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아이가 모범생일 줄 알았다.
퇴사자의 일상 회복기
딸아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나갔다. 저 멀리서 아이가 걸어온다.
붉게 상기된, 뭔가 흥미진진한 표정의 얼굴.
평소보다 10배 정도 높아진 텐션과 땀에 완전히 젖은 머리카락... 아는 친구를 만나면 목청껏 인사를 한다. 영락없는 초딩 그 자체다.
여기에 학교 앞 분식집에서 산 슬러시까지 들고 있으면.. 23년 여름 버전 초딩 완성.
(가끔은 축구공이 든 보따리? 같은 것도 들고 다닌다.)
나와는 다르게 활동적인 성향을 가진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 아이는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야무지고, 차분하게-그냥 뭔가 '모범생'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가진-그런 아이로 클 줄 알았다.
그런데.. 퇴사 후 24시간을 붙어있으며 마주한 아이는 '얘가 내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내 생각과는 영 딴판이다.
본인은 MBTI 가 극 'E'라 책상에 앉아 진득하니 진지한 글을 읽는 건 적성이 아니란다.
그래서 국어가 최고로 싫단다.
(원래 초등학교 때 국어가 가장 쉬운 과목 아니었나..)
하루종일 뛰어놀고도 집에 와서 덜 놀았다고 한다. 심심하다고 우렁차게 노래도 부르고 틈틈이 아이돌 춤도 춘다. 혼자 앉아서 책이나 보는 게 제일 속 편했던 나로서는 참 신기한 일이다.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아이를 보고 있으면
왜 이러지? 가 꼬리를 문다.
왜 애가 계속 나가서 놀려고 하지?
왜 애가 책을 안 읽지?
왜 애가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 더운데 뛰고 있는 거지? 등등
매일 이해는 안 되지만 '인정'해야 하는 일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제는 그래도 알아서 잘 챙기겠거니 하고 신경 쓰지 않았던 학교 필통을 오랜만에 꺼냈다가 경악했다.
뚜껑이 없어서 잉크가 다 마른 형광펜..
고장 난 볼펜, 먼지가 달라붙어 안 지워지게 생긴 지우개.. 그리고 알 수 없는 쓰레기들.
쓸 수 있는 건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몽당연필하나다. 나의 어이없는 표정을 보고 아이는 쑥스럽게 웃는다. 이래 봬도 잘 써진다고 하며 몽당연필을 집어 쓰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다른 가방에서 형광펜 뚜껑을 꺼내며 이게 여기 있었네 한다. 각 잡힌 필통이 자랑이던 내겐 이 또한 생경한 광경이다.
아이 덕분에 매일 웃는다.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딸이 맞다.
나와는 참 많이 다르지만 사실 나보다
좋은 점을 훨씬 많이 가지고 있다.
외부의 영향을 잘 받지 않고 주눅 들지 않는다. 감정의 기복이 크게 없고 변덕도 없다.
늘 행복하고 즐거운 아이다.
남에 의해 쉽게 마음을 다치기도 하고
새 학기가 되면 친구를 사귀느라 애를 먹었던 나의 어린 시절과는 다른 내 아이의 모습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이제는 아이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나왔다.
나와 비슷한 모습을 굳이 찾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은 옳거나 틀린 것이 아니니까.
그래도 엄마인지라 간헐적으로 걱정의 시기는 찾아온다. 오늘은 갑자기 책을 잘 안 읽는 아이가 걱정스러워 친구와 이런저런 교육 얘기를 나눴다. 한참 대화를 주고받다가 결국 매번 같은 멘트로 마무리한다.
'됐고, 누가 누굴 걱정하냐. 우리나 잘하자. 각자 할 일 하면서 잘 살면 그걸로 된 거지'
맞다. 오늘도 붉게 상기된 얼굴의 초딩은
뛰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본인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나는 집에서 내 식대로 나의 할 일을 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시간을 잘 보내고 있으니 그걸로 된 거다.
지금 아이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아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아이의 삶을 아이에게 맡기고 간섭하지 않기.
이것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