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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미안해 나 임신했어

둘째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by graceforme

돌잔치를 끝낸 10월이 지나고 어느 날 감기 증상이 느껴졌다. 감기가 잘 안 걸리는 나인데 열이 계속 났다. 회사에서 병원을 가보겠다며 잠깐 나와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감기 같다고 하고 약을 받아왔고 돌아와 약을 먹었다. 그렇게 몇 번을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뭔가 감기가 낫지 않는 게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임신인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약국에 들러 임신테스트기를 사 왔다. 그리고 조심스레 회사 화장실로 들어가 테스트기를 해봤다.

그런데 희미하게 보일 듯 말듯한 선이 보였다. 보이는듯하기도 하고 안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순간 얼음이 되어버렸다.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지금 또 아이를 낳는 게 맞는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감기약을 먹은 것이 걱정이 되었다.


다음날 난 산부인과로 갔다.


" 축하합니다. 5주네요."

" 감기약을 먹었는데 괜찮을까요?"

" 아주 초기라서 크게 문제는 안되니 걱정 마세요."


그렇게 아이가 생긴 걸 알게 된 나는 어리둥절했다. 첫째의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일단 신랑에게 얘기했다. 신랑도 생각지 못했던 때라 깜짝 놀랐다. 하지만 우리는 둘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맞벌이기에 첫째는 이제 돌 지나서 어린이집에 다니고 말을 배우고 있는 상황에서 둘째가 나오면 또 친정 엄마에게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하나만 낳고 잘 기르기를 바랐었다. 아무리 순한 아이라도 육아는 힘든 일이다. 그걸 알기에 우리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 장모님한테 얘기하고 못 키우겠다고 하시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며칠 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 엄마 "

"왜"

" 나 임신했어 "

" 뭐? 야 너네는 피임도 안 하냐? 첫째도 어린데 어떡할라고!! 내가 하나만 봐준다 했잖아."


엄마의 첫마디였다.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를 더 낳아 키우는 건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첫째와 20개월밖에 차이가 안날것이다. 둘 다 어린데 감당이 될지는 사실 낳지 않아서 아직은 모르겠다. 엄마는 처음에는 짜증스러운 말투로 얘기했지만 결국은 받아들이셨다.


축복으로 시작해야 할 임신은 회사도 엄마도 반기지 않는 일이 되었다. 아들을 그렇게나 바라는 시댁에서나 반가워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생긴 아이를 누구든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회사에도 조심스레 알렸다. 사실 출산하고 복직한 지 일 년 밖에 안되어 눈치가 보였다. 이번에도 난 10달 내내 회사를 다니다 출산휴가를 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 난 다시 임신한 상태로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첫째 임심 때에는 강남역 근처에 회사가 있었다. 한식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며 매일 토하면서 10개월까지 다녔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회사를 갔을 때는 회사가 이전하여 판교로 다녔다. 집 앞에서는 버스가 없고 한두 정거장을 나가야 했는데 거기서는 앉아서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신랑이 몇 정거장 전에 내려줘서 앉아서 다녔다. 하지만 집에 올 때는 버스를 타고 근처에 내려 갈아타야지만 집 앞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배가 점점 나오면서는 버슬르 타고 다니는게 쉽지는 않았다.


다시 시작된 입덧은 첫째와는 또 달랐다. 먹지도 못하고 과일만 먹었던 첫째 때와는 다르게 고기도 잘 먹고 오히려 속이 비면 울렁거렸다. 그래서 자주 조금씩 먹었다. 그래도 입덧은 힘든 일이라서 밖으로 나와 공기만 바뀌어도 울렁거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첫째 때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임신을 하면서 함께 일하는 팀에도 미안함이 생겼다. 내가 출산휴가를 가게 된다면 나의 빈자리는 또 누군가가 두배로 힘써야 하기 때문이다. 출산휴가동안의 인원 보충은 없다. 그러기에 더욱 아이 낳기 직전까지 회사를 다녀야 했다.


입덧을 하는 초기에는 오히려 다닐만했다. 하지만 6개월에 접어들며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배가 자주 뭉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퇴근시간이 다 되어서 배가 뭉쳤는데 그 시기가 점점 더 빨라지면서 오전부터도 배가 딱딱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건 고역이었다. 그때는 퇴근시간도 7시였다. 아침 7시에 나와 집에 오면 8시가 다되어 갔다.


퇴근 후 7시에 겨우 나와 버스정류장을 가면 줄이 엄청 길어서 한번에 탈수도 없었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버스에 올라탔지만 아무도 일어나주지 않았다. 간혹 젋은 남성이 양보해주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여자나 아줌마들은 오히려 모른척 했다. 한번은 갈아타는 버스에서 부른 배로 아저씨 앞에 서있었는데 모른척 하시더니 다음 정류장에서 할머니가 타니까 바로 양보를 해주셨다. 양보하는게 당연한 건 아니지만 불러있는 배로 서있는건 정말 힘든 일이기는 하다. 한번은 좌석버스에 사람이 많아 뒷문 앞에 서서 가고 있었는데 뒷문 바로 옆 자리 사람이 일어나서 뒷문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앉으려는 순간 뒷문으로 다른 임산부가 타더니 그 자리에 앉아버렸다. 난 그 임산부 앞에 서서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다.


야근을 하는 날도 많았다. 그때는 정시 퇴근은 꿈도 못 꾸는 시절이기에 다들 눈치를 보며 7시부터 대표 몰래 나가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야근을 하면서 8시 9시가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자주 뭉쳐서 딱딱해진 배를 쓰다듬고 달래며 다시 말랑말랑해지기를 바라며 야근을 하던 어느 날....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 배가 심하게 뭉치고 피가 비치기 시작했다. 일단 다니는 산부인과로 전화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물어봐야 했다.


" 배가 하루 종일 뭉치고 살짝 피가 보여요. "

" 병원으로 지금 오셔야 할거 같아요. 바로 오시겠어요?"


난 회사에서 늦은 시간에 택시를 잡고 산부인과로 갔다. 태동 검사부터시작하여 각종 검사를 하게 되었다.


" 입원하셔야 합니다."


난 그날 저녁 바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임신 중 입원을 하게 된 건 처음이라 걱정이 되었고 신랑도 짐을 챙겨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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