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쇼핑

해외문학 신인상

by 서재진

해외문학사가 제정한 제15회 해외문학 신인 문학상 수필부문에 당선된 제 수필 [마지막 쇼핑]입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을 먹을 때마다 참 많이 곤욕스럽다. 물론 밥맛이 없다거나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가격할인을 알리는 오색빛깔 전단지가 내 밥상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너무 비싸서 사고 싶었으나 사지 못했던 옷들과 가방, 화장품 광고를 읽다 보면 잠이 확~ 깨는 것은 물론이요, 평소에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물건들도 절반가격에 판다는 문구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입가엔 어느새 침이 고여진다.


미국은 11월 말경에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대거 세일에 들어간다. 추수감사절 후에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또 세일에 들어간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거의 모든 상품들이 1월이 되기 직전까지 정말 한국의 떨이상품 비슷하게 헐값이 된다.


한국에서는 차편의 불편함이 없거니와, 젊은 혈기에 참 열심히 다리품 팔면서 쇼핑을 했던 거 같다. 특히, 나보다 몇 곱절로 까다로운 언니와 쇼핑을 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언니는 정말 얼굴에 철판을 넉넉하게 깔고 마음에 들 때까지 아주 까다롭게 물건을 고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장 한 벌을 살 때도 나는 그냥 내 스타일과 어울리는 옷가게 한두 곳에서 두세 벌 정도 입어보고 그 자리에서 사곤 하는데, 언니는 최고 예닐곱 벌까지 입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가차 없이 다른 상점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래서 언니랑 쇼핑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름대로 인내심이 강한 나밖에 없다고 힘차게 주장하고 싶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안양 일 번가에 있는 한 옷가게였는데, 그날도 언니가 정말 수십 벌을 입어봤으나 떡하니 언니 성에 찬 옷이 없어 다른 옷가게로 발길을 돌리던 중이었다. 나는 언니한테, 아참~! 하면서 마치 그 옷가게에 뭘 놔두고 온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 가게로 헐레벌떡 들어가 옷가게 점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기, 저희 언니가 까다로워서요, 다른 집 몇 군데 들렸다가 다시 올게요, 죄송합니다”


내가 미국에 와 있는 동안 제일 궁금하고 걱정이 되는 것은 언니가 누구랑 쇼핑을 할까 이다. 언니에게 물어보니 3천 원이 넘는 옷은 절대로 안 입는다는 검소한 형부를 만나 애들은 형부한테 맡기고 언니 혼자 쇼핑을 간다고 했다.


서두가 길은데, 잊을 수 없는 언니와의 마지막 쇼핑이 있다. 언니가 시집간다고 사야 할 물품을 조목조목 적어서 나와 같이 쇼핑을 갔다. 신혼여행 때 입어야 할 사파리 잠바. 지난번에 봐 두었던 빨간 운동화. 부천역 주변에 있는 지금 왕창 세일하고 있는 무슨 백화점 어디에서 구입해야 할 뭐 시기 뭐 시기 등등, 빽빽하게 써 내려간 물품들을 사기 위해 우리는 아침을 든든히 먹고 집을 나섰다.


수중에 돈이 없을 때에는 시장만 나가도 전부 다 사고 싶은데, 막상 내 손에 넉넉하게 돈이 있으면 물건들이 하나같이 다 시원찮아 보인다. 한마디로 나 돈 있다, 이거지 뭐. 그날 언니와 나는 눈에 차는 물건이 없어서 빽빽이 적어놓은 리스트가 민망할 정도로 하나도 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원래 상표를 많이 밝힌다. 안 그러려고 그래도 자꾸 비싼 상표만 보면 눈이 가운데로 몰리면서 침을 흘리는 아주 못된 버릇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이키 운동화가 그렇게 신고 싶어서 엄마 몰래 모아 놓은 세뱃돈으로 샀다. 엄마는 분명히 ‘저기 저렇게 예쁜 이티 운동화가 있는데 왜 또 사?’라고 말씀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아무리 비싸도 일단 그럴싸한 상표가 달린 옷 한 벌만 사면 나는 10년을 입어도 그 옷을 질려하지 않는다. 그저, 상표만 보면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검은색 비로도 천으로 만들어진 굉장히 고급스러운 운동복을 보고 그만 넋을 잃었다. 제일 먼저 가격표를 보았더니 20만 원이 훨씬 넘었다. 정장 한 벌을 방불케 하는 가격에 나는 잠시 눈을 껌뻑거리다가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집어 들었다. 계산대 앞에서 나는 태연자약하게 언니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엄마가 혼수 하라고 천만 원이 넘는 돈을 언니에게 현찰로 쥐어준 걸로 아는데, 당연히 언니가 돈을 내겠거니 싶어서였다. 나와 함께 독신자 아파트 위층 아래층에서 평생 같이 살기로 다짐한 약속을 배반한 사람은 다름 아닌 언니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가로 이 정도의 옷값은 우습게 지불할 줄 알았다. 언니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야, 돈 안 내고 뭐 해?”


