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을 꿈꾸며...
'후~'
크게 한 숨을 쉬었다.
흥분과 설렘, 그리고 걱정거리를 가득 품은 채로 창밖을 바라봤다. 엔진 터빈 옆으로 초록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비좁은 좌석을 10시간 넘게 쭈그려 앉아있으니 다리를 잘라내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중간에 한번 잠을 깨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 체질이라 이륙 후 한 시간 정도를 잠들었다가 기내식 때문에 일어났는데, 그때부터 쭈욱 뜬눈으로 버티고 있다.
어두컴컴한 망망대해 위를 두 귀가 멍한 채로 거의 반쯤 실성한 상태로 12시간 이상을 날고? 있었다. 잠시 후 LA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맨트가 나왔다. 마음이 복잡해지고,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 더 젊었을 적, 필자가 청춘의 입춘이던 20대 무렵, 호기롭게 구형 노스페이스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두 다리로 전국 팔도를 걸어 다니면서 읽었던 책 한 권이 계기가 돼서, 비행기 한구석 탱이에 쪼그려있다.
'와일드'라는 여행기였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큰 충격을 먹고, 계기를 찾기 위해 미국 서부에 위치한 가장 위대한 장거리 하이킹을 떠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 그렇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내가 그 짓을 하고 있다. 뭐 대단한 영광을 바라고 시작한 일은 아니다. 필자도 소설 속 주인공처럼 어떤 계기가 필요했을 뿐이다.
똥오줌에도 道가 있다
장자라는 철학자가 말했다. 사람 해석하기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지만, 필자의 생각으론 '계기란 것은 집에도 있을 수 있고, 다음 날에도 생길 수 있고, 굳이 멀리 찾지 않아도 생기는 것' 계기라는 것은 사실 본인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지만, 인간적이고, 너무나도 인간적인 필자는 계기라는 것은 큰 사건에 스스로를 던진 후 그곳에서 두 다리로 일어서며, 고통과 고난 속에서 성취감과 희열을 찾는 일종의 '마조히즘'같은 비이성적인 것에서 쾌락을 느끼는 것 같다.
어리석지만, 천성이 그런 것이라 미련한 짓을 하고 있다. 당시 내 몸무게는 90Kg에 육박하기도 했기에, 신체적으로도 아주 바닥이었다. 육체가 건강하지 못하면 정신도 건강하지 못한다. 목적을 잃어버리고, 우울증과 공황장애 증세로 고생하고 있었다. 이십 대에 번 돈을 투자해 푸드트럭을 시작했는데, 처참하게 망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망하는 게 당연한 아이템이었다. 쪽팔려서 무엇을 팔았는지 말은 못 하겠지만, 백 명에게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 나올 것은 뻔하다.
'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리면 태산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알바를 하던 곳에서 사귀게 된 여자 친구가 일주일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해서 '울진'으로 따라가 평생 원자력발전소에서 숙식 막일을 하면서 착실하게 돈도 모으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여자 친구와 이런저런 사소한 문제로 다투다가, 다투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헤어졌다. 결정적으로 헤어진 계기는 일을 하다가 추락해 죽을 뻔한 날, 퇴근 후에도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고, 무서워서 내일 하루 쉰다고 하니, 정말 남보다도 더 못한 이야기를 들은 후 이별을 결심하게 됐다. (이제야 생각해보면 둘 다 성숙하지 못했다.)
정신과 육체는 밑바닥까지 떨어져,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뭘 해도 안 되는 인간이구나 하고 스스로 비난했다.
매일 습관처럼 '나는 된다' , '내가 안되면 그 누구도 못한다' 스스로 확언을 하고 다니던 내가, 추락한 후에는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았다.
풍경은 회색 빛으로 물들었고, 모든 게 부질없고, 의미가 없어 보였다. 가족도 친구도 나라는 존재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덮치면 주변에서 어떤 소리를 해도 들리지 않는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살라고 일어나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악순환을 불러오는 법이다.
6개월간 매일 30~40km 이상을 걷는다면, 무조건 살이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이유도 한 몫하기도 했다. 몸이 건강해지면, 정신도 분명 올라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6개월 간 오롯이 걷는 것에만 집중하며 다른 것들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알고 있다.
다녀오면 30대가 넘고, 중요한 시기마다 항상 도망가 듯 일탈을 꿈꾸는 것은 마치 '병'과도 같다. 남들은 착실하게 한발, 한발 나아가는데, 왜 평범하게 살지 못할까?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이미 평범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자라온 내가 평범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보통 이러한 성향들은 살아오면서 가정에서의 교육과 경험에서 기반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고, 나이가 훌쩍 넘어서야 이제 스스로 깨닫고, 경험하고, 배워나가는 법을 터득해나가야 한다. 사람마다 환경이 달라 느리고, 빠르다는 것도 결국 보편성이 깔아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 아닐까? 세상을 바라보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창업이든, 영업이든, 보편성을 따라가면 특별할 수가 없다.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최소한 나중에 가난하게 살더라도, 죽기 전 내 스스로에게 '즐거웠냐?'는 질문에 '무척 즐거웠다'라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한 마음은 지금도 변함 없다.
덜컹
생각이 꼬리를 물고 가던 중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퀴를 통해 느껴지는 지면의 울렁거림과 진행하는 방향과 반대로 작용하는 관성까지 몸에 그대로 느껴진다. 착륙 때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한다는 어떤 글을 보고 난 후에 착륙 때만큼은 항상 긴장된다.
이 육중한 철 덩어리가 하늘을 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불가능한 일 같아 보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