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의젓한 사람들 | 김지수 인터뷰 집
매달 넷째 주 일요일 밤은 '소울살롱' - 책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여정을 위해 내가 만든 온라인 독서 모임 - 멤버들과 함께 한다. 매 분기마다 읽을 책을 정하고, 책을 읽고, 책에 대해 - 궁극에는 서로에 대해, 우리에 대해 -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몰랐던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지식의 측면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고, 그 안에 나를 투영하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모임이 끝나고 나면 뷰티 살롱에서 케어받고 갓 나온 것처럼 리프레시된 느낌을 받곤 한다.
어제도 역시 그랬다. 김지수 인터뷰 집 <의젓한 사람들: 다정함을 넘어 책임지는 존재로>를 읽고 만나는 시간이었다. 책 속에는 불안을 이겨내고 우뚝 선 사람들, 나를 넘어 우리까지 챙길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들,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지금의 최선에 집중하는 '의젓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부드럽지만 단단해 보였고, 다른 이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이 느껴졌다. 그렇게 의젓한 한 사람 한 사람과 이를 찾아낸 김지수 기자의 눈썰미에 감탄하며 책을 읽고 나서의 '의젓함'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한 멤버가 입을 열었다.
결국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의젓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다른 한 멤버도 '브랜드 파워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때 14인의 의젓한 사람들만 면밀히 뜯어보고 있던 내 돋보기적인 시야가 확 열리는 느낌이었다. 책의 내용과 주제는 물론이고, 인터뷰를 한 모두가 각자만의 독특한 의젓함으로 세상을 살아내 온, 살아나가고 있는 이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내가 가져갈 '의젓함'은 그들 중 한 명이 가진 '의젓함'은 아니다. 아니 가져갈 수가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젓함은 그들의 삶에서 나온 것이고, 나는 그 삶을 그대로 살 수도, 그렇게 살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나만의 의젓함을 찾아가는 노하우가 무엇일까 고민하던 차에 플뢰르 펠르랭의 "제 내면은 다양한 허들의 칵테일입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다. 생후 6개월 만에 프랑스로 입양을 가서 프랑스인 부모 밑에서 자란 플뢰르는 어린 시절 스스로를 백인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나라 간의 이동, 인종 간의 이동, 계층 간의 이동...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면 몰랐을 일들"을 겪고 넘으면서 그녀는 자신을 만들어냈다. 자신에 대한 의심과 소외감으로 자칫 자신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들 속에서 그녀는 어느 곳에 속하지 않고도 나로 설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의젓함의 시작은 이렇게 '나를 아는 것'이 아닐까?
이제 나를 들여다보자. 나는 어떤 칵테일인가? 1970년대에 태어나 다소 보수적이지만 빠르게 변화해 온 20세기의 끝자락을 한국에서 보내고 20대가 되었다. 그리고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하며 한국 사회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겪은 나의 20대,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미디어는 물론 사회 전반 트렌드가 급격히 변화하는 동안 그 최전방에서 디지털 전반과 소셜미디어 마케팅에 몸담으며 나의 30대는 그렇게 지나갔다. 40대가 되면서는 맡아야 하는 일도 책임도 늘어났지만, 승승장구하며 올라간 끝에는 무엇을 위해 이렇듯 열심히 달리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만이 남았다. 그래서 2021년 겨울부터는 그 답을 찾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더운 여름은 중부 프랑스의 숲 속으로, 추운 겨울은 남부 스페인의 바닷가로 떠났다. 자연을 벗 삼아, 좋은 사람들의 온기에 둘러싸여 삶을 누렸다. 함께 책을 읽고, 글로 소통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계속 찾아왔다.
40대를 지나, 50이라는 숫자를 바라보는 나는 안정적인 유년 시절과 학창 생활, 나름 부족할 것 없는 공부와 경험, 직장 생활을 거쳐왔기에 새로운 도전과 변화보다는 '안정'과 '안주'에 익숙하다. 하지만 지난 5년간의 나를 보면 이미 내가 가진 것과 아는 것들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해 왔고,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책으로 들어가는 길도 여러 경로가 있으며, 그 안팎에서 수많은 나를 -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서처럼 - 만나는 경험도 계속해 왔다. 그래서 내 칵테일은 가라앉지 않게 '흔들어 마셔야'한다. 계속 가라앉는 침전물들을 위로 떠올려 함께 마셔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듯, 인생을 꽉 채워 살기 위해서 나는 흔들림(자극)이 필요한 사람이다.
플뢰르의 칵테일 이야기 외에도 책 속의 의젓한 사람들은 자아도취하지 않고(가수 양희경), 누가 바깥에서 나를 인정하고 안 하고, 성공하고 안 하고가 중요하지 않고(작곡가 진은숙),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만 기억하고(노년 내과의사 가마타 미노루), '나다움의 규칙'을 따르며(경제학자 러셀 로버츠), '내가 즐거운가?'에 집중하고(애니 듀크) 있었다. 그들이 의젓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에게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완벽하고 훌륭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내 것이 아닐 수는 없도록.
당신 인생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습니다.
부고 전문기자 제임스 R. 해거티는 이러한 이유로 '나의 부고는 내가 직접 쓰라'라고 말한다. 나의 치욕도 영광도 내가 정의하는 것이기에. 어쩌면 죽음 뒤에 남는 것은 몇 점짜리 삶을 살았는지 성적표가 아니라, 나의 행동과 경험이 만들어낸 한 줄의 부고 기사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의젓해질 수 있을 것이다.
추신 >> 나의 부고
[ 표지 사진: Unsplash의 Andreas Weilgun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