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간병 나누기 간병의 몫은?

by 꿈꾸는 엄마

엄마가 입원해 있는 입원실 안에는 모두 여자들만 있었다.

환자는 물론이고, 간병인, 간호사 역시 모두 여자였다.

맞은편 입원실 환자들은 모두 남자들이었지만, 간병인이나 보호자는 역시 모두 여자였다.




엄마는 창가 쪽 침대를 배정받았다.

허술한 창으로 찬 바람이 들 것 같아 염려되었지만, 엄마는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어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엄마 누울 침대 자리를 살피고 필요한 물품을 챙겨 넣고 나서야 입원실 안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었다.

입원실 안, 그곳만의 특징이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나서 잠시 씁쓰름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 여자임과 동시에 노인들이란 점. 그 속으로 들어온 엄마가 이젠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는 점.

겉보기엔 대부분 경증 환자들로 간병인 없이도 생활하는데 크게 무리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부표를 잃은 듯한 허망한 눈빛과 불안한 표정은 아픈 사람임을 숨길 수 없었다.

엄마를 그런 소굴에 두고 혼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의 발걸음에 어쩔 수 없는 죄의식이 진득하게 묻어났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얼마간의 죄의식이라도 씻기 위해 서둘러 엄마에게 갔다.

병실은 하루 만에 만실이 되어있었다.

이른 아침식사를 마치고 난, 약간의 적막함마저 감도는 오래된 입원실 전경은 오래전 몰락한 유물 같았다.

차가운 금속 배드가 매정하게 느껴졌다.

환자분들은 하나같이 중력의 힘을 거스르지 못하고 모든 얼굴 근육들을 아래로 축축 늘어 뜨려 놓은 채 기울어져 있었다. 엄마 역시 입원실로 들어서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러했을 것이다.

바쁜데 뭘 하러 왔냐고 말하면서도 엄마의 입가는 반가움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그런 엄마의 얼굴을 보는 것이 흐뭇하면서도 슬펐다.

언젠가부터 엄마 앞에선 한 가지 감정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마음의 파동을 느낀다.

자식임과 동시에 딸인 데다, 이젠 누군가의 부모이기까지 하니 하나의 입장으로만 엄마를 바라볼 수 없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를 낳아준 엄마 앞에서 마냥 산뜻하고 담백한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이 도덕적으로 불손하게 느껴져 마음이 무겁고 거북했다.


복잡한 마음을 다 잡고, “엄마, 아침은 먹었나? 잠은 잘 잤나? 안 춥더나? “ 덤덤한 척 다정하게 물었다.

엄마 앞에 자리 잡고 앉아, 내가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은 엄마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었다. 간간히 추임새를 넣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그림이었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입원실 안의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주는 엄마의 눈빛이 반짝였다.

역시 엄마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특히 엄마 발 아래쪽 침대에 입원하신 분은 성질이 까칠하다며,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그쪽 침대는 언제나 길고 하얀 커튼이 침대 주변을 꽁꽁 둘러싸고 있었다.


다음 타깃은 그 옆 침대에 입원해 계신 90세를 훌쩍 넘기신 할머님이셨다.

아니 그 할머님을 간병하고 있는 딸이었다.

할머님은 거동이 전혀 되지 않아 보호자가 24시간 간병해야 했다.

수시로 할머니의 기저귀를 갈고, 지극정성 친정어머니를 보살피는 딸의 모습은 내가 봐도 경탄을 넘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인상 한 번 짓지 않고,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묵묵히 친정엄마를 간병하는 모습에 보는 사람은 부러움과 동시에 안쓰러움을 느꼈다.

93세 할머님은 물에서 갓 건진 사람처럼 온몸이 축축 늘어져, 손가락 하나도 제 힘으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병환이 심각한 상태셨다.

움직임은 없고 영양제를 통한 영양분은 꾸준히 공급되다 보니 할머니의 몸집은 간병하는 딸보다 두 배를 거대해 보였다.

심지어 딸의 지극정성 보살핌으로 할머님 얼굴은 젊은 딸의 얼굴보다 더 말갛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할머니를 작고, 당차고, 야무진 딸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할머니의 엉덩이를 들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기저귀를 한 번 갈고 나면, 그걸 지켜보는 사람마저 진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간병하는 딸은 종종 소리 죽인 한숨을 내쉬며 보호자 침대에 드러눕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사람들이 대신 시원하게 앓는 소리를 내어 주었다.

