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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악치료사 Nov 12. 2020

음악치료사의 코로나 극복기 9

나와 비슷한 증상을 가진 코로나 확진자 찾기

코로나 격리생활로 인한 코로나 확 찐자 들은 많았지만, 나와 같은 확진자들은 흔치 않았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호텔 격리를 하며, 내 관심사는 온통 코로나바이러스 실시간 상황판을 통해 확진자, 사망자, 격리 해제/완치자 수를 꼬박꼬박 확인했다. 그 외 새로운 증상, 회복과정, 치료, 완치 판정, 후유증 등을 찾아보기 바빴다.  매일매일 확진자 수는 어마 무시하게 늘어났지만, 정작 내 주위엔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 또래의 직장 동료 확진자들과는 달리, 유독 심한 내 증상과 날이 갈수록 오락가락 나아지는 건지 더 심해지는 건지 알 수 없는 회복과정으로 두려움은 커져갔다. 너무나 외로웠고, 나 외엔 이 외로운 싸움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드물뿐더러 지인들의 위로도 씁쓸할 뿐이었다. 다른 확진자와의 소통이 너무나도 절실했다.


그렇게 가끔씩 내 증상이 나아지거나 덜 고통스러울 때면, 사람들과 연락하거나 무언가 많이 하려고 했다. 기타 연습이 제일 좋았지만,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고, 나와 같은 비슷한 다른 확진자들을 찾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그나마 개인적으로 아는 확진자로는 사촌언니의 형부가 있었는데, 나보다 고열이 오래갔고, 심한 호흡질환 증상으로 직접적 소통은 불가능해서, 언니에게 문자나 전화로 증상을 물었다. 나와 비슷하다면, 심한 근육통, 두통, 식욕저하, 무기력함 정도였다.


인터넷이나 메시지로 도는 글 들 중에 비슷한 증상도 물론 있었지만, 그들을 어떻게 추적할 수도 없어서, 직접적 소통을 하는 건 빠르게 포기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어떻게 서든 나와 초기 증상이 비슷한 사람을 찾아 소통하고 싶었다. 물론 비슷한 증상이더라도 당연히 개인차가 있고 회복과정과 후유증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어느 정도 가늠하고 마음에 준비를 하고 싶었다.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들과 얘기함으로써 나도 희망을 갖고 이 외로운 싸움에 맞서 싸우고 싶었다.


첫 번째는, 확진자 유투버와의 소통이다. 한국인 직장동료 언니가 나와 비슷한 증상의 유튜버 영상을 보내왔다. 미국에 있다 한국으로 들어 간 해외유입 확진자였는데, 20대 초중반 정도로 건강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영상을 쭉 봤는데, 첫 이틀 증상은 나와 똑같았고, 3일 째도 비슷하다가 그 후로는 달랐다. 어쩌다 (집착하며 찾은 결과) 인스타를 찾아 메시지를 보냈고, 빠르게 답장이 왔다. 한국에서 확진 판정 이후 바로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은 덕분인지, 새롭게 나타나는 증상은 발견 즉시 다 잡혔고, 두 번 연속의 음성 판정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아무런 증상이 없었지만, 두 번 연속, 완전히 음성으로 완전히 판명 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고 했다. 그와 얘기하며 한국에 너무나 가고 싶었고, 비행기표를 찾아보며 호텔까지 챙겨 온 미국 여권과 한국 여권을 몇 번이나 들여다본 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가 복용하는 각종 비타민 영양제도 물어보고,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 후유증은 어떤지 궁금한 건 다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의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가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두 번째는, 온라인 데이팅 앱이다. 어처구니없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친한 친구들의 추천도 있었고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 데이팅 앱을 시작했다 (아파도 한건 다 하는). 이렇게 본의 아니게 좀 더 구체적으로 확진자의 사생활을 공유해 본다. 보통 연결이 되면,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격리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묻는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코로나에 걸려서 회복 중이라고 대답했다. 반응은 다양했다. 상대방은 그냥 안부만 물었을 뿐인데, 갑분싸가 되어 어쩔 줄 몰라하기도 하고, 지금 걸렸으니 면역 생겨서 나중에 걱정 없겠다며 심심한 위로를 전하기도 하고. 대부분 연결이 되어도 나는 앱 알람의 꺼둬서 잘 확인하지 않았고, 솔직히 그 당시로써는 만날 수도 없거니와 별 의미가 없다 생각했다. 괜찮은 사람들도 많았는데, 상대방이 대화를 시작했어도 대부분 내가 답장을 안 했거나 말을 이어가다 말았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확진자가 있을 것 같아서 그들과 더 소통하려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확인해보니 내가 답장을 안 했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연결되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역학자였다. 의사, 약사들은 많아도, 역학자와 연결된 건 좀 신기했다 특히나 이 시국에. 대화를 시작했는데, 역시 내가 확인을 안 해서 끊겼다. 그만큼 내가 아팠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되돌아보니, 데이팅 앱으로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열심히 소통하지 않았고, 내 증상을 복붙 해서 보내가며 당황시켰다. 그러다, 비교적 컨디션이 좋았던 4월 중순에 연결된 사람은 되게 힙하고 스웨그가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매일 취향저격의 음악을 공유해서 나름 설렘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4월 말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에 걸리고, 비슷한 증상인 확진자 남성과 연결이 되어 소통했다. 얘기하다 인스타까지 주고받으며 (앱은 약 일주일 뒤 채팅할 수 있는 기간 만료), 하루하루 호전 경과를 나누고 의사의 진단이나 회복에 도움될만한 어떤 진료를 해주었는지도 교류했다. 같은 증상을 호소해도 의사들마다 다른 소견을 제시한다. 정말 이 분과는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서로의 회복 과정을 공유했고 여러모로 내가 의지를 많이 했다.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힘겨운 나날들이었는지. 확진자들만 아는 고통 그리고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염원하며 소통하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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