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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피 Nov 03. 2015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방금 집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앞 도로는 중앙분리대가 있는 왕복 2차선 도로다. 한 차선을 막으면 지나갈 수 없다는 얘기다. 바로 그 길을 차 한대가 막고서 차주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반대편 차선을 확인하니 멀리서 차 한대가 천천히 오고 있어 상황을 이해했을 거라 믿고 반대차선에 진입했다. 


그래. 분명히 내 잘못이다. 그런데 천천히 오던 그 차가 상향등을 번쩍이며 갑자기 악셀을 밟는 게 아닌가? 옆 차선을 막고 있는 차 까지 못 보고 그냥 내가 역주행을 했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난 상향 등과 크락션 세례를 받으며 후진을 해줬다. 차도 몇 대 없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급한일이 있었겠지. 이해한다.      


차가 없는걸 다시 한번 확인하고 반대차선으로 차를 빼서 주차한 뒤 길을 막고 있는 차주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다. 차가 길을 막고 있는걸 모를 수 있으니까. 때 마침 마트에서 짐을 한 보따리 들고 나오는 차주를 마주쳤다. 차를 이렇게 대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큰소리로 따져 물었다. 솔직히 화를 참지 못했다. 길을 막고 있으니 빨리 빼는 게 좋지 않겠냐고 좋게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사과는 아니었다. 옆으로 충분히 뺄 수 있는데 왜 그러시냐고 한다. 맞는 말이었다. 정말 조심해서 백미러를 접으면 가까스로 뺄 수 있었을 거다. 예전의 나였다면 분명 그랬을 거다.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없다. 새로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차에 흠집을 낼 위험을 감수하고 조심스레 차를 뺄 만큼 나는 착하지 못하다. 이타적으로 살려고,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남들을 배려하면서 살려고 했는데 요새는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그때부터 서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뒤에 오는 몇 대의 차들이 크락션을 울려주는 바람에 결국 죄송하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 자리를 떴다. 분명 내가 이긴 싸움이었는데 나는 알 수 없는 화가 계속 난다. 배려를 기대하고 반대차선으로 들어선 내 잘못과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버린 내 잘못. 그리고 내 상황을 이해 못한 반대편 차선의 차주. 자기만 편하려고 마트 앞에 불법 주차를 하고 너무도 당당했던 젊은 친구 두 명.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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