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실 분위기는 하루하루 다르다.
그 변화가 획기적이고 확실하지 않을 뿐이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마음이든 몸이든, 어딘가 아픈 사람은 약간의 변화에도 모든 살결이 화끈거린다.
어제와 다른 표정, 말투, 행동을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곳이 바로 병원 안이다.
간호사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감동과 상처가 수시로 대체되었다.
하루 두 차례 회진을 도는 담당 의사의 표정, 내뱉는 말의 조사 하나에도 공상에 가까운 의미를 부여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밤잠을 설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병원 안, 입원실인 것이다.
엄마 발아래 배드, 언제나 하얀 커튼이 드리워져있던 그 자리는 어느 날부터 커튼이 젖혀져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하지만 미간 사이를 살짝 찌푸리고 다니는 배드 주인의 인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쿨함과 신경증이 수시로 바뀌어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 예민하게 만드는, 한마디로 함께하기 피곤한 스타일의 환자였다.
그러나 엄마를 비롯해 함께 입원한 어르신들 모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고난의 베타랑 같은 풍채들이라 어떤 스타일의 사람이건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재주가 있었다.
괜히 몸이 움츠려드는 것은 나뿐인 듯했다.
엄마는 그런 내 속도 모르고, 엄마 먹으라고 깎아 놓은 과일을 그 신경증 환자분께 갖다 드리라고 했다.
그럼 나는 애써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과일을 가져다 드렸고, 그럼 그 신경증 환자분은 "아니, 됐어요. 나는 사과 별로 안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역시, 내 예상대로 피곤한 스타일이다.
어딘가 약간은 꼬인 듯한 사람.
그날도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엄마와 함께 이야기 나누기 위한 준비물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손에 들고 병실로 들어갔다.
엄마 앞으로 걸어 들어와 엄마와 눈과 마주치는 순간, 그 '약간 꼬인 듯한 분'이 대뜸 나를 불러 세웠다.
"딸!"
"네?"
"딸, 이제 엄마 면회 오지 마요!"
"네?"
"엄마가 딸은 다 소용없다는데? 아들이 최고라고!"
아마도 내가 오기 전, 병실 안에 작은 수다의 꽃이 피었다 졌나 보다.
주제는 자식 이야기였을 테지.
그렇게 아들, 딸 이야기가 나왔을 테고 반은 자식 자랑 반은 자식 험담을 하다 '그래도 딸보단 아들이지' 라든가 '딸은 시집가면 그만이고, 아들이 있어야지.' 같은 이야기가 오고 갔을 것이다.
거기서 엄마가 한 마디 거들었을 테지. "그래도 아들이 하나는 있어야지."라고 말이다.
딸만 셋을 둔 당신의 딸을 두고 나온 말일 것이다.
엄마는 나와 오빠를 차별하며, 자라는 내내 나를 서럽게 하며 키우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기저에는 '아들, 아들' 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나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걸 또 마음에 상처랍시고 담아 놓고 수시로 원망하며 살던 나도 아니니, 그 말에 새삼 상처받을 것도 없었다.
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우리 엄마 원래 그래요."
엄마는 살짝 당황한 얼굴빛을 숨기지 못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내 대답에 용기를 얻은 듯
"뭐, 딸은 시집가면 그만이지. 아들이 있어야지." 라며 쐐기를 받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매일 면회 오는 건 딸인데 어머니 저러신다."
지지 않고 '약간 꼬인 듯한 분'은 한 마디 더 내뱉고는 칫솔에 치약을 짜서 화장실로 유유히 들어가 버리신다.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인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자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내 마음에 작은 감은(感恩)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는 은근히, 약간은 꼬여서 기어코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다 하고야 마는 스타일에 끌린다.
굳이 말해서 뭘 하나 싶어 답답할 정도로 입을 꾹 닫고 있는 나를 대신해 세상에 소리치는 사람들을 늘 동경해 왔다. 손 안 대고 코푸는 격이다.
조금 무안해하는 엄마를 보니 살짝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
그걸로 됐다. 나는 더 이상 말을 덧붙여 묻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문화 속에서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그리고 그 문화 속에서 가장 직격탄으로 피해를 입은, 그 시절 깡시골 바닷가 마을, 가난한 집 7남매 맏딸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나의 엄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던 아들이 그 아버지를 가장 생생하게 닮아버리는 클리셰이다.
생각하면 서글픈 일이다.
그러니 감히 내가 엄마에게 엄마의 가치관을 무지한 편견이라라든지 악습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충분히 내가 이해하고 넘길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어떤 계기로 인해 한 번씩 숨겨 둔 서운한 마음이 슬그머니 나오기도 한다.
엄마는 얼굴을 마주대고 세상 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생의 열을 올리다가도, 오빠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순식간으로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를 보는 듯한 가련한 표정으로 변하곤 했다.
"괜찮나?" 수화기 너머 오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오금 괜찮아졌다." 다 시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가 대답했다.
퇴원은 언제 하냐는 오빠의 물음에는 "의사는 좀 더 있으라니는데, 퇴원해야지..."
약간의 여지를 남겨 놓는 엄마의 어법에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다가도 한편으론 그런 엄마의 마음이 가여웠다. 남편에게 하지 못한 응석을 아들에게 하는 것일까.
남편 없는,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 하나뿐인 아들은 어떤 의미일까.
남편이자 애인이고 자식이며, 더 나아가서는 보호자가 되는 '하나뿐인 큰 아들'을 과연 누가 이길 수 있을까.
애당초 이기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엄마의 저런 매소드 연기를 바로 옆에서 보려니 어딘가 서러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입원실 입구 바로 앞에 입원해 계신 할머님 역시 딸과 간병인이 번걸아가며 간병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큰 아들 내외가 병문안을 와 병원 안이 어수선하게 붐볐다.
우르르 정승처럼 입원실 입구를 가로막고 서 자식들로 인해 병원 안으론 긴 그림자가 생겼다.
아들은 누워계신 할머님의 정정한 남편이라고 해도 별 의심하지 않을 만큼 나이 들어 보였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늙어 간다는 말의 실물을 직접 목도하자니 삶의 무게가 물성을 가지고 내 옆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어머니, 아무 걱정 말고 치료 잘 받으시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00 이한테 말하세요."
아들은 옆에 서 있는 여동생 어깨를 치며 말했다.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셨다.
"돈은 걱정하지 마시고요." 아들이 어머니의 손사래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채고 말을 덧붙였다.
아들은 10분 남짓 병실 안에 있다가 돌아가는 가는 길에 하얀 봉투를 여동생 손에 쥐어주며,
"네가 고생이 많다."라고 말했다.
하얀 봉투를 손에 쥔 여동생의 손은 약해서 순응적이었다.
굳이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복도 앞에서 저렇게 봉투를 여동생의 손에 쥐어주는 오빠의 무심함이 괘씸해서
나는 조용히 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들이 돌아가고, 병실 안의 다른 환자들은 아들의 병문안을 받은 할머니에게 한 마디씩 덕담을 했다.
"아이고, 아들이 와서 오늘은 기분이 좋으시겠어요."
"아들이 돈 걱정하지 말고 맛있는 거 많이 잡수시라고 하니깐, 좋은 거 많이 드시고 빨리 나으셔야지. 아들이 최고다, 최고야."
나는 그 자리에 할머니의 따님이 계시지 않은 것을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아니면 딸이 자리에 없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그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참, 죄다 여자면서 죄다 여자 편은 아닌 모양이다.
엄마는 내가 앞에 있건 없건 오빠의 전화를 가장 요란하게 받는다.
그리고 전화를 끊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 우리 아들!"
안물안궁인데.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