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전 13기

2010년

by 서재진

차 없이 살았던 유학시절, 운전면허를 따지 않았던 내게 좋은 핑곗거리는, 차를 사서 유지할 형편이 될 때 차를 사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유학생이 아닌, LA 이민자 아줌마가 되었으니 운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말았다. 시댁 식구 모두가 배웠다는 K 운전학교에 등록을 했다.


운전 연습을 하던 첫날, 운전학교 교장 선생님께서는 눈이 똥그랗게 커지면서 내게 이렇게 물으셨다.


“아니, 서재진 씨 운동하셨어요? 운전 처음 하시는 거 맞나요?”


교장 선생님의 칭찬에 어깨에 으쓱해졌으나, 차분하게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운전은 정말 처음이고요, 제가 키는 작지만 2킬로씩 매일 10년 넘게 수영을 했습니다만, 교장 선생님 그걸 어떻게 아셨지요?”


“운전 참, 잘하십니다. 우리 두 번만 더 연습하고 바로 운전면허 시험 보러 갑시다.”


필기시험은 만점을 맞았다. 바로 시어머님께 전화를 드려, 간드러진 목소리로


“어머니임~! 저 필기시험 만점 맞았지 뭐예요!!! 호호호호~ 실기 시험도 합격해서 얼른 어머님의 발이 되어 드리겠어요~”


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첫 번째 운전면허 실기 시험에서 떨어졌다. 총 19점이 감점됐다. 떨어진 이유가 분명하니, 한발 짝 뒤로 물러서는 수밖에. 핸들을 잡으면서 깜빡이를 넣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핸들이 펴지면 자동으로 꺼지는 깜빡이를 굳이 수동으로 계속 껐던 것이 문제였다. Critical maneuver (치명적으로 중대한 실수)라는 명목으로 두 번째 시험도 탈락했다. 차선을 변경할 때 처음에는 오버액션을 하면서 뒤로 고개를 90도 이상 꺾어서 봤는데, 첫 번째는 90도 이상 고개를 돌려주는 유연함을 보였으나, 두 번째 차선 변경을 할 때는 70도 정도만 고개를 돌렸다는 것이 떨어진 이유였다.


운전학교 교장 선생님은 내가 운전면허 시험이 또 떨어졌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또 운전 연습 시간을 잡았다. 한 시간당 40불씩, 한번 할 때마다 80불. 적은 돈이 아니다. 시험 볼 때 픽업해서,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시험 전에 운전 시험 대비 운전 시험 코스를 1시간 정도 외우다시피 여러 번 반복해서 돈다. 이것 역시도 내가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운전 시험 당일은 적어도 $120은 족히 든다. 시험 전 주행 시험 코스를 도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라고 하면서, 내가 연습 도중에, 내 옆자리에 앉은 운전학교 교장 선생님과 실제 주행 시험을 채점하고 있는 DMV 시험관과 눈이 마주치면 이해할 수 없는 썩은 미소 (썩소)가 오간다. 조막만 한 내 머리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뭔가 교류가 있는 것 같다. 세 번째 시험 보는 날 아침에도 교장 선생님은 내 운전에 대해 극찬을 늘어놓으신다.


“아니, 서재진 씨, 이렇게 운전을 잘하시는데, 세계 어딘들 못 가시겠어요?”


“교장 선생님, 세계까지는 꿈도 안 꾸고요, 그냥, 운전 시험장 코스만 완주했으면 좋겠네요. 저, 앞으로만 가는데, 벌써 $840 썼거든요. $1000 고지도 바로 눈앞에 있고요, $1000, 벌긴 힘들어도 쓰는 거 아주 우스워요.”


