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vo to My Life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모두를 위해 건배!

by GALAXY IN EUROPE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움직이는데

임산부 배려석 안내 방송이 나온다.

'아, 나는 이제 해당사항이 없다' 싶었다.

만 48세, 어느덧 완경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image.png 사진: Unsplash의 Álvaro CvG

결혼, 출산, 육아, …

특정 나이에 대부분 하는 일들을 나는 하지 않았다.

30대 초반까지는 일하느라 바빴고, 30대 후반 40대까지는 일이 더 바빠졌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버거운데 가족을 꾸리고 누군가를 책임지는 일은 피하고 싶은 선택지였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닌 게, 정신없이 바쁜 때, 팀원의 출산 휴가로 일을 더 껴안은 선배언니는 자기도 출산 휴가를 다녀오고 싶다고 실없는 농담을 하기도 했고, 비혼을 공표하는 '비혼식'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계획에 없던 둘째가 생겨 배가 한껏 불러서도 출산 휴가를 차일피일 미루며 팀에 혼자 남을 내 걱정을 하던 차장님도 있었다. 이후에도 직장동료, 친구, 친척들 하나둘씩 식을 올렸는데, 결혼식에 갈 때마다 물어오는 '좋은 소식'에 어느 순간 결혼식 참석을 꺼리게 됐다. 황금 같은 내 주말을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이의 “이제는 가야지?”, “갔다가 돌아와도 가는 게 좋아.”, “좋은 소식은 언제 들려줄 건데?” 하는 식의 덕담 아닌 덕담에 싫은 내색 하나 하지 못하고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거기다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회사에서 내 직급이 오르면서 3만 원, 5만 원은 부족한 듯했다. 거기다 이어지는 집들이, 돌잔치에 점점 본전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품앗이 문화라지만, 결혼을 안 했으니 신혼집도 없고, 아이는 더더구나 없다. 오죽하면 복대 얘기를 한 이까지 있었을까? 언니도 결혼을 하고 조카들이 커가면서 생일부터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설날 세뱃돈은 물론 입학, 졸업식까지… 대소사가 정말 많구나 싶었다. 기브 앤 테이크라기엔 너무 밑지는 장사 같았다.

image.png 사진: Unsplash의 Brett Garwood

결국 지금까지 결혼도, 신혼집도, 아이도 없다. 지금 결혼식을 올린다고 해도, 과연 내가 부조금을 냈던 이들이 올까 싶을 정도로 세월이 제법 흘렀다. 잊지 않고 와주시는 분들은 있겠지만, 내가 기억하고 청첩장을 모두에게 돌릴 수 있을까 싶다. 기록을 해뒀으면 좋았을까?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며 혼자 실소를 흘렸다.


지금은 많은 이들 - 결혼을 권했던 분들 중에서도 - 네가 마음 편하고, 몸 편하고 최고다라고 말씀해 주신다. 이 또한 내 삶을 왜 당신들이 평가하는지 따져 물을 수 있겠지만,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더 이상 날카롭지 않다. 그저 세상엔 오지랖 넓은 이들이 많구나 하며 넘길 뿐이다. 편한 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내가 최고인지, 남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대로의 삶을 살고 있을 뿐.




조카들이 어렸을 때, 주말 오후 언니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뭐 해?"

"소파에 니 형부랑 누워 TV 보고 있지."

하는데 우다다다다 뛰어가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고, 조카들의 함성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이어서 언니가 말리고, 형부가 일어서고, 뭔지 모르지만 난리법석이 한차례 지났다.

surface-TFH8e9Lmp0s-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Surface

"너는 뭐 하는데?"

"나? 친구들이랑 덕수궁 야외 클래식 연주회 왔는데, 돌바닥에 앉기도 불편하고, 지루해서 집에 가려고."

"오, 부럽다! 연주회는커녕 영화 보러 간지도 언젠지 모르겠는데..."

전화를 끊고, 나는 언니가 부러웠다. 친구들보다 먼저 일어서도 '잘 가' 한 마디면 끝나는데, 언니에겐 언니 손이 꼭 필요한 사람이 세 사람이나 있으니. 세상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 하지만 그에 따라오는 노고와 책임, 인내심은 상상 이상이리라.


누구에게나 각자의 몫이 있고, 각자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있는 법이다. 시끌벅적한 가족의 중심에서 고군분투하는 언니도, 덕수궁 돌바닥에서 미련 없이 훌쩍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나도 그저 각자의 정답을 써 내려가는 중일 테니까. 기브 앤 테이크의 세계에서 나는 영원한 '마이너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홀가분한 주말 오후와 온전한 나의 자유를 샀다고 치면, 이 또한 그리 밑지는 장사만은 아닌 것 같다.


Bravo to my life.
image.png 사진: Unsplash의 Al Elmes


[ 표지 사진: UnsplashDanie Franc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