보하는 강수는 아내를 떠나보내는 일을 차마 하지 못한다.  


강수는 보험회사에서 일한다. 그 때문에 병원을 자주 방문한다.

아내의 죽음 이후, 처음 맡은 사건은 한 시각장애인의 교통사고였다. 교통사고를 낸 사람이 강수의 보험회사의 의뢰인이다. 팀장은 어떻게든 합의를 해내라고 압박하지만, 강수는 그러지 못한다. 아니 무능력한 사람으로의 낙인을 꿋꿋이 버티면서 하지 않는다.


간호사들, 심지어 보험사기를 일삼는 나일롱 환자들까지를 포함해서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강수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보험조사를 위한 방문일지라도 환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며, 보험사기꾼들에게도 인정을 베푼다.

 

그러니까 강수는,

아내를 잃고도 애도할 줄 모르는 개자식이 아니라, 자신의 슬픔과 고통과 마주하는 법도 표현할 줄 모르는 자기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서툰 사람이다. 아내의 죽음 이후 한참도록 강수는 정신줄을 놓고 산다. 감히 아내의 작업실 문을 열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고, 보통의 삶을 산다는 것 자체로 아내에게 미안해한다.  강수는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지도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거둬들이지도 못한채 삶의 방향을 잃었다. 그의 삶은 황폐해졌다.


그러다 미소를 만나게 된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미소가 강수를 찾아온 것일수도, 강수가 미소를 찾은 것일수도 있다고 했다. 보고싶은, 만나고 싶은 환영이 미소로 투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미소는 시각장애인이었고, 강원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져있다. 그 사건의 담당자인 강수가 미소를 찾아가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미소가 의식을 잃었을 때, 미소가 나타난다. 미소의 영혼이 미소로부터 빠져나오게 된다. 원래 미소는 앞을 볼 수 없었지만, 몸에서 빠져나온 미소는 세상을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소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자, 세상이 미소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은 볼 수 없던 미소를 보는 유일한 한 존재, 그가 강수다.

미소는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기쁘지만, 보이지 않을 때 손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한다. 미소는 강수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손의 감촉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훗날, 강수는 그런 감각을 통해서 죽은 아내를 느끼게 된다.  강수는 미소의 소원을 하나씩 해결해준다.  어느날엔가는 떨어지는 꽃잎을 느끼고 싶어하는 미소에게 살작 손을 받쳐주었다. 그렇게 미소와 강수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


강수는 미소가 당한 교통사고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캐고 다녔다. 강수가 이해하고 싶었던 미소는, 어쩌면 자신의 아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토록 미소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날의 이야기를 알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미소와의 만남 이후, 버려졌던 강수의 삶이 조금씩 생기를 찾아간다.


강수가 미소의 교통사고와 그날의 일들. 이해되지 않았던 사실 조각들의 퍼즐이 맞춰지면서 미소를 이해하게 되었고, 미소에게서 아내 선화를 보게 된다. 그리고 아내를 이해하게 된다. 아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던 어느날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된다. 아내를 지키지 못해 받아들일 수 없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고, 아내의 선택이 '사랑'이라고 믿게 된다.


강수는 영문도 모른채 어느날 아내를 잃고 방황했고, 그날부터 강수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증오했으며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강수는 미소를 만났고,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만질 수 없게된 미소의 필요를 채워주던 어느날, 미소를 통해서 아내를 보았다.


그리고 강수가 자신을 받아들이고 삶을 사랑하게 된 어느날,

미소와 강수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기 자신을 용납하는 일에 서툴다. 좋은 사람이고 싶은데 그렇지 않아서, 자신의 이상과 실제 처한 현실과 모습이 너무 달라서, 혹은  자신의 잘못이나 서투름 때문에 생긴 일로 인한 자책이나 죄책감 때문에. 강수도 그렇다. 그런 강수에게 어느날 나타난아니 어쩌면 강수가 불러들인) 미소를 통해서 자신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강수는 직면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마음도 바라봐주게 되었고, 아내에 대한 죄책감도 조금씩 덜게 되었다. 그리고, 미소를 잊지 않겠다고 한 약속처럼 아내도 기억하고 추모하고 애도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강수가 그랬듯이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사랑하며, 지금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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