세 번째 시험 날이다. 이 날은 바짝 긴장을 했다. 운전면허 시험 두 번 떨어지는 것은 애교로 받아넘길 수 있지만, 세 번 이상 떨어지는 것은 나 자신도 용서할 수 없었다. 장소는 똑같이 악명 높기로 유명한 LA 다운타운이었다. 내가 인적이 드문 오지로 가서 운전면허 시험을 보자고 제안했건만 운전 잘한다고 나를 추켜세우며, 굳이 다운타운에서만 세 번을 보게 하셨다.


아주 무더운 여름날, 나는 바짝 긴장하며 시험장에 운전 학교 교장 선생님과 함께 들어갔다. 내 앞에 다른 차량이 떠나려고 대기를 하고 있는 동안 시험관이 내게도 왔다. 깜빡이와 브레이크 등을 체크하고, 여자 시험관이 내게 말했다.


“Go around that car. (앞의 차 옆으로 비껴가시오)”


더운 여름날 앞 차가 출발하면 나도 그늘진 곳에 갈 수 있는 생각이 온통 머릿속에 가득했던 그 순간 나는 앞차를 비껴가라는 말을 그늘진 앞 차 쪽으로 가라는 말로 곡해했다. 그래서, 슬금슬금 앞 차 쪽으로 가려는데, 시험관은 급하게 내 차 핸들을 빼앗아 돌려 앞차 옆에 주차시켰다. 그러고 나서, 일말의 여지도 없이

“You failed! (너, 떨어졌다!)”


이러는 것이 아닌가! 내가 따졌다. 이건 분명히 Language Barrier (언어 장벽)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난 분명 앞 차를 따라가라는 말로 이해했고, 그전에 두 번 시험 봤을 때에도 앞 차 먼저 출발한 적이 없었으므로, 이런 예외의 상황에 내가 능숙하게 대처할 수 없었노라고. 게다가, 나는 지금까지 20시간이 넘게 많은 돈을 부어가며 주행연습을 해서 이곳에 왔는데, 어떻게 5미터 반경도 나가지도 못하게 한 체, 내 운전 실력을 테스트할 수 있느냐고 다짜고짜 따졌다. 그러자, 시험관이 내게 한 말이 가관이었다.


“Driving is moment! You almost hit the car! (야, 운전은 순간이야, 너, 거의 차를 받을 뻔했어!)”


운전학교 교장 선생님은 내가 열심히 운전 시험 코스를 돌고 있으리라 너무 믿으신 나머지 20분이 지나도 돌아오시지 않으셨다. 떨어지고 난 뒤 망연자실한 체로 얼마나 침통하게 나 홀로 운전대 잡고 있었던가! LA는 3번 떨어지면 필기시험을 다시 치러야 한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나 또 떨어졌어.”


그러자, 장난기 섞인 어투로, 남편이 화답했다.


“에이, 우리 여보 장난꾸러기. 내가 이번에 또 속을 줄 알고? 붙었지? 붙었으면서 일부러 나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내가 항상 반대로 말하면서 장난을 쳤기에, 양치기 소녀의 하루는 더 비참했다.


이민 사회에 있다 보면 불법과 맞서야 하는 순간이 매번 있다. 이번에는 운전학교 교장 선생님이 순진한 나를 붙들고 이렇게 유혹하셨다.


“미스 서, 아니, 도대체 왜 미스 서가 떨어진 것이지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요? 다시 운전 연습 시간을 잡읍시다. “


내가 시큰둥하며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해괴망측한 제안까지 하셨다.


“미스 서, 이런 거래는 흔치 않은데요, 미스 서가 볼일 보러 한국 들어가기 전에 이 운전감각을 유지한 채로 시험을 보는 게 좋은데 지금 일정이 그렇게 안 되니, 시험을 안 보고 운전면허 증을 주는 아주 special offer (특별한 제공)이 있어요. 400불만 주면, 실기 시험 안 보고 내가 미스 서 두 손에 운전 면허증 쥐어 드리리다.”