나 역시 다가가 조용히 이불이라도 덮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싫은 소리 한 번 없던 딸의 하소연에 조용하던 병실 안으로 애처로운 탄성의 물결이 일었는데, 할머님이 기저귀에 큰 일을 보고 나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통에 이불까지 홀딱 버렸던 것이다.

간병하는 딸이 처리해야 할 일이 커져버린 것이다.

간호사들 앞에 죄인처럼 서서 "죄송해요"를 연신 읊으며 얻어 온 침대보를 새로 싹 갈던 딸의 난처하고 지친 표정을 보던 엄마는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나는 저렇게까지 오래 살면 안 되는데..."


"엄마, 왜 그래?! 왜 계속 볼 일 보고 나서 말을 안 해?!"

드리워진 커튼 안으로 할머님을 향해 부드럽게 타박하는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커튼 밖으로 나온 딸의 손에는 두툼하게 말린 기저귀가 들려있었다.

딸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엄마를 비롯해 병실 안의 다른 환자들은 딸이 민망하지 않도록 따뜻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아이고, 할머니가 딸한테 미안해서 그러는 가 보네."


뒷정리를 마친 딸은 할머니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대며 물었다.

"엄마, 미안해서 그래? 기저귀 계속 갈면 딸 힘들까 봐 말 안 했어?"

할머니는 마치 옹알이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뭉텅이 뭉텅이 말은 내뱉었다.

"엄마, 괜찮아. 나는 괜찮으니깐 싸고 나면 말해야 해. 안 그러면 엉덩이 다 헐어."

할머니는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 짐승같이 서럽게 우셨다, 딸은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며

오히려 웃었다.

"아이고, 우리 엄마 딸한테 미안하긴 미안한가 보네. 울지 마, 울지 마셔. 뭐 그게 미안할 일이야. 엄마도 우리들 똥기저귀 다 갈아서 키워 놓고는. 엄마, 볼일 보고 나면 꼭 말해. 안 그러면 내가 더 힘들어져. 알았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병실 안의 모든 사람들은 딸에게 흐르는 생과 할머니에게 흐르는 죽음을 함께 보았다. 앞으론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뒤로는 포기를 종용하는 다정한 듯 냉정한 눈빛들.

할머니는 너무나 병약하고, 딸은 충분히 젊었다.



"엄마, 오빠. 오빠 보여? " 하며 영상통화를 하는 모습에서, 딸에겐 위로 오빠, 아래로는 여동생과 남동생이 한 명씩 더 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나오는 눈물이 쏙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어쩌다 직장까지 휴직하고 어머니의 간병을 혼자 감당하고 있나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딸이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날은 그녀의 큰 딸과 대학생인 작은 아들이 번갈아 가며 할머니를 간병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어린 딸과 아들이 간병하는 모양새는 서툴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군말 없이 할머니 앞에 앉아 엄마의 몫을 나누려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야말로 온 집안 식구가 할머니의 간병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간병인을 쓰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주변의 조언이 전혀 일리 없는 것은 아닌 듯싶었다.

급기야 과도한 간병이 주변 사람들에겐 미련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딸은 왜 자신의 노고를 넘어 그녀의 자식과도 고생을 나눠가질 만큼 악착같이 제 부모의 간병에 집착하는 것일까. 단순히 돈의 논리일까? 자식의 도리 같은 것일까? 그럼 왜 자식의 도리를 다른 형제와는 나눠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타인의 간병에 대한 불신일까?

아니면 스스로 자처한 구원의 방책일까?


자식의 안위를 감당하는 일은 부모가 아닌 다른 이의 대체나 나눔이 쉽지 않다.

하지만 외동이 아닌 이상 부모의 강녕함은 자식들이 서로 나눠가질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집은 그것을 옴팡 혼자만 감당하는 쪽이 있다.

감당하는 쪽도 감당하지 못하는 쪽도 다 사정이 있으니 윤리적인 잣대를 될 문제는 아니지만, 감당하는 쪽은 대체로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그 간의 죄의식이 조금 더 깔려 있는 것 같다.

부모를 볼살 피면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얄팍한 속셈이 있는 것이다.

과도한 억측이라면... 그저 나의 고백이라고 봐주면 좋겠다.



어느 날 다시 내가 엄마의 병실을 찾았을 때, 할머님이 계셨던 자리는 비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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