이렇게 비싼 옷을 내 돈 주고 어떻게 산단 말인가? 난 당연히 언니가 나 사주는 줄 알았다며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퉁명스럽게 언니에게 대꾸했다.


“이거, 언니가 나 사주는 거 아냐?”


“내가 널 왜 사주냐?”


난 그 말에 토라져서 옷을 원래 있던 곳에 다시 두고 쌀쌀맞게 한마디 했다.


“난 못 사. 난 내 돈 주고 저렇게 비싼 옷 눈 나와서 못 사. 가자.”


그 이후로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언니가 나 혼자 놔두고 시집가는 것도 서러운데, 형부 될 사람한테 홀딱 빠져서 동생은 안중에도 없는 언니가 야속했다. 예전엔 눈빛만 봐도 내 마음을 술술 읽어 내려갔던 유일한 친구이자 자취생활의 든든한 조력자였는데. 너무 서럽고 속상해서 막 눈물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지하철 안에서 시큰둥하게 언니랑 말도 안 하고 옆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언니는 언니가 살 곳으로 가고 나는 유학 준비 한답시고 들어간 창살 없는 감옥 고시원으로 갔다.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제야 뼛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야속하게 구는 언니 앞에서 흘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눈을 감으면 바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아 애써 눈동자를 굴리며 눈을 치켜뜨는 내 모습이 지하철 반대 창문에 비쳤다.


언니와 헤어지고 고시원에 돌아와 감옥 같은 그곳에서 그것도 옆방에 들릴까 봐 숨죽여 가며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만감이 교차했다. 언니에 대한 서운함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속 좁음에 대한 속상함이 더 컸다. 나중에 언니 시집가고 나면 내가 더 잘해줄걸 하며 후회하게 될 텐데,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나만 생각한 나 자신이 못나보였다. 다른 사람 몇 천만 원 혼수장만을 해서 가는 것에 비하면 언니는 정말 아무것도 해가는 것이 없는데, 그 적은 혼수비용을 쪼개서 내 것을 사려고 했다니!


그다음 날 새벽예배를 마치고, 영어학원 갔다 와서 시내를 한 바퀴 돌면서 언니가 어제 사려고 적어놨던 물품들을 다 샀다. 하도 많이 보고, 귀가 닳도록 듣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녀서 안 봐도 훤한 물품 목록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사서 언니네 신혼집으로 갔다. 언니한테 울먹이면서


“언니, 정말 미안해. 내가 언니 마음 이해 못 하고 투정 부려서 정말 너무 미안해. 어제 사려고 하다가 만지작거리고 못 산 것들 다 샀어. 언니 결혼 축하 선물이야.”


언니도 얼굴이 나만큼 푸석한 걸 보니 밤새 나처럼 운 것 같았다. 유학 준비한다고 고시원까지 들어가면서 고생하는 동생 마음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고 내 것만 챙긴 것을 미안해하는 기색이 얼굴에 역력했다. 언니도 밤새 울어서인지 목이 잠겨있었다.


“애기아, 미안해.”


하면서 언니랑 언니 집 앞에서 서로 붙들고 눈물을 훔치던 기억이 새롭다. 세상에 둘도 없이 지내던 13개월 차이 연년생 자매인 우리가 헤어지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렇게 언니와 나는 눈물 젖은 마지막 쇼핑을 했다. 언니는 정동진에서 있을 결혼식 야외촬영과 신부화장 마사지 때문에 일주일 일찍 시댁이 있는 강릉으로 갔다. 언니 결혼식 참가하려고 우리 집 식구들이 강릉에 도착했는데 언니가 나를 따로 불렀다. 강릉 시내로 들어가서 내가 언니랑 같이 마지막으로 쇼핑했던 날 입고 싶어서 만지작거리던 검은색 비로도 운동복을 사놓은 것이 아닌가? 결혼 일주일 전 강릉 내려오자마자 강릉 시내를 수소문해 내게 맞는 사이즈의 검은색 비로도 운동복을 주문해 놓았다고 했다. 지금 그 사연 많은 검은색 비로도 운동복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오피스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어있다. 상표를 무척 밝히는 나로서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고, 짜증이 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 옷에 멋지게 수놓아 있는 상표를 보며 회심에 찬 미소를 짓곤 한다. 편하게 공부하고 싶을 때나, 비나 눈이 많이 와서 옷이 젖은 날은 편하게 그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