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안젤라3

마지막 밤

by 냥이왕국

LA 공항 근처에서 하루 휴식을 하면서 장시간 비행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센디에이고로 향했다. 앞으로의 일정은 샌디에이고에서 1일 정도 휴식을 하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한 후 PCT 출발지 인 Campo로 이동한다.


거의 무계획으로 왔기 때문에, 어제저녁부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식량은 어떻게 할 것이며, 장비는 무엇을 더 구매해야 한단 말인가? 방송국 측에서 후원을 받아 N사의 제품을 받았다. 그러나 N사의 제품 중 백패킹에 대한 지식이 없었는지, 쓸만한 장비가 의류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장비들을 구매 비용을 조금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어쨌든 '공짜'니까 후원받은 제품 중 필요한 것만 골라내고, 나머지 제품들은 집에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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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팀을 따라 들른 카메라 가게에서 카메라를 구매했다. 아웃도어 전용 제품이라 충격과 비, 먼지에 강할 것 같아서다. 여담이지만,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원체 물건을 험하게 사용하는지라 PCT 기간 중 카메라가 박살 났고, 휴대폰 또한 박살 났다. 6개월 동안 잘 사용했지만, DSLR급 장비를 짊어지고 풍경을 찍을 생각이 아니라면, 휴대폰 카메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게를 100g이라도 줄이기 위해선 중복되는 부분을 줄여나가야 한다. 당시 보유하고 있던 휴대폰은 구매한 지 3년이 훌쩍 넘은 보급형 모델이라 카메라에 투자했지만, 최신 기종의 휴대폰이 있었다면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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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의 날씨는 참 좋다. 처음으로 와본 미국은 도로가 넓고, 하늘이 청명했다. 날씨는 따뜻한데, 습기는 별로 없어서인지 바람이 불 때 싸늘한 기분마저 들었다. 한국에서 느꼈던 꿉꿉함이 비정상 적이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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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 위치한 REI에 들렀다. REI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쇼핑천국인 셈이다. 캠핑 장비부터 시작해서 아웃도어 용품 대부분이 이곳에 입점해 있다.


만약 PCT 장비를 구매해야 한다면, 한국에서 구매하지 말고 REI에서 구매할 것을 추천한다. AS 정책이 한국과는 달라서 어떠한 이유로 또는 변심이던지 파손이 되면 영수증만 있다면 1년간 무료로 교환해주기 때문이다. 필자도 스틱과 에어 매트리스 등 제품을 교환했다.


참고로 1년 후에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 카드를 만들어 주고 10% 적립을 해준다. 영수증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구매내역을 증명할 수 있는 '보험' 차원에서 하나 만들면 좋다.


대부분 PCT 여행자가 주머니가 가벼운 청춘들이 많기에, 이 방법을 적극 추천한다. 필자는 스틱을 3번 교환했다. (부러져서) 하이킹 중에 장비가 부러지면 곤란한 상황이 많은데, PCT 코스 중간, 중간 REI가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으니 무조건 하는 것을 추천한다. (심지어 양말도 교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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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미국'의 스케일답게, 2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거의 모든 용품을 팔고 있는 듯했다. 해맑은 아이처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과 또는 필요하지 않은 물품들을 쇼핑하기 시작했다. 먼저 침낭과 에어 매트리스, 스토브를 구매했고, 순식간에 100만 원이라는 돈이 증발했다.


캠핑장비는 꽤 비싼 편에 속한다. 거기에 '가벼운'이라는 용어가 붙는다면 금액이 2배로 올라가는 기분이다.


장비를 구매한 후에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우울감'과 '상실감'이 몰려왔다. 겁이 났다. 계획 없이, 무작정 가자는 생각으로만 오다 보니, 내일부터 4200KM 이상의 거리를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공상과학처럼 다가왔다.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지랄을 하는 것인지 스스로 자책했다.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눈을 뜨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6개월 간 다녀오면 또 백수일 텐데, 차라리 그 시간에 돈을 모아서 조그마한 장사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촬영에 대한 부담도 크다. 방송에 욕심이 전혀 없고, (진심으로) 조금 더 젊은 나이라면 '청춘', '열정', '도전'이라는 근사한 단어들로 포장해서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겠지만 서른 넘은 나이에 누가 보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저러고 다니나'는 소리를 들을까 봐 쪽팔리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져서 도통 끊어질 기미가 없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으면 적당히 걷다가 다리 부상인 척 그만둘까?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후회되냐고?


'싯팔 후회된다.'


출발 전 마지막 밤, 나는 후회와 우울감, 상실감, 무력감이 뒤엉켜 엉망진창이 밤을 억지로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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