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2019
여고 시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있었다. 모처럼 주어진 공강 시간에 자습을 하려고 하는데 한때는 시인이셨다고 하는 최 교감 선생님께서 우리 반에 들어오셨다.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교감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였다.
"여러분, 요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한참 유행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교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선생님은 말씀을 이어가셨다.
"행복은 성적순입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목을 젖혀가며 몰입하던 나는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걸 거야. 그럴 리가.
다시 한번 힘주어서 말씀하셨다.
"행복은 성적순입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 와중에도 나는 키가 비슷해서 나와 같은 줄에 앉아 있는 전교 수석으로 들어온 친구의 얼굴을 무의식적으로 훑었다. 이상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가만있어보자, 지금 내가 고등학교 입학 고사를 치르고 어렵게 들어온 비평준화 선발 고등학교에서 반등수는 40등을 넘어섰고, 전교 등수는 세 자릿수를 꽉 채우고도 한참을 뒤로 가는데, 불행한 걸로 전교 등 수 안에 들겠구나 싶었다.
그 이후로 마음도 닫히고 머리도 닫혀서 선생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12학년, 한국으로 따지면 고 3 학생들 대학입시 결과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한다. 그 옛날 여고 시절 선생님의 말씀 대로라면 합격한 학생은 행복한 것이고, 떨어진 학생이나, 대기자 명단에 있는 학생은 불행한 것인가?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중이라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행복하고 보람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지표 중 하나를 점검받는 것이니 최선을 다 하되 결과는 의연하게 받아들여 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나도 잘 못하는 것을 겨우 십여 년 남짓 살아온 아이들에게 부탁하는 것조차도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2019년 12월 10일
추신: 2022년 12월 14일 대입 원서를 쓰던 학생이 책가방에서 큰 콜라를 꺼내 병째 마셨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며 웃다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다시 화수분 같은 가방에 손을 넣어 콜라와 함께 먹는 Soul Food 초콜릿 과자를 꺼내 올려 놓고, 손은 컴퓨터 자판 위로 타이핑을 치는 척 했다. 카페인과 설탕이 힘든 시기를 지켜주고 있다는 코멘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