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미에 가서야 작품의 진미가 느껴졌던 책.
안녕하세요!
독서했던 책들 중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을 선별해 다루어볼까 합니다.
개츠비에게 ‘사랑’이란?
개츠비에게 ‘사랑’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짧지만 강렬하게 기억되는 그의 생애는 모든 순간들이 ‘사랑’이라는 키워드 하에 퍼즐처럼 맞춰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사랑’은 유복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그가 가난의 굴레에서 스스로 발 벗고 나서게 해 준 원동력이었을 테며, 그 과정에서 그가 맞서야 했던 수많은 어려움들은 그녀의 얼굴을 한번 떠올릴 때면 눈 녹듯 사라졌을 것입니다.
매주 주말 밤 그가 열었던 호화스러운 파티들이, 알고 보니 오롯이 그가 일평생을 기다리던 한 여자 데이지와 재회하기 위함이었음을 생각하면 매몰비용이 어마어마해 보입니다만…
데이지는 개츠비가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여자를 넘어서 그의 순수하던 젊은 날들의 표상과도 같았기 때문에, 그 값어치를 제 멋대로 평가하기에는 감히 조심스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하.
작품 속 데이지는 싱그러운 과일, 향기로운 꽃에 비유되어 묘사된 구절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허나 그녀에게서 드러나는 품행을 미루어 볼 때, 데이지라는 여성상은 개츠비가 낭만적인 꿈을 의탁할 대상으로는 다소 미덥지 않게 보였습니다.
작품 내내 데이지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타인들이 인지하길 바라는 근시안적인 사고를 보였으며, 작품 말미에는 본인이 머튼의 살인 사건과 연루되자 개츠비 몰래 동네에서 도망가버리는 이기성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죽음의 문턱에서조차 그녀를 향한 순정을 바치는 개츠비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 비극적이기까지 합니다.
생전 그의 파티에는 그토록 수많은 사람이 오갔건만, 정작 장례식장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결말 또한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못다 이룬 꿈, 못다 이룬 현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떠한 이유로 개츠비 앞에 ‘위대하다’는 수식어를 붙인 걸까요?
이 소설 집필 끝에 저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수록된 작품 해설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무책임한 존재(=데이지)를 꿈의 기반으로 삼은 점이 큰 실수였겠으나, 어쨌든 끝까지 꿈을 믿고 그 꿈에 목숨을 바친 것이 바로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인 게 아닐까?
해설가는 방탕하고 윤리적으로 타락했던 1920년대 시대상에 녹아들지 않았던 개츠비의 순애적 사랑을 높이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팽배하는 물질 만능주의와 만무하는 순수함 속에서 굳건히 사랑을 지킨 아가페적인 개츠비의 모습은, 어쩌면 당시 너무 특별하고 고유하다 생각됐기 때문에 이를 강조하려던 게 필자의 속내가 아니었을까요?
생전에는 수많은 이들의 관심과 부러움을 산 개츠비였으나, 사후에는 모두가 무관심으로 등을 돌렸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잔인함과 개츠비가 꿈꾸던 이상, 이 둘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후자를 독자들의 기억에 남기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나에게 개츠비란?
개츠비의 마음을 훔친 여성이 데이지가 아닌 다른 여성이었다면. 매혹적인 외모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에 큰 버팀목이 되어줄 굳은 심지까지 지닌 여성이었다면.
단순히 사회적 신분 상승을 이룬 것을 넘어, 개츠비는 독자 모두가 동의할 진정한 해피엔딩에 이르렀을지도 모릅니다.
’ 사랑‘이라는 행위 자체의 고결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적인 부분에 매료되어 사랑하는 대상의 인간성이 갖는 중요성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그와 보내는 시간이 많음을 내포하는데, 사랑이라는 행위가 나에게 긍정적으로 돌아오길 원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끊어낼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허나 제 눈에는 개츠비의 인생이 비극으로 보일 수 있을지라도, 개츠비 본인에게는 희극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토록 꿈꾸던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사랑하는 여인과 재회하고,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하는 그녀를 눈에 애틋하게 담아냈으니 말입니다.
시대의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위대한 착각을 한 남자, 개츠비.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라져 가는 낭만과 순수함을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만큼은 위대하다 평가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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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는 그 초록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 앞에서 멀어지고 있는, 환희에 찬 미래의 존재를 믿었던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우리한테서 달아났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내일은 우리가 좀 더 빨리 달리고, 좀 더 멀리 팔을 내뻗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맑게 갠 아침이… 그래서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흐름을 거슬러가는 조각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