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아르헨티나/칠레 여행, 유럽 뚜르드몽블랑
올해 우린 참 많은 곳을 걸었고 보았다. 마치 올해 대단한 결심을 한 것처럼, 또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듯 우리의 버킷리스트를 2개나 함께 이루기까지 했다. 결혼을 한 이유가 버킷리스트를 함께 이룰 동반자를 만나는 과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독 비슷한 꿈을 갖고 있는 우리는, 그 덕분에 어디든 떠났고 어디에서든 배웠다.
결혼을 한 두 남녀가 같이 남미로 떠난다. 그것도 배낭여행으로. 상상만 해도 꽤나 로맨틱한 여행 이야기 아닌가?
2017년, 남편을 만나기 전 혼자 떠난 페루 여행은 그야말로 내 인생의 도끼였다. 미국, 유럽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비행시간, 연착, 비행기 취소, 짐 분실... 등으로 인한 충격과 놀람이 여행이 끝나갈 때 즈음엔 오히려 '인생엔 여유가 있어야 진짜 즐길 수 있다.'라는 교훈이 되었다. 길거리에서 꼬치구이를 맛보고 있는 중 옆에 계시던 어머니와 바디 랭귀지로 이야기를 하다, 결국엔 그분의 집까지 가서 차를 마신 경험을 하며 '이 사람들의 사람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순수함은 어디에서 나올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또 끝없이 펼쳐진 대자연 속에서 자신들의 전통을 굳건히 지키며 살아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남미의 가장 잘 알려진 매력이기도 했다.
그래서 남미는 도전이었다. 몸은 굉장히 힘들지만 정신은 아름다운 곳. 내가 바라보는 그 풍경이 꿈같이 느껴지는 곳이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한없이 공유하고 싶은 곳. 그래서 우린 함께 칠레와 아르헨티나 여행을 떠났다.
역시 남미답게 잦은 비행기 이동과 비행시간으로 기본적은 육체적인 피곤함,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 우리를 두고 가버린 국경을 건너는 버스 등 사건 사고가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오히려 똘똘 뭉쳤다. 갑자기 우리는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곳에서 미아가 되었음에도, 다른 나라 여행자들의 도움으로 처음 들어본 낭만적인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기도 했고, 오히려 버스 사고가 전화위복이 되어 무료로 프라이빗 모레노 페리토 빙하 여행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핵심 포인트는 우리 누구도 흥분하거나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건 사고가 터져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매 순간 행복했다. 둘이었기에.
남미에서 트레킹을 하며 우리가 알게 된 건,
1)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엘찰텐의 3개의 봉우리를 뚜렷하게 봤기에 우린 3대 덕을 톡톡히 보고 있을 만큼 상당히 운이 좋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2) '은하수'라는 단어가 교과서나 영화에서만 보는 비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산장에서 한 밤 중에 노래를 들으며 파타고니아 맥주 한 잔에 은하수를 눈 껌뻑이며 보던 그 순간은 영원히 잊힐 리 없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이기에.
"여보 나 이 순간을 언젠가 잊게 될까 벌써부터 두려워"
이 길을 걷는 내내 황홀하다 못해 두려웠다. 혹시나 내가 나중에 삶에 지쳐서, 일상에 익숙해져서 이 순간을 그만 잊고 살면 어떡하지..? 이 이야기를 내가 할 때마다 두 손 꼭 잡아주던 남편과 우린 더 기억 속에 남기기 위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소중히 걷기로 했다. 이 순간을 조금이나마 더 꾹꾹 눌러 담고 싶은 우리의 조그마한 소망이라도 담긴 듯.
뚜르드몽블랑은 남미 여행보다 좀 더 하이킹에 초점이 맞춰진 여행이었다. 하루에 6시간 - 8시간까지 걷기도 했는데 배낭을 메고 더 높은 고도를 오르내리며 걷는 길이기에 한층 더 힘들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지금 당장 짐 싸서 다시 갈래? 하면 무조건 YES! 다. 힘들 때마다 내 눈 앞에 펼쳐진 믿기지 않는 자연을 보면, 지금 내 힘듦보다는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순간에 대한 감사함이 더 커졌다.
우린 직장인이기에 우리 일정에 맞춰 뚜르드몽블랑의 반 바퀴를 돌았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아쉬움보다는 '또 오면 돼!'라는 마음을 갖고 지금 주어진 것에 만족해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에 사는 사람들은 이 뚜르드몽블랑이 마치 뒷산 같다고 했다. 우리처럼 결심을 하고 걷는 것이 아니라 주말에 편히 한 곳 다녀오면 되는 그런 편한 존재라고 했다. 정말 부러웠다. 이런 대자연을 어렸을 때부터 가까이 접한 아이들이 바라보는 삶의 관점을 어떨까?
2019년, 과할 정도로 우린 많은 행운을 누렸다.
이런 추억을 쌓을 수 있게 항상 함께해 준 내 옆의 남편에게 가장 고맙다. 또 세상의 많은 것을 두 발로 걸으며 볼 수 있도록 체력을 꾸준히 관리한 나에게 고맙다. 앞으로도 이런 행운은 평생 누리며 살고 싶다.
더 바랄 것이 없다.
Written by 아웃도어 부부 Wife