아니 이 분이 무슨 계시를 받으셨길래, 그래도, 이 지역 교회 장로라는 분 입에서 이런 발칙한 제안이 나오나 싶어 순간적으로 교장 선생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남편과 상의한 뒤 알려드리겠노라고 얼버무리고 집에 돌아왔다. 그날 저녁 남편과 나는, 내 목숨을 생명 보험 비와 맞바꾼다 하더라도, 400불은 너무 적으며, 갓 결혼해 신혼의 재미도 못 본체, 내 목숨을 달랑 400불 담보로 LA Freeway에 공짜로 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다음 날 운전학교 교장 선생님께는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운전학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 첫 해를 보냈다. 2008년 6월이 가까워오자 나는 3번 떨어진 충격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해마다 6월 첫 째 주말이면, 남편의 CFA 시험이 다가오므로, 이번에는 무리해서라도 운전면허를 따서, 내 손으로 운전해서 남편을 시험장까지만 차로 데려다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픈 기억이 역력한 LA Down Town을 뒤로한 채, Hollywood DMV로 갔다.


네 번째 시험 보는 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운전 시험에 임했다. 시험관은 운전면허 시험장을 벗어나자마자 우회전을 하라고 내게 주문했다. 정말 신중히, 여러 번 고개를 돌려가며, 뒤쪽 거울도 보고, 옆 거울도 보며 천천히 최대한 차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너무 신중을 기한 나머지, 정지 표시판도 없는 곳에서 거의 정지하다시피 하며 거북이처럼 차를 몰고 있는데, 시험관이 앞쪽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우회전. 주차를 하라고 해서, 사방을 둘러보니 30초 전에 내가 출발했던 DMV다. 나 더러, 아까 처음 우회전하라고 했을 때 왜 거의 멈추다시피 했냐고 묻는다. 세 번째 운전면허 시험 때 여자 시험관과 맞서 말다툼을 심하게 했던 아픈 기억이나, 이번엔 최대한 애교 섞인 코맹맹이 소리로 답했다.


“I was watching out! (제가 주의를 살펴보느라 그랬지요!)”


또 떨어졌단다. 이유인 즉 슨, 정지 표시 판이 없는 곳에서 우회전을 할 때는 속도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줄여야 뒤 차가 내 차를 들이받지 않는다며, 거의 정지하다시피 한 내 차 때문에 교통 체증이 가중된다고 했다. 남편의 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그 자리에서 이틀 뒤 다시 실기 시험을 신청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섯 번째 시험날, 오늘은 실기 시험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평행 주차만 빼고 다 한 것 같다. 이번엔 꼭 붙을 것 같은 기쁜 예감이 대뇌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 바퀴를 상쾌하게 돌고 시험관의 평가를 기다렸다. 또 떨어졌다. 이유는 속도 제한 35마일 구간에서 내가 28마일로 너무 늦게 가서, 이로 인해 교통 체증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결국 내일모레 1년 동안 준비해 온 중요한 시험을 치를 남편을 모시고 마지막 한번 더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는 것은 시험 보기 전에 남편의 평안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남편 시험이 끝나고, 한 계절을 흘려보낸 가을에 치르기로 했다.


Sheriff (도로 경찰)인 지인의 조언을 빌어 Glendale이라는 곳을 나의 여섯 번째 시험장으로 선택했다. 운전 시험관은 마지막 이름이 So 인 것으로 봐서, 한국계 미국인인 것 같았다. 열심히, 우회전을 하고, 좌회전을 했다. 다섯 번째 시험에서 떨어진 35마일 도로 앞에 섰다. 우회전을 하라고 한다. 그래서, 좌우를 살핀 뒤 가속 페달을 밟으려는 순간, 히스테리적인 고음으로 소 씨 시험관이 소리를 질렀다.


“Stop!”


