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탐
나는 옷을 사랑했다.
어릴 적부터 옷에 얽힌 기억은 선명하다. 초등학교 시절, 매일 입던 파란색 지퍼 운동복과 청바지가 전부였다.
친구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는 잘 몰랐다.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다행이었다.
우리나라가 점점 잘살게 되면서 잠옷, 일상복, 외출복의 구분이 생겼지만
1970년대 후반, 우리에게 옷 한 벌은 모든 옷이었다.
겉옷을 벗으면 잠옷이 되었고, 추우면 그 채로 잠을 잤다.
당시 형제자매는 마치 '독수리 오 형제'처럼 북적였고, 나는 그중 둘째 딸이었다.
언니가 입던 옷을 물려받는 게 자연스러웠다.
작은 여동생은 내 옷을 받기엔 한계가 있어 새 옷을 더 얻었지만,
나는 원하는 옷을 고를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옷에 대한 사무침을 키워갔다.
중학교 3학년쯤, 서울 숙모가 입던 옷이 집으로 왔다.
그중 한 벌을 맞춰 입고 다녔을 때,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러나 옷을 자유롭게 고를 수 없던 시절,
그 아쉬움은 어른이 되어서도 나를 따라다녔다.
고등학교 졸업 전, 첫 직장에 취업했고
처음 받은 월급으로 옷 한 벌을 샀다.
하지만 드라이클리닝이란 걸 몰랐던
나는 손빨래를 했고,
옷은 금세 뒤틀려버렸다.
그때 깨달았다.
“아, 그래서 메이커 옷을 사는구나.”
그 이후로는 브랜드 매장에서 옷을 구입했고,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니 몇 년씩 입을 수 있었다.
명절이나 특별금이 생기면 정장, 외투, 밍크, 원피스 등을 사 모았다.
작은 키에 어려 보이는 인상 때문인지, 손님들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늘 단정한 정장을 선택했다.
부산에 있던 딸과 백화점에 가게 되면서
더 좋은 옷, 더 좋은 브랜드를 알게 되었고
어느새 백화점에서 딱 첫 직장 취업옷과
나를 위한 옷까지 200만 원 넘게 구입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 옷에 대한 한이
'옷 탐'이라는 욕심으로 남아
삶의 지출 중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들었다.
2년 전부터는 거의 옷을 사지 않는다.
티셔츠 하나 버릴 때, 하나 새로 사는 정도가 되었다. 이유는..
2023년 10월,
딸이 보내준 메시지에서 처음 들은 단어.
“경제적 자유.”
‘돈이 돈을 벌고, 근로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 말이 나를 바꿨다.
그 후로, 경제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첫째, 빚부터 갚자.
둘째, 투자를 시작하자.
옷보다 경제적 자유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37년간 직장 생활을 하며
아들 학자금, 전세금, 집 대출, 딸의 결혼까지 책임진 외벌이 가장.
그 결과, 현재 5천만 원의 빚이 남았다.
나는 이제 안다.
내 옷장은 이미 충분하고, 이제 소비를 멈췄다.
물건을 사기 전엔 반드시 한 번 더 생각한다.
옷을 향한 오래된 욕심을 넘어서
이제는 ‘경제적 자유’를 사랑할 시간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읽었다.
“자신에게 먼저 투자하라.
그리고 자산이 쌓이는 지출을 하라.”
이제 나는 옷을 사지 않는다.
대신 나 자신에게 투자하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나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다.
나와 가족을 사랑할 또 다른 디딤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