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악치료사 Aug 17. 2020

음악치료사의 코로나 극복기 6

슬기로운 호텔 생활 - 자가격리 필수품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장기간 호텔 생활을 위한 물건들을 챙겼다. 더 악화된 몸상태로 5분도 안되어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버렸다. 한두 시간 후 다시 주섬주섬 잠옷과 속옷 위주로 옷을 챙겼다. 그 외 외출복, 스크럽, 운동복에 원피스까지 챙기고, 제일 중요한 신발 - 샤워 및 호텔방에서 신을 고무 실내화를 챙겼다.


4월 초, 의료시설에 일하는 직원들을 위한 호텔 및 숙박 제공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때여서,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동료 직원들에게 알려주고 추천해주었다. 한국처럼 격리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치료를 해주는 곳도 없었기에 혼자 격리하며 머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외로운 싸움을 준비했다.


음식은 대충 며칠 동안 먹을 식량을 챙겼다. 주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거나 캔 종류 - 얼려 놓은 밥, 국, 캔 수프, 라면, 참치, 김 등을 챙기고 바나나우유를 포함한 당을 채워줄 과자와 초콜릿을 챙겼다. 친구가 사다준 꿀 레몬차를 매일 뜨거운 물에 타 먹기 위해 전기포트도 챙겼다. 그러나, 정작 제일 중요한 비타민과 영양제는 챙겨야지 하고 안 챙겼다.


몇 가지 소지품은 신용카드와 폰을 포함한 다양한 신분증을 챙겼다. 운전면허증, 사원증,  NYC아이디카드, 여권, 그리고 보험 카드. 보험 카드는 내가 언제 병원에 가야 할지 모르고 사진으로 가지고 있어도 취급 안 해주는 곳이 있기 때문에 꼭꼭 챙겨야 한다. 여권은 의아할 수 있겠지만, 나는 항상 여권을 보이는 곳에 둔다. 언제든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도록. 솔직히 당장이라도 한국행 표를 끊고 격리시설에 들어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고 지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마 몸이 따라줬다면 바로 JFK공항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선 굉장히 이기적인 나이지만, 심각성을 몸소 느끼고 있기에 여러 정황과 양심상 그러지 못했다.



음악치료사의 격리 필수품

1. 악기

2. 악보

3. 컴퓨터


끝.


너무나 뻔해서 뻔뻔하다 생각이 들 정도다. 악기는 내가 평소에 좋아하고 연습하는 클래식 기타를 챙겼다. 모델은 Cordoba-C5, 입문용인데 가성비 갑으로 내가 아는 많은 기타리스트들이 추천하고 또 소유하고 있다. 기타는 따로 소음기가 필요 없고, 내가 조용히 연주하면 통제 가능하기에 여러모로 최애 악기다. 악보는 컴퓨터로도 충분히 볼 수 있지만, 화면을 넘겨야 할 때 번거롭고 흐름을 끊는다. 그냥 인쇄된 악보를 펼쳐두고 하는 타입이라 나에겐 필수!


컴퓨터는 말해 뭐해. 굳이 말하기 부끄럽지만, 기타 악보는 폭풍 검색해서 구한다. 기타를 독학하는데, 정석으로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원곡을 배우고 싶어 한다. 쉽게 편곡된 악보나 장조가 다른 수많은 악보들이 판을 치기 때문에 허탕 칠 때가 많다. 유튜브 강좌도 가지각색이라 신뢰할 수 없다. 그저 내 귀를 의지할 뿐. 유튜브를 항상 틀어놓고 멜로디를 외워서 악보랑 비교한다.  그렇게 가장 비슷한 악보를 몇 개 뽑아두고 짜깁기할 때도 있고, 아니면 연주자들의 영상을 보고 화면을 멈추거나 돌려보며 운지법을 보고 따라 한다. 심지어 정말 좋아하거나 배우고 싶은 곡을 구매를 하려고 악보를 뜯어보면 원곡과 다르다. 시중에 나와있는 책도, 쉽게 편곡되었거나, 원곡과는 달라서 믿지 못한다. 이러한 고집스러움에 피곤하지만, 어떻게든 찾아낸 후 연습에 돌입한다.


음악은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나에겐 배움의 즐거움이 가장 크다. 기타를 연습하면서 기나긴 싸움을 버틸 수도 있었고, 오히려 독이되기도 했다. 쉬어줘야 하는데, 연습하면 집중을 해야 하니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몸이 힘들어서 누워서 연습하기도 하고, 열흘 동안은 모든 걸 내려놓고 꼼짝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기간 동안은 연습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오열을 하며 울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그럼에도 몸이 조금만 나아지면 기타를 부여잡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살고 싶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음악치료사의 코로나 극복기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