물끄러미 시험관을 쳐다보니, 저 멀리 밖에서 차가 오는데 어딜 가려고 하느냐고 윽박질렀다. 난 항상 연습해 오던 데로 했을 뿐인데, 내가 너무 터프하게 운전연습을 했나 싶었다. 소 씨 시험관 언니가 DMV 주차장에 내 차를 주차시킨 후, 조목조목 나를 가르치려 하신다. 그리고, 나한테 하는 말이,


“This is your third times, right? (이게 세 번째 시험이지요?”)


“No, six times. I know what to do next. Take a written test again, right? (아니요, 여섯 번째 떨어진 건데요. 필기시험 다시 치러야 한다고 말하려고 했죠?)


미안함과 황당함이 뒤섞인 오묘한 소 씨 시험관의 표정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 뭔가 우리 둘 사이의 오가는 대화가 의심쩍은 남편이 물었다.


“어떻게 됐어?”


“응, 또 떨어졌어.”


“이유는 뭐래?”


“응, 내 미모 때문에.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잖아.”


순진한 남편은 반복되는 운전면허 시험의 실패가 내 정신 건강까지 해친 것은 아닌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운전을 못하면 살 수가 없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살지 말라는 계시로 받아들이고,


“No more this year (올해는 여기까지만)”


을 외치며, 2008년을 보냈다.


2009년 여름, 아이오와 대학 박사과정 입학이 돼서 아이오와로 타주 이사를 했다. 타주 이사 전 차를 몰고 LA에서 Iowa로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한적한 중부 평지에서 남편을 도와 번갈아 운전할 양으로 필기시험을 한 번 더 치렀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옆에 운전면허증을 소지한 사람이 있으면 운전을 할 수 있다.) 첫 시험은 만점이었고, 두 번째 시험도 흐릿한 기억력으로 대충 한 번 보고 가서 합격했으니, 세 번째 시험에서는 눈 감고 봐도 붙겠다 싶어 전혀 공부를 안 했더니 떨어지고 말았다. 이젠, 필기시험도 떨어지다니! 내가 시험을 마치고, 시험관이 그 자리에서 틀린 문제를 사인펜으로 찍찍 그을 때마다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낙담한 얼굴로 나오는데, 남편이 한 말씀하신다.


“난, 여보가 떨어질 줄 알았어.”


“왜?”


“여보랑 같이 들어간 사람들은 금방 시험 치고 나오는데, 여보 혼자 얼굴이 새 빨개져서 시험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라고.”


한편으로는, 초보운전자인 내가 LA라는 대도시에서의 운전과 중부로 올 때, 행여나 고속도로에서 운전 허가증만으로는 너무 위험하니까, 한적한 중부 시골 아이오와로 보내시는구나 싶어 기대도 됐다.


아이오와에 도착해서는 자신만만했다. 그래도, 내가 LA 다운타운과 할리우드 DMV를 내 집 안방 드나들 듯 아침저녁 출퇴근하며 운전 도사가 되신 몸인데 하며 우쭐댔다.


일곱 번째 시험을 보는 날이다. 대도시와는 구별되게 한산한 아이오와 DMV는 약속 스케줄을 인터넷이나 전화로 예약할 필요도 없이 First Comes, First Serves로 오는 순서대로 바로 업무를 처리를 해줬다. 느릿한 중부 말투를 가진 시험관이 내 옆자리에 탔다. 나는 능수능란하게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운전시험 칠수 차 아줌마로서 능글맞게 운전을 했다. 한 바퀴 다 돌아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떨어졌단다. 이유인즉슨, 속도 제한 25마일 구간에서 28마일로 달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What does yellow sign mean? (노란색은 무슨 뜻이지요?)”


그렇게 쉬운 질문을 내게 하시다니 콧방귀를 뀌면서 답했다.


“Go faster? (더 빨리 지나가라는 뜻이지요?)”


“No, it means you pause to stop. So, you should stop. (아니, 이건 정지하기 위해 멈춰 서라는 뜻이야)”


면목이 없었다. 이 한적한 시골에서도 떨어지다니!


