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의 순간

책장을 넘기는 시간에 대하여

by 그레이스

1. 유료 독서 플랫폼을 구독하고 있지만 사실은 모바일이나 패드로 책을 읽는 것이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집중하기도 어렵고 가장 중요한 '읽는 순간'이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아 보다 말다 한 책이 꽤 여럿이다.


2.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나 싶어 억지로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끝까지 읽으려 애써본 적도 있다.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종이책이라는 생각은 구시대적인 것 같았다.


3.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책을 좋아하는 것도 맞지만, 그 시간과 순간을 더 좋아하더라. 책을 고르고, 직접 값을 치르고, 시간을 내어 책장을 넘기는 수고를 하는 그 시간과 순간을. 그것이 곧 좋아하는 일에 대한 정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순간에 정성을 다하는 일, 얼마나 귀한 일인가.


4. 정성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에선 다시 앞으로 간다. 마음에 드는 문장에는 밑줄을 긋고 인덱스로 표시를 한다. 똑같은 10분이라도, 질적으로 다른 시간을 보낸 충족감에 기뻐진다. 가끔은 문구점에 들러 예쁜 색깔 인덱스와 밑줄 긋기 좋은 연필을 고르며 행복한 순간을 준비한다.


5. 그래서 나는 좀 구시대적인 사람으로 남을지라도,

아무래도 책은 책장을 넘기는 맛으로 읽는다.

아무래도 생각은 마음에 드는 노트를 마련해서 꾹꾹 눌러쓰는 것이 좋다.

일부러 시간을 내고, 일부러 공간을 찾고, 일부러 수고를 더하는 일을 당분간은 계속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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