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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n Feb 27. 2021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하루키를 찾아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하루키의 초기작 세 권이 궁금해졌다.
하루키가 제일 처음 쓴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읽었다.
지금은 많은 독자들이 좋아하는 유명 작가지만, 그에게도 서툰 처음이 있었겠지? (하지만 일하며 쓴 첫 소설로 군조신인상이라니... 그는 언제가 서툰 것인가?)그 초기작은 어떨까하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재밌다.
숭숭 공간이 빈 글이라 좋다. 바람 길이 숭숭 뚫린 소설이다.
젊은 하루키가 쓴 글이어서 그런가? 요즘 그의 소설보다 젊게 읽힌다.

소설을 읽으며 나의 20대 초반을 많이 떠올려보려 했다. 이상하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궁금하다. 이래서 사람은 글을 써야한다. 글로 남겨야 그 기억이 전해 내려갈 수 있다.(역사서처럼?)
대학교 때 '구비문학'관련 동아리를 했었다. 1학년 때만 활동하고 2학년부터는 과 관련 일에(혹은 연애에) 더 치중했던 것 같다. 동아리의 기억은 대학교 첫 여름방학의 기억이 전부다. 우리는 구비문학을 찾아서 어느 시골 마을 노인 회관에 묵으며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가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르신들의 말씀을 카세트로 녹음을 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방학동안 녹음된 테이프를 들으며 문서파일로 남기는 작업을 해야 했다. 대학교 첫 여름방학의 구비문학을 찾던 그 시간은 상황보다 느낌이 기억으로 남는다. 환대받는 기분, 따뜻한 기분,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며 빠져드는 몰입의 느낌, 사투리 쓰시는 어른들의 말씀을 글로 옮기기 위해 여러 번 들으며 왜 이런 건 1학년에게만 시키는 것인가 하는 조금 분했던 마음.

이 날의 사진 한 장이 있는데 찾아보니 없다. 어디 갔을까? 유일하게 한 장 있는 1학년 여름방학의 내 사진은. 그리고 그때의 내 생각들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p.87 “오늘 밤에는 구두를 닦지 않아도 괜찮아?”
“밤중에 닦지, 뭐. 이 닦을 때 함께.”

p.106 누구에게나 쿨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시절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나는 마음속의 생각을 절반만 입 밖으로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유는 잊어버렸지만 나는 몇 년 동안 그 결심을 실행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이 생각한 것을 절반밖에 얘기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린 사실을 발견했다.

p.123 나도 이따금 거짓말을 한다. 마지막으로 거짓말을 했던 건 작년이다. 거짓말을 하는 건 무척이나 불쾌한 일이다. 거짓말과 침묵은 현대의 인간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거대한 두 가지 죄악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자주 거짓말을 하고, 자주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1년 내내 쉴 새 없이 지껄여대면서 그것도 진실만 말한다면, 진실의 가치는 없어져버릴지도 모른다.

p.143 모든 건 스쳐 지나간다. 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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