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방학은 안녕한가요?

퇴사자의 일상 회복기

by 그레이스
어린이를 존중한다는 의지가 명확히 표현되는 순간,
어른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딸아이의 여름 방학이 역대급으로 길다.

학교 일정 상 개학이 아직 2주가 넘게 남아있는 상황이다.

좋은데... 분명히 좋은데... 헛웃음이 나온다.


아침은 8시가 넘어 느지막이 시작한다.

아이 방학을 핑계로 나도 덩달아 늦장을 부린다. 9시쯤 첫끼를 먹고 나는 일을 하고 아이는 그림을 그리거나 학원 숙제를 한다.

조용한듯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하루가 이어진다.


아이는 존재감이 매우 확실하다.

놀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옆에 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내 에너지가 이미 반은 사라지니 참 신기하다.


사실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조잘조잘 본인 행동 하나하나를 말한다.

그림을 하나 그리고 내 눈앞에 바짝 들이밀고 어떠냐고 묻는다.

잘했네.라고 하니 구체적으로 어떤지 꼬치꼬치 질문을 시작한다.

이불 속에서 작품활동 중


휴대폰을 보면서 혼자 조금만 웃어도 저 멀리 있던 아이는 말벌 아저씨처럼 뛰어와 뭔데, 뭔데 하며 옆에 붙는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왔던 말벌 아저씨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검색>


메타버스 게임에 재미를 붙인 아이가 종일 이것 좀 같이 하자고 한다.

내가 하면 아바타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고 산으로 가버려서 화만 나는 게임이다.

아이는 노력을 안 해서라며 옆에서 본인이 하는 걸 보기만이라도 하란다.

(미안... 엄마는 노력하고 싶지 않다..)

매번 귀찮은 티를 역력히 내는 엄마에게 서운할 법도 한데 아이는 늘 리셋이다.

또 웃으며 내 곁으로 다가온다.




휴가라 모처럼 한갓진 아침.

아이가 좋아하는 요즘 노래를 틀어놓고 각자 할 일을 하는 중이다.

(평소에는 시끄럽다고 잘 듣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아이는 '어린이'라는 이유로 취향을 존중받지 못하는 일이 많다.

어린이여서 억울한 일도 많이 겪을 테고 아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의견을 묵살당하는 일도 많겠지.

흥얼흥얼 거리며 뉴진스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기분 좋은 아이의 얼굴을 보니 괜스레 미안해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부모에게는 다른 것보다 내 아이를 '좋은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의무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존중할 줄 알고 존중받는 좋은 어른이 되려면

먼저 '존중받는 어린이'가 되어야겠지.


남은 방학, 아이의 시간을 존중하는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

(에너지가 쭉쭉 내려가는 소리가 지금도 들리지만)

할 일을 제대로 해라, 물건 제자리에 놔라, 유튜브 그만 봐라, 엄마 힘들다 라고

일방적인 조바심을 내며 잔소리를 하기 전에 싫지만 게임도 같이 해보고

아이 취향의 노래도 실컷 같이 듣는 그런 하루를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

나 또한 아이에게 본인의 생각을 외면하지 않는 '좋은 어른'이고 싶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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