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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인 Aug 04. 2022

애프터 양(2021)

너머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애프터 양(2021)>은 근미래, 안드로이드 인간이 상용화된 SF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코고나다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한 가족, 그리고 그 가족 구성원으로 있던 안드로이드 인간 '양'이 작동을 멈춘 이후의 일이다. 주인공 제이크는 양이 사라진 자리에서 양의 기억을 들여다본다. 양이 본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삶'은 양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더 나아가, 인간이 아닌 로봇의 생을 어떻게 규정지을 수 있을까. 영화는 피어오르는 의문들을 고요하게 파헤쳐 나간다.


<애프터 양>을 이루는 것은 '너머의 세계'다. 인종 너머의, 인간 너머의, 기억 너머의 무엇. 먼저, 이 가족의 구성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 그들 사이에 입양된 중국인 딸. 부부는 딸의 적응을 위해 중국인으로 설정된 '세컨드 시블링스' 로봇 양을 구매한다. 코고나다의 세계에서 가족은 혈연이나 뿌리에 의한 것이 아니다. 양의 말을 빌리자면, 이 가족은 "다른 나무에서 온 가지처럼" 이어져 있다. 이들은 같은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으며, 양은 각기 다른 가족이 서로를 원활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이음새가 된다. 그를 통해 이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공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과 로봇은 어떻게 다른가. 제이크의 회상 속 양과의 대화를 떠올려 본다. 차(茶) 상점을 운영하는 제이크에게 양은 자신에게도 "차가 그냥 지식이 아니면 좋겠다" 말한다. 차에 관한 "진짜 기억"이 있으면 좋겠다고. 장소와 시간을 기억하고 싶다고. 양의 이러한 욕망은 한순간의 것이 아니다. 양은 오랫동안 사유하고, 누구보다 진정성 있는 태도로 가족을 대한다. 극 중반에 등장하는 양의 친구이자 안드로이드 로봇이기도 한 '에이다'는 양이 사라진 자리에서 눈물을 흘린다. 양을 추억하며, 양의 사랑을 대신 전하며. 인간들이 로봇이라 칭하는 '테크노 사피엔스'들에게도 욕망이, 취향이, 감정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오히려 삭막하게 느껴지는 것은 제이크를 비롯한 인간들의 세계다. <애프터 양>을 이루는 것은 유리와 벽, 선으로 이루어진 단조로운 공간이다. 그 너머에서 생동하며 푸른빛을 띠는 식물들과는 대비되는 이미지다. 인물들은 종종 가로막히거나 가두어진 양상으로 스크린에 나타나고, 한참을 머무르다 사라진다. 유리 너머, 차창 너머, 벽과 벽 사이에 있는 인물들의 감정은 의도적으로 제한된다. 이러한 이질감은 인물들이 화상통화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극대화된다. 변경된 화면비 속 정면만을 응시하는 인물들은 디지털 기기로 이어진 작은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제이크는 양의 '메모리 뱅크'를 통해 그의 기억들을 '관람'한다. 그 속에는 양이 지나온 무수한 시간들이 있다. 그것은 제이크가 이미 알고 있는 시간이기도, 절대 알 수 없던 공간들이기도 하다. 양의 눈에 담긴 짧은 순간으로 저장된 기억들은 촘촘히 연결되어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가 된다. 가족의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내었던 오프닝 씬의 카메라처럼, 양은 자신의 눈으로 소중했던 많은 것들을 기록해낸다.


양의 오래된 기억들이 이어지는 시퀀스는 여지없이 아름답다. 그 안에 너무나 분명한 애정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기록하는 장치'로써 기능했던 양의 기억은, 관람자가 매개되며 새로운 존재가치를 획득한다. 이 영화의 의의는 인종, 인간 혹은 기억의 범주를 해체하는 것에 있지 않다. <애프터 양>이 목표로 하는 것은 다만 그 너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 그리하여 그곳에 '양'의 시간이 있었음을 증명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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