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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Aug 22. 2016

몰라 몰라 개복치

소소한 산문


몇 년 전, <살아남아라 개복치>라는 게임이 있었다. 너무나도 여린 개복치를 죽이지 않고 오래 살려내는 것이 게임의 목표. 이름도 참 요상한 개복치는 그야말로 유리멘탈 물고기다. 물이 차가워서 죽고, 바위를 피하지 못해서 죽고, 그물에 걸려서 인간에게 먹혀 죽고, 동료 물고기가 죽는 걸 보고 충격받아 죽고…. 이 게임을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주변에서 이것 보라면서 개복치가 죽는 여러 가지 이유들을 보여주곤 했다. 근데 그때마다 분명히 이 개복치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암만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는 거다. 개복치. 한 번 보면 까먹을 것 같지 않은 이름인데 말이다.


박민규의 <카스테라>. 맨 밑에 복어 같이 생긴 물고기가 개복치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서 개복치가 박민규 소설집 <카스테라>에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맞다. 기린이며 너구리며 펠리컨, 대왕오징어 사이에 있는 그 못생긴 물고기였던 거다. 그 단편 소설 이름은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분명 읽은 소설인데도 당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읽어볼까 하다가 또 한동안 개복치를 잊었다.


그로부터 또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오래 알고 지냈지만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던 한 아이와 여차저차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박민규 예찬론자였다. <아침의 문>의 소감 한 글귀를 통째로 외고, '민규 형' 같은 소설가는 다시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그 아이가 박민규 예찬을 풀어 놓을 때면, 난 괜히 어깃장을 놓곤 했는데 마지막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인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 그 아이는 '에이. 파반느는 좀 별로지'라고 응수했다. 우리가 뭐라고 인정하네 마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좋아하는 작가는 다르지만, 우린 때때로 김애란의 <서른> 속 문장을 나누고, 서로의 책장 깊숙이 꽂혀 있던 책을 나누고, 가장 날 것의 글을 나누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럴 때면 종종 눈물이 날 만큼 행복했다.


그러다 겨울에 부산 여행을 갔다. 태종대 산책로를 걷고 있는데, 거기서 아주 우연히 '개복치'를 만났다. 해양생물을 설명하는 글들이 산책로 곳곳에 팻말처럼 걸려 있었는데, 거기에 개복치가 있었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개복치 사진 옆에 'mola mola'가 적혀 있었다. 몰라 몰라. 그랬다. 박민규의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의 그 몰라 몰라는 학명이었던 거다. 그 얘기를 하니까 그 아이는 "그러니까 그 소설 다시 읽어보라구" 하며 웃었다. 아무튼 잊고 지냈던 것을 알게 된 나는 재잘재잘대면서 "어떻게 몰라 몰라가 학명일 수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며 웃다가 계단이 있는 줄도 모르고 무릎을 꿇어가며 넘어졌다. 정말이지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고작 개복치 따위에 웃다가 넘어진 게 창피했다. 그 일 때문에 개복치가 괜히 미웠다.


그로부터 또 시간이 흘렀다. 난 또 한동안 개복치를 잊고 지냈다. 그런데 잊은 듯하다가도 개복치는 문득문득 나에게 찾아온다. 그럴 때면 속절없이 개복치를 생각한다. 그러면 박민규와 그의 글을 흠모하던 아이와 태종대의 기억이 꼬리를 물듯 이어진다. 서울에 올라가면 '한 조각의 카스테라를 스스로 만드는' 기분으로, 책장 한 구석에 꽂혀 있는 <카스테라>를 읽어야지. 갑자기 마음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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