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엄마의 샤머니즘

알다가도 모를 사람, 엄마.

by 꿈꾸는 엄마


엄마

엄마는 입원실 제일 안쪽, 창가 쪽 아래 배드로 배정받았다.

오래된 병원 입원실의 창틀은 지저분하고 허술해 보였다. 밤새 찬 바람을 감당하지 못할 것처럼 보여 나는 엄마에게 다른 자리로 옮겨달라고 말하자고 했지만 엄마는 창가 앞이라 오히려 좋다고 하셨다.

엄마 말을 따르길 잘했다는 것을 머지않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입원실 안까지 올 순 없으니, 병원 후문을 바라보는 창가에서 엄마가 얼굴을 내밀면 창가 아래 우리 아이 셋이 나란히 할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 수 있었다.

여직 병원 후문 도로를 지날 때면 그날을 추억을 아이들이 먼저 입에 올리니, 그것이 또 뭉클한 추억이 되었다.

엄마는 본능적으로 삶의 어느 부분은 반드시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셨다.




엄마 옆으로 난 침대에 입원하신 분은 엄마가 자주 다니시는 재래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는 분이시란다.

물론 엄마도 나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자주 가는 시장 안에서 장사를 한다는 이유와 더불어 같은 병실, 거기다 같은 시기에 바로 옆 침대에 나란히 입원을 하고 있다는 이유까지 덧붙여졌으니 엄마에겐 순식간에 의미 있는 인연이 되어버렸다.

공간으로 맺은 연대가 때론 혁명도 일으키기도 하니 비웃일 일은 아니다.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사는 게 변변치가 않아. 면회도 안 오고 전화도 한 번 없다데. “

엄마는 병실 안 사람들의 사정을 나를 만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브리핑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에 이토록 열정적인 엄마가 귀엽기도 가엽기도 했다.

어릴 땐, 엄마의 그런 호기심이 성가시고 창피한 일이었지만 이쯤 나이 먹고 나니 더할 수 없이 애틋한 일이다.

엄마의 '사람에 대한 관심의 발로'는 순전히 엄마만의 욕심에 의식적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이 대한 무관심은 모자람이 없는 자의 특권이라 혼자 삶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타인의 사정에 무던할 수가 없는 법이다.

심지어 그것이 죽지 않고 살아갈 삶의 의미가 되는 사람도 있으니깐. 하물며 타인의 사정이 절망과 동시에 위안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에게 그 보다 앞서 궁극적으로는 타임의 사정을 헤아리는 것의 대가가 분명 당신의 가족들에게 돌아오고 말 것이라는 강한 신앙심 같은 것이 엄마에겐 있었다.




집 안 정리를 하고 빌린 책을 반납하고 나니, 엄마 병실을 찾은 시각이 평소보다 늦어졌다.

점심이 다 되어 도착한 입원실 분위기가 어제와 달리 조금 허술하게 느껴졌다.

엄마의 증상이 조금씩 호전되어 퇴원을 꿈꿔 볼 수 있을 정도쯤 되었을 때,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다른 환자들도 하루 걸러 한 분씩 퇴원을 하기 시작했다.

침대보가 깔끔하게 벗겨져 색 바랜 군청색이 그대로 드러난 침대는 남아 있는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괜한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

결국은 마지막까지 남은 자가 이 불안을 모두 감당해야 할 것만 같아 조급한 마음이 생겼다.


엄마 바로 옆에 입원하신 '채소가게 사장님'도 내일 퇴원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왜인지 채소가게 사장님의 얼굴이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나중에 엄마에게 전해 듣기로는 병원비가 없어서 퇴원 수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병원비를 할부로 내면 안 되겠냐고 병원 측에 사정을 했지만 먹힐 일 만무하다.

나는 딱 남의 일만큼만 안타까워했다.


다음날 다시 엄마를 찾았을 땐, '채소 가게 사장님'은 어제의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밝은 표정으로 병실 안의 다른 환자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계셨다.

특히 엄마에겐 더 살갑게 퇴원하고 당신의 가게로 놀러 오라느니, 엄마가 운영 중인 농장에 한 번 들려 닭 한 마리 사 가야겠다느니 하며 마치 한참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요란하게 인사를 나누고 작은 짐 가방 하나 가볍게 들고 병실을 떠났다.