여덟 번째다. 하도 많이 떨어져서 기억도 가물가물 하다. 사 차선이 있는 로컬구간에서 좌회전을 하려고 하는데, 멀리서 차 한 대가 유유자적하게 달려왔다. 느리게 오는 차가 이곳에 도달하는 시간과 내가 좌회전을 하는 시간을 계산해 보니, 승산이 있겠다 싶어 좌회전을 했건만 떨어졌단다. 내가 좌회전을 무리하게 해서, 멀리서 거북이걸음으로 달려오던 차가 속도를 살짝 줄여야만 했다고 시험관이 내게 말했다.


아홉 번째 시험날이다. 일곱 번째 시험 봤을 때 만났던 시험관이다. 이번엔 주차장에서 끝났다. 내가 주차장을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대형버스가 우회전을 하려고 하길래, 내가 양보했다. 얍삽하게 뒤따르던 차가 덩달아 우회전을 감행했다. 시험관은 내게 우회전해서 주차하라고 했다. 엄한 목소리로 내리 깔며 왜 두 차에게 양보했냐고 나를 심문했다. 먹힐지 안 먹힐지 확신은 없었지만,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간드러진 목소리로 답했다.


“Being Polite~ (바쁘신 분은 먼저 가시라고, 예의를 지켰지요!)”


“Being polite doesn’t mean being safe. (예의 바른 것과 안전 운전은 별개의 문제다)”


라며 날 떨어뜨렸다. 직진하는 차량이 우선순위가 주어지므로, 내가 먼저 갔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부연 설명해 주었다.


주차장에서 운전면허 시험이 끝난 것만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서부와 중부를 번갈아 가며 이 난리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시험관에게 다짜고짜 따지며, Iowa City 말고 다른 DMV 주소를 달라고 하며, 오늘 당장 다른 곳에서 시험을 치겠노라고 어릴 쩍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불안해하는 남편을 옆자리에 태우고, 1시간 넘게 나 혼자 운전해서 옆 도시 Wateroo로 갔건만, 하루에 장소를 바꿔가며 두 번 실기 시험을 칠 수 없다고 해서 허탕만 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이 길로 달려가서, 오늘 시험을 칠 수 있다고 내게 말한 시험관 멱살을 잡고 싸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행여나, 열 번째 시험에서 또 만날까 봐 꾹 참았다. 시험 합격하면 그땐 DMV가 떠나가도록 따지리라 결심하면서.


열 번째 시험날이다. 늙은 노신사 시험관이시다. 이러다가 아이오와 작은 면허 시험장에 몇 분 안 되는 모든 시험관들과 안면을 트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에도 또 떨어졌다. 이유인 즉 슨, 평행 주차하러 들어가고 나올 때 깜빡이를 켜지 않았단다. 그것 외에는 다 괜찮다고 하셨다. 승리의 고지가 눈앞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열 번째 떨어졌을 땐 남편에게 면목이 없었다. 누구는 이혼사유가 되는 만행을 내가 저지르고 있다고 조언했다. 착한 남편은


“여보, 이제 겨우 two digit (두 자리)이야.”


하며 날 위로했다. 열한 번째 시험날이다. 주변에 계신 분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은 참 공평혀, 남들 못하는 박사는 하면서, 남들 다하는 운전은 못하잖아~”


이젠 자동적으로 운전 시험을 본다. 물론 떨어졌다. 사 차선 도로에서 좌회전을 하는데, 초록색 불로 바뀌면 직진하는 차량을 먼저 보내고 나서 내가 좌회전을 해야 한다. 육안으로 보기에 직진 차량이 없길래, 좌회전을 시도했건만, 어느 뜸에 숨어있던 직진 차량이 나와서 내가 움찔 당황했다. 이 부분에서 감점이 되었고, 또 지난번엔 오버액션을 하며 좌우를 살피지 않아 떨어졌건만, 이번엔 내가 너무 좌우로 고개를 심하게 돌리는 모습이 너무 불안해 보인다고, 직진할 때는 앞만 보라고 하신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는지 원.

