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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쨩 Mar 19. 2020

prologue : 간호사 하길 잘했다.

간호사의 일기


 간호사로 입사하여 근무한 지 일년쯤 되었을 때. 그때의 난 처음 입사했을때의 포부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다. 처음엔 '환자를 정말 잘 돌보는 간호사가 되어야지! 능력있는 간호사가 되어야지! 진짜 오래 다닐거야!' 라는 포부를 가지고 있던 내가 이제는 매일 출근하면서 드는 생각은 오직 '오늘 하루도 아무일 없이 지나가길.' 이였고, 언제나 칼퇴만을 바라는 간호사가 되어있었다. 


점점 의욕이 상실되던 그 때에, 병동에 미국에서 온 손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수신인은 나였고, 발신인은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병동 선생님들 모두가 그 손편지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나 또한도 그랬다.

'응?! 처음보는 이름인데? 미국에서 편지가 왜 와..? 미국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한 채로, 편지를 뜯어보았다. 


미국에서 온 그 손편지는 쓰여진 지 넉달도 더 된 편지였다. 한국으로 오는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편지가 다시 발신인에게 반송되었다가, 재발송되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 편지의 발신자는 내가 예전에 담당했던 환자의 보호자였다. 간이식을 받은 환자가 걱정되어 환자를 돌보러 미국에서 왔던 보호자는 3일을 병원에서 지내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나는 그 당시 그 환자의 담당 간호사였고, 부끄럽지만 나의 간호에 크게 감명을 받고 미국에 돌아가 편지를 작성해주셨다고 했다. 간호사분들이 친절하여 환자를 병원에 홀로 두고 미국에 돌아가는 길이 안심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환자분은 잘 회복하여 직장도 다시 다니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함께 적혀있었다. 


그 편지를 읽는데 가슴이 너무 벅차올랐다. 하루에도 너무 많은 환자와 보호자를 접했기 때문에 편지를 작성해주신 보호자님과 환자분의 얼굴은 아쉽게도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늘 해오던 간호가 그 분들에게 힘이 되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그리고 그동안 지쳐있던, 힘들어했던 내 마음이 감사편지에 되려 위로를 받았다. 

아, 내가 정말 듣고싶었던 말은 '간호사님, 감사합니다.' 였구나. 

그동안은 일할 때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듣기보단 날이 선 말들을 들어왔다. 그런데 이렇게 감사편지를 받게되니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이 눈녹듯 녹아내렸다.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이 듣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진짜 간호사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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