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용인술의 격차

by 서재진

삼수해서 들어간 대학교는 후기 여대였다. 여중, 여고, 여대! 삶의 기쁨을 누리기에는 남녀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눈치작전으로 마지막 순간에 바꾼 전공 또한 내게 기쁨조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음대 꼭대기 층에 있는 작은 개인 연습실에서 어린이 바이엘 하까지 초등학교 4학년 때 10개월 배운 피아노 실력으로 코드만 겨우 치면서 성대가 찢어져라 생목으로 노래를 불렀다. 머라이어 캐리의 Without you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 린다 페리의 What's up 은 그 당시 내게 '희생'당했던 명곡들이다.


금요일 저녁, 어느 여대의 풍경처럼, 철통 같은 경호원 아저씨 틈으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여자 친구를 배웅하러 온 오빠들과, 본인들은 군인이 아니라 영어 동아리 회원이라 자칭했던 카투사들이 즐비해 있었다. 나는 유유자적 음대 꼭대기 개인 연습실에서 피아노 뚜껑을 열고, "What's going on~!!!"을 목놓아 불렀다.


해가 지고 어스름한 저녁, 사당동, 산본으로 이어지는 과외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데 화장실 입구 모퉁이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흠칫 놀라 뒤돌아보니, 건물청소원께서 구석에 앉아 허기를 달래고 계셨다. 교수님처럼 번듯한 사무실은 아니다 하더라도, 식사나 휴식을 하시는 작은 공간 하나 없이 쉬시는 모습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2000년 미국 동부 뉴욕주에 위치한 대학원 첫 학기를 맞이했다. 평생 처음 타보는 비행기, 그리고 가끔 영어 회화 학원에 가야 볼 수 있었던 백인들이 주류를 이룬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매일이 충격의 연속이었지만, 지금도 뇌리에 가장 신선한 충격은 Food Sciecne 기념일이었다.


간단한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당시 학과장이었던 Dennis D. Miller 께서 정중앙에 앉아 계셨다. 한국에서 학부과정 때 배웠던 식품화학 Food Chemistry의 저자이시기에, 대학원 들어가자마자, 한국 교수님께서 찾아뵙고 꼭 인사드려라 했던 분이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은 시간 움직이던 칸트처럼,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 걸어서 출근하셨다.


그리고, 그분 옆에 작업복 차림의 청소원께서 다리를 꼬시고 다정하게 담소를 즐기셨다. 학과 기념식이 시작되어도 그분의 위치는 변함이 없었다. 기념식이 시작되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학과장님께서 직접 우리 학과 건물 전반의 위생 (Sanitation)을 담당하고 있는 분이라 소개를 하니 우레와 같은 박수가 들려왔다.


학부 때 화장실 옆 창고 구석에서 싸 온 간식을 드셨던 청소원과 학과장님 옆자리에서 담소를 하고 박수갈채를 받는 청소원은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고 박완서 님의 책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의 구절처럼, 한 사람이 가진 모든 능력을 이용해 최대의 이익을 취하는 용인술의 차이였을까?


아니면, 가진 것이 많은, 아니 많이 빼앗은 미국인 특유 우월감의 소산이었을까? 이도 저도 아닌, 인격 존중하는 개별적 문화의 차이일까? 왠지 모를 한미 용인술의 격차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Dennis Miller 교수님을 뵙고 교수님께서 지으신 책으로 직접 공부했다고 말씀드렸더니, I am flattered. 네가 그렇게 말하니, 내가 민망하지만 영광이다라고 말씀 하셨던 기억이 난다. 아마존에서 찾은 그분의 책 표지를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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