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or No?

by 서재진

워싱턴 디씨 근교 부촌 북버지니아 McLean에 위치한 사교육 기관에서 일할 때였다. 내 직함은 부원장이었다. 미국 수도 워싱턴 디씨 정부 기관 변호사로 일하는 백인 학부모가 전화를 했다. 다짜고짜 본인 자녀가 본인이 부탁한 독해 자료로 공부하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당황해서 그렇지 않아도 어눌한 영어로 확인해 봐야 알 것 같다고 답했다. 내 영어가 시원치 않았던 모양인지, 법조인이 심문하듯


"Yes or No?"


단답형으로 답하라고 해서 얼떨결에 그렇다고 했다.


다음 날, 아니나 다를까 심기 불편한 얼굴로 학원을 찾아왔다. 원장에게 따지듯 말하는데 나는 왠지 병풍 같은 엄마 뒤에 있던 딸의 초점 잃은 눈동자가 먼저 들어왔다.


초점 없는 눈동자를 가진 학생들의 공통점이 있다. 중요한 결정을 대신 내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이다.


타주에서 지인의 소개로 전화를 받았다. 자랑스럽게 자녀의 수학 공부를 아이비리그 박사출신인 아빠가 직접 가르쳐주고 있노라고, 그다음은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결국은 아빠는 더 커지고 아이는 작아질 것이라고 했다.


SKY Castle (SKY 캐슬)이라는 드라마에서도 언급된 미국의 강남 8 학군과 다를 바 없는 Fairfax County에서 아이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려는 부모들을 자주 접한다.


미국 대학원서에 필요한 수필을 쓰는데, 열혈 한인 부모님께서 본인이 인공지능의 힘을 빌어 아들 대신 수필을 쓰는 건 어떻겠냐고 하신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비단 이런 경우는 미국뿐만이 아니리라. 전 세계에서도 타이거 맘이라 불리는, 내 아이 이렇게 교육시켰어요. 특수고에 진학하기까지의 여정을 연재하기도 한다.


내 머릿속에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학생이 있다. 어머니는 일본어 선생님이신데 영어로 의사소통을 힘들어 하셨다. 그런 어머니 덕에 딸은 두 사람 몫을 해낸다. 수업 시간보다 미리 와서 책장에 진열된 대학 입시 관련 책을 보고, 다음 수업 때까지 빌려봐도 되냐고 물었다.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일주일 동안 궁금했던 입학 관련 정보를 세세하게 물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말쑥한 옷차림에 고무줄로 질끈 묶은 머리 사이로, 어두운 방을 밝히는 호롱불같은 초롱초롱한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106세의 김형석 철학자님의 조언이 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자녀들이 결정할 권리를 빼앗지 말아 주세요.


좌충우돌일 수 있으나, 그것 또한 감당해 내야 할 그네들 삶이니 기다려줄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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