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0원짜리 카페 모카를 마시며

1시간의 노동과 맞바꾼 묵직한 한 잔의 의미

by GALAXY IN EUROPE

7,100원.

포스기 화면에 찍힌 숫자를 보고 속으로 잠시 멈칫했지만, 이미 계산 중인 상황에서 발길을 돌릴 수는 없었다. 조용히 카드를 내밀고 받아 든 카페모카는 비싼 가격을 변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묵직한 잔을 들고 자리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새삼 타격감이 크게 다가온다. 오늘 내가 일하러 와서 받는 돈이 최저시급인데, 이 커피 한 잔이 내 1시간의 노동 가치와 고스란히 맞먹는 셈이니까.

사진: Unsplash의 SumUp



내 돈을 내고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게 무려 두 달 만이다. 문득 격세지감이 밀려왔다. 마케팅 기획자로 치열하게 굴러가던 지난 18년의 시간 동안, 카페는 내게 숨을 쉬듯 당연한 공간이었다. 하루에 세 번씩, 그것도 매일같이 카페 문턱을 넘나들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업무와 사람 속에서 습관처럼 카드로 긁어대던 커피 한 잔은 일종의 피로회복제이자, 내가 세상 속에서 꽤 쓸모 있고 바쁘게 돌아가는 사람이라는 작은 증명서이기도 했다.


가끔은 그때의 그 역동성과 정신없는 바쁨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여유와 느림 속으로 가만히 침잠할 때면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억지로 상황과 싸우기보다 그저 물결에 부유하듯 나를 맡기는 지금의 리듬에 꽤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진: Unsplash의 Mario Ibrahimi

거대한 7,100원짜리 잔을 어루만지며 나는 소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어쩌면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나의 무가치함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고, 세상에 내 쓸모를 인정받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주 성숙한 방식은 아닐지언정, 무조건 얄팍하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정당한 방법으로 에너지를 들여 수입을 발생시키고, 나를 위한 소비를 통해 자기 효능감을 확인하는 것은 팍팍한 사회를 살아가는 나름의 건강한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우리가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그 행위에 주도권을 뺏기는 순간이다. 소비에 맹목적이 되어 할부를 밥 먹듯 하고, 신용카드 대금으로 월급의 대부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삶. 오직 카드값을 메우기 위해 꾸역꾸역 회사를 다닌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결국 삶을 그르치게 만든다. 소비가 나를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 될 때, 삶은 너무나 쉽게 방향타를 잃는다.


거품이 듬뿍 올라간 카페모카를 한 모금 마신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맛이 입안을 묵직하게 채운다. 쫓기듯 마시던 하루 세 잔의 커피가 아니라, 두 달 만에 온전히 나에게 허락한 7,100원어치의 시간. 이 달콤함은 한 시간의 정직한 노동을 충분히 위로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오늘의 이 담담한 소비를 기꺼이 긍정해 본다.

사진: Unsplash의 Nathan Duml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