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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LAXY IN EUROPE Dec 25. 2022

누군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

[뮤직] 들꽃놀이(Wild Flower) - RM

RM의 앨범이 나온 날 바로 듣고 가장 꽂힌 곡이 바로 타이틀곡인 '들꽃놀이'였습니다. 피처링한 조유진의 보컬이 제 귀를 사로잡아버렸죠. 제 노래방 최애곡들인 '낭만고양이', '오리 날다'를 부른 밴드 체리필터의 보컬이 그녀란 걸 알고는 너무 좋아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역시 최애를 알아봤다며 혼자 뿌듯해(?)했죠.


한 곡에 꽂히면 그 노래만 계속 듣습니다. 그러다 보면 가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점점 더 교감하며 듣게 되는데요. 곡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는 별개로 제가 '들꽃놀이'를 듣고 느낀 점들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이름 없는 들꽃

'들꽃'은 장미나 튤립처럼 이름 있는 꽃이 아니라 길가와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이름 모를 꽃들을 총칭합니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알지 못하거나 듣고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똑같이 아름다운 꽃이지만 기억되지 못하면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적은 걸까요?

Photo by Joel Holland on Unsplash

그럼 들꽃들 중에 하나를 골라 이름을 붙이고, 정원에 심어 키워 또 다른 장미와 튤립으로 세상에 내어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신비한 보랏빛의 가늘고 긴 꽃잎을 가진 꽃, '아민큘러스'를 예로 들어봅시다. (이 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제가 방금 만들어낸 꽃입니다.) 흔치 않은 컬러와 모양으로 이목을 끌게 된 아민큘러스는 부띠끄 호텔이나 카페, 레스토랑에서 많이 꽂히고, 트렌드를 따르는 신부들이 결혼식 부케에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아민큘러스는 다른 이런저런 꽃들과 함께 쓰면, 또는 모양이 특이하니까 단독으로 쓰면 좋다는 전문가의 의견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인스타그램에서도 사진이 순식간에 퍼져나가요. 자 이제 누구나 '아민큘러스'를 알게 되었으니 아민큘러스는 다른 이름 없는 들꽃들과는 다른 가치 있는 꽃이 된 걸까요? 아니면 이제 너무 흔해져 버려서 그 매력이 덜해진 걸까요?


들꽃의 이름표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실제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꽃의 색도 모양도 어느 하나 변한 것은 없어요. 명왕성이 행성이든 아니든 명왕성의 질량과 크기, 구성요소와 공전주기는 하나도 변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로 인식상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너무도 유명한 김춘수의 <꽃>의 시구처럼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꽃> 김춘수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이름을 부르는 사람뿐만 아니라 불리는 사람에게도 일어납니다. 나 자신과 내가 아닌 것을 분류하게 되고,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은지를 쉴 새 없이 저울질하며 '나인 것'에 대해 스스로 정의 내리려 애쓰게 되죠. 이때 나의 판단과 생각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에 많이 의존하게 됩니다. 나의 주관적인 느낌은 틀릴 수 있지만 타자의 객관적인 관점과 다수의 의견이 더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내가 들꽃이라면?

이름 없는 들꽃은 이름 붙여지기를 끊임없이 갈망할 것 같습니다. 나 자신과 이 세상에 의미 있게 존재하고 싶기 때문이죠. 이름 붙여지는 순간 나의 역할이 주어지고,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내가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에 따라서 나의 위치가 주어지고 그 속에 나래비 세워집니다. 그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검증받아서 그 위치에 더욱 공고히 서고 싶은 것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태어난 수많은 우리들의 바람이 아닐까 싶은데요.

Photo by Josh Eckstein on Unsplash

하지만 나를 어떤 것이라 명명하고 정의 내리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그것이 아닌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나를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려면 뭔가 부족한 듯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려니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고, '완벽주의자'라고 말하니 필요 이상으로 까탈스러운 사람같이 느껴집니다. 저는 '들꽃놀이' 속 "당신의 마음이 당신을 넘볼 때, 꿈이 나를 집어삼킬 때, 내가 내가 아닐 때"라는 가사가 바로 이런 나 자신을 표현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나를 어떤 위치에 세우고 정의 내리려는 노력이 오히려 내가 누군지 나를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죠.


무엇이 내가 아닌가

그래서 에크하르트 톨레는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에서 이런 말을 했나 봅니다.

말이나 분류표로 세상을 덮지 않을 때 잃어버린 감각이 삶에 되돌아온다. 삶에 깊이가 되돌아온다. 자기 자신이라 믿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무엇이 내가 아닌가'를 아는 순간 '나는 누구인가'가 저절로 나타난다. - 에크하르트 톨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2. 에고, 인류의 현재 상태 내 안의 인류로부터의 자유

올해 초 이 책을 읽고 가장 마음에 남았던 문장인데요. "자기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사람이건 실패한 사람이건 - 다시 한번 마음에 담게 되었습니다.