열두 번째 시험날, 여느 때와 같이 습관적으로 DMV를 찾았다. 거듭되는 실패로 낙망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작은 이벤트까지 준비했다. 토요일 오전 멋들어지게 운전면허 시험을 합격하고 팬케익 잘하는 집에서 근사한 아침을 사주겠노라고 망연자실한 나를 꼬드겼다. 열두 번째 시험도 또 떨어졌다. 매번 떨어질 때마다 이유가 다르니, 이제는 왜 떨어졌는지 이유도 궁금해졌다. 아무런 표지 판이 없는 고속도로 구간에서 좌회전을 하려고 할 때 내가 시험관 지시를 잘 못 알아듣고 머뭇거렸다가 좌회전하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리고, 차도가 시작되는 구간은 정지 표지판이 없다 하더라도, 무조건 정지해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습관적으로 또 떨어지고 난 뒤 남편은 내게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여보, 열 두 개들이 한 다스 다 채우셨네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합격하면 가기로 했던 팬케익 집을 지금 당장 가자고 제안했다. 이미 합격한 줄로 알고, 미리 합격을 축하하자는 것이 아닌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 굳건히 믿고 있는 믿음의 아들, 남편을 실망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다음번에 필히 합격하리라 결심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젠 운전면허 시험 보러 갈 때마다 한 가지씩 배워오니, 오늘은 또 뭘 배울까 기대가 되기까지 한다. 열세 번째 시험, 드디어 합격했다! 일곱 번째, 아홉 번째, 후덕해 보이지만, 계속해서 나를 떨어뜨렸던 시험관이 또 걸렸다.


“Now, You passed. (이제야, 드디어 합격하셨습니다.)”


“What? What did you say? (뭐라고요?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묻고 또 물어도 틀림없는 합격이란다. 합격하고 나니, 이젠 남편이 보이질 않았다. 이미 떨어진 줄 알고, 조용한 카페에서 책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남편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성경에 나오는 데로 기드온이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일곱 바퀴 돌며 기도한 것처럼, DMV를 일곱 바퀴 돌며 기도하고 있었다. 본인이 지원한 직장이 안 돼도 좋으니, 제발 아내만은 이번에 운전면허 시험에 꼭 합격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본인의 직장과 내 운전면허 시험을 맞바꿔가며 기도했다니,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아이오와 시골 DMV에서는 운전면허 시험을 합격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서 따끈따끈한 운전면허증을 발급해 준다.


12번의 실패를 거처, 13번 만에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하던 날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여보, 이제는 여보 맘대로 운전하고 다니세요. 12번 떨어지고, 명품 운전 되었으니, 세계 어딘들 못 가겠어요?”


버지니아는 LA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대도시다. 아니, 운전만큼은 LA보다 더 까다롭다. 바둑판처럼 잘 짜여있는 서부와는 다르게, 길도 복잡하고, 직진을 하던 선이 갑자기 좌회전 선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운전자들은 어떤가. 대도시 생활 3년을 뒤로한 채, 시골 생활 1년 동안 느슨해진 나를 날벼락같은 클랙슨으로 깨우기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운전 세계에 입문한 지 3년 만에, 미국에 첫 발을 내디딘 지 꼬박 11년 만에 오너드라이버가 된 나는 12번의 실패로 갈고닦은 명품 운전 실력을 뽐내며 거친 운전으로 악명 높은 워싱턴 디씨 구석구석을 누비고 돌아다닐 참이다.


12전 13기 운전.jpg

추신: 2010년에 미주경제신문과 다른 매체에 기고한 글입니다. 많은 부분이 마흔 즈음에 연재로 인용되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운전면허 허가증만 받고 바짝 긴장하며 운전대를 꽉 잡은 사진도 함께 올립니다. 긴 글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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