"입원비를 어디서 구했나 보네?"

"... 내가 빌려줬다."

"뭐?!"


엄마는 소리를 낮추라는 손짓을 하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딴청을 피웠다.

"왜? 왜, 엄마가 병원비를 빌려줘? 저 사람을 언제 봤다고?"

"시장 가면 언제든 볼 수 있는데 뭘."

"시장에 없으면?"

"없긴 왜 없어. 있지."


나는 엄마의 지나친 오지랖에 화가 났다.

몇 십만 원이 되는 그 큰돈을 스치든 본 사람에게 덥석 빌려줬다는 것에 짜증이 났다.

'그 돈 있으면 나나 주지!'라고 말할 뻔하다 말았다.

너무 진심이라 속이 쓰렸다.


"안 갚으면 어쩌려고?!"

"안 갚으면 어쩔 수 없지."

엄마의 태평한 소리에 그동안 공드린 속 깊은 딸 연기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잠시 뒤 엄마는 무심히 한 마디 더 내뱉었다.


"나 죽으면, 그 복이 다 너희들에게 가겠지."


엄마의 샤머니즘은 언제가 그렇게 무모할 정도로 대범했다.

영적인 존재를 대부분 삐딱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나에겐 그건 터무니없고, 무지하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스스로 샤먼적인 존재로 인식하기도 하는 엄마를 설득할 순 없었다. 아니 사실 설득할 생각도 없었다.

내가 손해 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혜택은 대부분 내가 받게 될 것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것은 결국 내 아이들에게 돌아갈 테니 엄마는 두 세대를 거친 복채를 미리 지불한 셈이다.




며칠 뒤 통원 진료를 조건으로 엄마도 퇴원을 했다.

물론 엄마는 성실한 환자가 아니라 퇴원 시 받은 약을 다 먹고 나서도 외래 진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엄마는 자신의 의지대로 마음껏 뒷 산을 누비고, 직접 기르고 있는 오이며 고추며 마늘이며 양파를 바로 따와 대충 씻어 와그작 베어 물면 그게 가장 훌륭한 약이고 치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당신 병은 완치가 없으니 이 정도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은 것이라고 자체 진단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참이 지난 뒤, 빌려 준 돈을 받았느냐고 내가 엄마에게 물었다.

다행히 갚았다고 했다.

하지만 더 한 참 뒤에 알게 된 사실은, 채소 가게 사장님은 돈을 갚고 이내 100만 원을 다시 빌려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은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받지 못하고 있다.

엄마의 부고를 알릴 만큼 친분이 있는 사람은 아니기에 채소가게 사장님은 엄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엄마의 장례가 끝난 후, 삼촌이 몇 번이나 채소가게를 찾아갔지만 그분은 매번 뻔뻔하리만큼 어이없는 이유를 대면 채무 이행 날짜를 미뤘다.

결국 돈을 받아야 할 사람이 지쳐 나가떨어져 갈 판이었다.

약속된 날에 찾아가면 여지없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날짜를 미뤘고, 나중엔 채소가게 사장님이 괘씸해진 삼촌은 다 시들어 빠진 시금치니 파프리카를 헐값에 들고 오거나 썩어 빠진 단감 한 상자를 이자라며 들고 와 내게 주었다.


마음 같아선 우락부락한 얼굴로 달려가 하루 장사 깽판 쳐 볼까 싶다가도 그야말로 마음에서 그친다.

괜히 협박하여 채소가게 사장님을 비루한 입장으로 만들어 살아생전 엄마의 인심에 먹칠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모르지, 내 삶이 비루해져 체면이고 뭐고 없이 달려가 그 돈 당장 내어 달라고 협박을 할 날이 올 지도.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살아갈 우리를 위해 미리 준비한 액땜 방지 굿값이라 생각하며 우리의 평안과 안위를 기대해보려고 한다.


그래도 되지, 엄마?


엄마가 그러라고 할지, 당장 가서 받아오라고 할지... 사실 여전히 모르겠다.

알다가도 모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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