불꽃을 동경하던 어린 소년이 높이 날아올랐지만, 이젠 그 높은 곳에서 풍선을 놓지도 못하고 지금 난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모습이 상상이 되시나요? 그 소년의 모습에서 나를 봅니다. 그리고 소년의 머리 위로 터지는 폭죽(flowerwork)은 그가 이룬 것과 가진 것이 다시 이름 없음의 상태로 리셋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가장 화려하게 터지고 나서 다시 무(無)로 돌아가 그 자리에서 가볍게 다시 시작하는 거죠.

들꽃놀이(Wild Flower) Official M/V 중에서

내가 이룬 것, 내가 해낸 것, 내가 가진 것은 그 순간의 나였던 것일 뿐 내가 아닙니다. 그것에 매달려 과거에 살수록 우리는 '멍에'에 갇힌 마소와 다름이 없습니다.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지금 이 순간의 나로 현존할 것을 일깨워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들꽃놀이(Wild Flower) Official M/V

 들꽃놀이 전체 가사

Flower field, that's where I'm at (where I'm at)
Open land, that's where I'm at (where I'm at)
No name, that's what I have (what I have)
No shame, I'm on my grave, yuh

두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때 (땅에 닿지 않을 때)
당신의 마음이 당신을 넘볼 때 (당신을 넘볼 때)
꿈이 나를 집어삼킬 때, 내가 내가 아닐 때
그 모든 때, yeah

불꽃을 나는 동경했었네
그저 화려하게 지고 싶었네
시작의 전부터 나 상상했었지
끝엔 웃으며 박수 쳐 줄 수 있길

나 소원했었네 믿었던 게 다 멀어지던 때
이 모든 명예가 이젠 멍에가 됐을 때
이 욕심을 제발 거둬가소서
어떤 일이 있어도 오 나를 나로 하게 하소서

Oh, every day and every night (yeah)
Persisting pain and criminal mind (yeah)
내 심장소리에 잠 못 들던 밤
창밖에 걸린 청승맞은 초승달

I do wish me a lovely night (yah)
내 분수보다 비대해진 life (yah)
저기 날아오르는 풍선을 애써 쥐고
따져 물어 대체 "지금 넌 어디에?"
Where you go, where's your soul, yo,

where's your dream?

저 하늘에 흩어질래 (yeah)
Light a flower, flowerwork, flower, flowerwork
저 하늘에 눈부시게, eh, eh
Light a flower, flowerwork, flower, flowerwork

그 어디까지가 내 마지막일까?
전부 진저리 나, 하나 열까지 다
이 지긋지긋한 가면은 언제 벗겨질까?
Yeah, me no hero, me no villain, 아무것도 아닌 나

공회전은 반복돼, 기억들은 난폭해
난 누워 들판 속에 시선을 던져 하늘 위에
뭘 원했었던 건지 이제 기억이 안 나
얻었다 믿었던 모든 행복은 겨우 찰나

Yeah, I been going no matter what's in front,

그게 뭐가 됐건
새벽의 옷자락을 붙잡고 뭔가 토해내던 기억
목소리만 큰 자들의 사회, 난 여전히 침묵을 말해
이건 방백, 완숙한 돛단배 모든 오해 편견들에 닿게

반갑지 않아 너의 헹가래
내 두 발이 여기 땅 위에 (aye)
이름도 없는 꽃들과 함께
다신 별에 갈 수 없어, I can't

발밑으로 I just go
목적 없는 목적지로
슬픈 줄도 모르고
그림자마저 친구로, I'll be gone

저 하늘에 흩어질래 (yeah)
Light a flower, flowerwork, flower, flowerwork
저 하늘에 눈부시게, eh, eh
Light a flower, flowerwork, flower, flowerwork

문득 멈춰보니 찬란한 맨발
원래 내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 (that's right)
And don't tell me like you gotta be someone
난 절대 그들처럼 될 수 없으니

그래, 내 시작은 시
여태껏 날 지켜온 단 하나의 힘과 dream

(light a flower)
타는 불꽃에서 들꽃으로, 소년에서 영원으로
나 이 황량한 들에 남으리
아, 언젠가 나 되돌아가리

저 하늘에 흩어질래
Light a flower, flowerwork, flower, flowerwork
저 하늘에 눈부시게, eh, eh
Light a flower, flowerwork, flower, flowerwork

Flower field, that's where I'm at (where I'm at)
Open land, that's where I'm at (light a flower)
No name, that's what I have (what I have)
No shame, I'm on my grave (light a flower)

두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때
당신의 마음이 당신을 넘볼 때 (light a flower)
꿈이 나를 집어삼킬 때, 내가 내가 아닌 때
그 모든 때 yeah (la-l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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